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수년간에 걸친 코로나 감염병 위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출발점 위에 서 있습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뿐 아니라 교회에도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하고자 지난 사목교서에서는 ‘일상중심의 신앙실천’과 ‘자기주도적 신앙실천’을 제안하였고, 교구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로 우리 교구는 길었던 코로나 위기를 이겨내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비록 예전의 상태를 회복하려면 아직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하느님의 은총과 교구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 시련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지난 2023년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는 해였습니다. 이 뜻깊은 해를 맞아 우리 교구는 오늘의 복음화 현실을 새롭게 진단하고, 이에 부합하여 교구의 선교 사명을 새롭게 하려는 의도로 지난 2018년 개편된 대리구 제도를 다각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새로운 대리구 제도와 교구 편제가 시행되면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비대해진 교구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고, 친교와 소통을 바탕으로 전 교구민이 능동적으로 교회의 선교 복음화 사명에 참여하는 데에 매우 효과적인 제도임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새로운 대리구 제도에 담긴 ‘통합사목’이 현재 보편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교회 쇄신의 노력과 일맥상통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사목은 교회 내 모든 구성원의 ‘유기적 협력’을 그 원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앞으로 계속하여 통합사목을 기반으로 지구 중심 사목과 연합 사목이 상호 연속성을 가지고 교구 사목정책의 큰 이정표가 될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역량을 모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저는 향후 3년간 우리 수원교구의 모든 구성원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몸을 이룬 지체로서 교회의 선교 사명에 각별한 관심과 책임의식을 가지고, 시노드 정신에서 영감을 얻는 통합사목을 향해 중점적으로 노력해야 할 사항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보편교회는 2021년 10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사명’을 주제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번 세계주교시노드를 시작하면서, 특별히 미래를 향한 우리의 비전이 시노드적인 교회에 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시노드적 교회란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으며 구성원 전체(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친교로 드러내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친교, 참여, 사명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추구하는 중심 가치입니다. 시노달리타스의 기초는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로서(1코린 12,27 참조)부여받은 공통된 품위와 사명과 은사를 인정하고 동행하는 데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에서 시노드의 여정 중에 함께 걸어가야 하는 동반자로서 동반자적 인식과 믿음의 부족이 경청의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진단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단은 우리가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며 서로에게 경청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있는지를 묻게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근본적으로 동등한 품위를 지니며, 형제적 친교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선포하는 사명을 함께 수행합니다. 이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평신도가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진리에 봉사하는 데에서 모두가 능동적이며 책임 있는 주체임을 의미합니다. 물론 교회의 모든 활동에서 ‘주인’은 교회를 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고백하게 하시고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시는 ‘성령’이시며, 우리는 능동적이고 책임 있는 주체로서 각자의 방식으로 성령의 활동에 참여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성령께서 이끄시는 여정을 함께 걷는 동반자로서 서로 신뢰하고 경청하도록 초대받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혐오와 배제의 유혹을 넘어, 우리 안에 존재하는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 안에서 일치할 수 있도록 인내를 청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는 부족한 것이 있을 때, 많은 것을 가진 쪽에서 부족한 쪽을 채운다면 함께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보조성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는 통합사목의 기본 취지가 시노달리타스에 담긴 교회 쇄신의 의지와 같은 원의(願意)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울러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정신이 2018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대리구 제도와 교구 편제 개정에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러한 정신에서 교구 내 모든 구성원은 공통된 품위와 사명 안에서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동반하며 식별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 보완하고, 함께 교회 사명에 참여하며 살아가려는 상보상생(相補相生)의 길을 가도록 요청받고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의 도움으로 우리는 통합사목의 구체적 실천 원리인 지구 중심 사목과 연합 사목이 공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야 함을, ‘우리 반에서는’ ‘우리 구역끼리’ ‘우리 본당에서만’이라는 생각을 넘어서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여정을 위해 우선 수원교구 내 모든 공동체가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에 앞서 성령의 뜻을 청하고 듣는 기도 시간을 가지고 회의에 임해야 합니다. 교회공동체의 결정이 곧 성령의 뜻을 따르는 결정이 되기 위해서는 사안에 맞는 기도를 선정하고, 교회 구성원들이 같은 지향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미사를 통해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공동체가 ‘인식하기-해석하기-선택하기’라는 성령의 활동을 식별하기 위한 과정(「복음의 기쁨」 제51항)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먼저 ‘인식하기’란, 구체적인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공동체의 성장지표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해석하기’란, 영적 체질개선을 위해 공동체를 진단하고 평가하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하기’란, 성령의 활동을 파악하고 구체적인 실천을 선택하는 일입니다.
