복음: 루카 11,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복음 선포에 매진했던 바오로 사도!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박해하는 데 가장 앞장섰던 바오로 사도의 회개 이후의 삶에 대해 묵상해봅니다.
요즘 미사 중 봉독되고 있는 갈라티아서는 아주 좋은 참고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갈라티아서를 집필할 당시 갈라티아 지방에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유랑 선교사들이 찾아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이 새 신자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너무 강하게 요청하다 보니,
갈등과 혼란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선조들에게 상투를 자르라고 윽박지르는 것과 비슷한 경우일 것입니다.
당시 어떤 대쪽같은 양반은 상투를 자르기 전 내 목부터 자르라고 외치기도 했었습니다.
당시 갈라티아 공동체 사람들은 코린토 교회 못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지만, 윤리 도덕적 타락, 우상 숭배나 미신 행위 등 과거의 악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강조하며, 복음에 충실할 것을 권고하기 위해
갈라티아서를 집필한 것입니다.
이 서한을 통해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꼐서 자신에게 큰 사명을 하나 주셨는데, 그것은 이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할례 문제로 하도 시끄럽다 보니, 바오로 사도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단호하게 선을 긋습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 사람들에게는 할례가 의무가 아닙니다.”
갈라티아서를 통해 우리는 초대 이방인들을 위한 최고 목자로서 자리매김하기까지 바오로 사도가 겪었던 숱한 고초와 갈등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사실 회심 이전 유다 지도층 인사들이 젊고 똑똑한 청년 유다인 바오로에게 걸었던 기대가 상당했습니다.
유다교 미래를 이끌 든든한 인재로 일찌감치 낙점했었겠죠.
그런 바오로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낙마를 하고, 실명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그리스도교로 극적인 회개를 하게 되는데, 그로 인한 유다 지도층 인사들의 실망감은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당사자 바오로는? 특별한 방법으로 주님의 사도가 된 것에 감지덕지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유다인들로부터는 이미 배신자 낙인이 찍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적극적이고 열렬한 환영을 받았는가?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가장 앞장 서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구속시키는데 선수였던 그가 하루 아침에 그리스도교인이 되니, 의아한 시선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혹시 저게 일부러 저러는 것 아닐까?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섬멸하기 위한 이중 작전을 쓰고 있는 것을 아닐까?’
그런 결코 만만치 않은 양측 분위기를 감지한 바오로 사도였기에, 더 백방으로, 더 헌신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민폐를끼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그렇게 십년 이상 이런 저런 박해와 오해 속에 자신이 만나고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던 바오로 사도는 마침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그리스도교 공동체 지도자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간 자신이 해온 일에 대해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에게 공인을 받습니다.
사정이 좋든 나쁘든, 주변 분위기가 내게 호의적이든 적대적이든 상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이 온몸으로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복음 선포에 매진했던 바오로 사도의 사목적 열정과 믿음에 큰 감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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