통합사목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성장지표는 말씀의 증거생활(μαρτυρία), 축제적인 전례거행(λειτουργία), 이웃섬김(διακονία), 친교생활(κοινωνία)입니다. 친교생활은 앞선 세 가지 지표가 어느 한쪽으로 편중됨 없이 서로 고르게 연동하여 상보상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습니다. 저는 앞으로 3년간 1년 단위로 교구 구성원 모두가 친교생활을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1. 2024년에는 친교를 위해 일상 속 말씀의 증거생활에(말씀 중심의 일상생활)
2. 2025년에는 친교를 위해 축제적인 전례거행에(전례 중심의 일상생활)
3. 2026년에는 친교를 위해 이웃섬김에(애덕 실천 중심의 일상생활) 집중하기
통합사목은 영적 체질개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통합사목의 실천 원리인 영적 체질개선을 위해 지금 우리 공동체에 부족한 것은 무엇이며,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공동체의 고른 성장을 목표로 삼는 통합사목은 그 실행과정에서 유기적 협력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가 성장 조건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내부에 여전히 결핍되고 막힌 부분이 있거나 그 상태가 장기간 지속될 경우, 균형 잡힌 단계로 진입하지 못한 채 기존의 편중된, 곧 지금 잘되고 있는 사목에만 집중하는 일을 계속해서 반복한다면 전체적으로 ‘발육 부진’의 상태를 벗어나기 어렵게 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선적 돌봄의 대상이 누구이고 결핍된 요소는 무엇인지(최소치 사목), 나아가 공동체의 고유한 영적 자산을 발굴하고, 유능한 부분을 살릴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식별할 필요가 있습니다(최대치 사목). 이어서 구성원의 합의와 상호 협력으로 이끄는 실행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구가 결연한 의지로 실천에 옮기려는 통합사목은 한마디로 교회 쇄신 차원에서 신앙의 수많은 유기적 지체들, 예를 들어 소공동체, 본당, 지구, 대리구, 교구로 이루어진 공동체 자신이 결핍된 요소를 스스로 돌보고 성장시킴으로써 공동체가 균형 있게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바로 영적 체질개선입니다.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토양을 우리는 복음의 기쁨에서 찾아야 합니다. 복음과 신앙의 핵심은 언제나 기쁨입니다. 말 그대로 복음은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님과 함께하며 맛본 기쁨의 체험은 신앙인 자신을 내적으로 성장하게 하고, 다른 이들과 그 기쁨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복음을 선포하도록 우리를 다그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2코린 5,14 참조). 진정한 기쁨은 다른 이들과 세상으로 확장되면서 더 깊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기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기쁨을 다른 이에게 전할 수 있겠습니까? 복음화라는 사명의 수행은 강요나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초대하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 14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의무를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쁨을 나누는 사람, 아름다운 전망을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풍요로운 잔치에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사람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개종 강요가 아니라 ‘매력’ 때문입니다.”
저는 수원교구를 이루고 있는 교회의 모든 지체가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앞으로 3년간 다음과 같은 사항을 실천할 것을 제안합니다.
1. 2024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최소치 사목 진단하기
2. 2025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계획 수립하기
3. 2026년에는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계획 실천하기
통합사목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은 ‘생태’입니다. 통합사목 차원에서 우리는 모두 생태적 회개로 초대되고 있습니다.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함으로써 인류에게 환경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셨습니다. 나아가 교황님께서는 현재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그대로 유지할 경우, 부정적인 영향들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종말이라는 말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함을 경고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성장 중심의 가치관을 버리고 생명 중심의 삶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우리 사회의 성장 담론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근본적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세상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의 온갖 것을 다스리도록 부여해 주신 창조질서 보전에 관한 바른 의미를(창세 1,25-26 참조)되새기는 가운데 생태적 회개를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이들과, 가난한 이들같이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십니다. 기후와 환경의 위기로 가장 먼저 피해를 받고 고통을 당하게 될 사람들은 바로 가난하고 힘없는 사회적 약자들입니다. 우리가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기후 위기에 맞서고 지속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시려는 마음에 동참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2021년 찬미받으소서 7년 여정을 시작하며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기 위해 ‘탄소중립 선포 미사’를 거행했습니다. 이 여정에 발맞춰, 생태적 회개를 위해 앞으로 3년간 우리 교구 구성원들이 공동의 집 지구를 위해 기도하며, 본당과 각 기관 그리고 가정에서 다음과 같은 일을 실천해 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1. 2024년에는 우리 가정, 교회공동체, 사회의 생태 의식의 현주소 진단하기
2. 2025년에는 생태적 회개를 위한 계획 수립하기
3. 2026년에는 생태적 회개를 통한 구체적 실천에 임하기
우리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에 참여하는 한국 교회가 대륙별 회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제출한 ‘종합 의견서’에서 이 시대의 청소년들 역시 가난하고 힘없는 여정의 동반자들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우리 교구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목정책의 기본틀이 되는 통합사목의 대상에서 청소년들이 그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신앙생활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이 감소하는 현상을 겪으며 교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이미 오래전부터 요구되고 있는 젊은이들에 대한 사목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청소년들의 고민을 경청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들에게 필요한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교회가 지난 제15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과 그 결실인 교황님의 권고 「그리스도는 살아 계십니다」를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교회는 청소년들이 단순히 사목 대상이 아니라 복음선포의 주역임을 알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그들의 방법으로 복음을 살고 선포하는 주역이 되도록 교회는 그들을 응원하고 동반할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2023년 8월 6일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제37차 세계청년대회 파견 미사에서, 4년 뒤인 2027년 세계청년대회는 아시아, 곧 대한민국 서울에서 열린다고 발표하셨습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가톨릭 신앙이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유럽의 서쪽 끝에서 우리나라에 이르기까지 보편된 신앙임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나 홀로 이 신앙을 지키고 살아가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동행하는 이들이 전 세계에 있음을 체험하는 일은 청소년들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이번 제38차 세계청년대회는 분명 통합사목을 기조로 청소년들을 향한 사목에 정진하려는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입니다.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시간 안에서 청소년들을 향한 우리의 관심에 새로운 활력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청소년 사목의 실천적인 방향을 제안합니다.
1. 2024년 믿음의 순례자인 청소년들의 의견을 경청하기
2. 2025년 희망의 순례자인 청소년들의 걸음에 동행하기
3. 2026년 사랑의 순례자인 청소년들 각자의 성소 식별을 통한 사랑의 여정에 함께하기
우리 앞에는 교회 내의 많은 문제와 예상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이겨 나가기 위한 방법으로 시노달리타스를 기본원리로 하는 통합사목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동반자로 인식하고 인내로써 경청하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식별하는 일에서 통합사목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 사는 기쁨과 매력을 전하려는 노력은 통합사목의 실천 원리인 영적 체질개선을 위한 토양이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의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로 사는 기쁨을 깊이 체험하기를 바라며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요한 14,26 참조).
저는 사목교서를 마치며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시기를, 그리고 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 성모님께 전구를 청하시길 당부드립니다.
교구 복음화를 위한 기도
○ 만민의 임금이신 주님,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한 선조들을 통하여
이 땅에 구원의 빛을 밝혀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교구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오니
저희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내로써 경청하고,
성령님의 인도에 따라 식별하면서 동행하게 하소서.
또한 통합사목을 통해서 청소년 신앙과 생태적 회심을
실현하는 교구가 되게 하소서.
◎ 이제 저희도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
온 민족의 복음화를 이루게 하소서.
또한,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아멘.
○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 지금 인류는 코로나19 감염병과 그 여파로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바이러스의 세계적 창궐은 평범했던 인류의 일상을 멈추게 했고, 사랑하는 가족을 앗아갔습니다. 지구촌 공동체는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이 위기가 빨리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감염병의 확산 방지를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염병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우리 사회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종교 전방위에 걸쳐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환경파괴로 인한 기후 위기, 식량 위기, 질병 위기, 경제 위기는 우리 인간 생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정치적 위기까지 가세하여 국내 문제는 물론, 국가와 국가 사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은 우리의 미래를 불안과 두려움으로 몰아가게 합니다.
2.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점진적으로 영역을 넓혀가던 비대면 방식의 소통문화가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확산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왔던 대면 문화의 영역들 대표적인 영역으로 공교육, 공연, 마케팅, 종교집회 등을 들 수 있다. 이 비대면 문화로 영역을 옮겨가며 오히려 외연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서로 대면할 수 없기에 차선으로 선택한 비대면 방식이 도리어 사람들의 긍정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서서히 사회의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상호 간의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제 대면과 비대면 두 개의 방식을 동시에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3. 이러한 변화는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동안 교회의 운영방식은 대면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감염병의 예방을 위해 수개월에 걸친 미사 중단과 이에 따른 대안으로 제시된 TV, 인터넷 방송 미사 시청은 신자들의 미사 참례 의무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초래하였습니다. 이어서 다시 시작한 미사 이외에 모든 집회와 활동을 금지한 사목 조치는 신자들의 신앙생활 방식을 공동체 중심에서 개인의 일상 중심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또한, 사제와 신자 그리고 신자와 신자 사이의 소통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비대면 방식의 접근들은 교회 안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는 불확실하게 전개되는 사회현실과 비대면으로 전개되는 소통문화를 바라보면서 지금 이 시대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최선의 대책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적절한 대응방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4. 코로나19로 위축된 세계 경제는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이들을 심각한 곤경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만이라도 해결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이미 이기적이며 자기방어적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서 자비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현실입니다. 특히 질병에 취약한 어린이와 노약자들이 겪는 가난은 생명의 위기와 직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의 때에 교회는 모든 역량을 모아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이들이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비단 사회복지 차원의 나눔뿐만 아니라, 교회의 지체들 모두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의 신비체’(에페 4,16)로서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가난한 이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신자들의 마음 안에 가난한 이들을 향한 자비로운 주님의 연민이 가득하기를 희망합니다.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인 선택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중차대한 과제입니다. 이는 복음화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힘든 위기의 때에 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살아야만 비로소 주님의 복음이 참되게 선포될 것입니다.
5. 코로나19로 사람들이 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정에 머무르면서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와 일치가 중요한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감염병의 위기가 가져다준 사회적 거리두기는 해체 위기에 놓인 가정 공동체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미 교회가 여러 가르침을 통해 강조해 왔던 가족 구성원의 유대와 일치, 부모와 자녀의 대화, 가정 안에서의 신앙 전수 등이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자연스럽게 재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신자들이 가정 안에서 서로 일치하고 나누며 하느님을 발견하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갈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상 안에서 꾸준히 신앙 실천을 해나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격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영상 등 다양한 비대면 매체를 활용한 교육 자료와 안내서들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고, 신자들이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도 필요할 것입니다.
6. 교회는 전통적으로 유아세례를 통하여 부모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수하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이는 영유아기의 아이들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력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영유아기는 생활 습관 및 인성 교육의 초기 단계로서, 부모의 가르침이나 모범을 통해 기본적인 도덕성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이 시기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배우는 신앙과 가치관은 향후 이들의 그리스도교적 가치관 형성에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부모들은 신앙의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며 자녀의 유아세례를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도 영유아기 자녀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부모의 신앙 교육이 영유아기 자녀의 인성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하고 가르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눈높이를 맞춘 다양한 신앙교육 콘텐츠를 개발하여 젊은 부모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8. 오늘의 청소년들은 ‘신인류’, ‘포노사피엔스’ 포노사피엔스(phono sapiens): 스마트폰(smartphone)과 인류(homo sapiens)의 합성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처음 등장한 용어로서 ‘디지털 문명을 이용하는 신인류’를 지칭하는 표현이다. 등으로 정의될 만큼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를 지닌 세대입니다. 따라서 이들에게는 성장기에 드러나는 발달적 특성과 더불어 이들만이 지닌 고유한 시대적 특성을 동시에 고려한 사목이 필요합니다.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체험과 활동을 통해 올바른 가치관을 기르며 신앙의 감수성을 성장시켜 나갑니다. 이 시기에 배우는 신앙의 기본습관과 사회활동에 참여함으로써 형성되는 이웃사랑의 가치관은 이들이 교회의 미래 주역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소년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고 교류하며 그들만의 문화(새로운 대면, 비대면의 소통문화)를 창출함으로써 자기 주도적 신앙생활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대리구와 지구에서는 ‘청소년들을 위한 소통과 교류의 장(대면과 비대면)’을 마련하여 제공하고 돌봄으로써 이들 사이에서 진행되는 ‘또래 학습’을 통해 신앙의 기본습관(기도)과 이웃사랑의 가치관(희생과 나눔)을 형성해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9. 이미 한국 사회의 문제로 대두된 저출산의 기류는 심각한 인구 감소 위기와 함께 교회의 사제 성소에도 적신호를 알리고 있습니다. 청소년 시기에 겪는 심리적 불안과 혼란한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현실에서 바른 인성을 지닌 신앙인, 나아가 사제 성소를 지망하는 청소년을 양성하는 일은 커다란 난제임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성소를 지망하는 청소년이 갈수록 줄어든다고 해서 인성과 지성 그리고 건강을 두루 겸비한 예비신학생을 발굴하고 양성하는 일을 소홀히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어려운 여건일수록 성소를 식별하고 선발하는데 더욱 분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인성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시기입니다. 사랑과 존중으로 충만한 가정환경과 부모 자녀의 돈독한 신뢰 속에 성장한 청소년들을 선발하여 사제로 양성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청소년들에게 수도 성소가 지니는 가치와 의미를 알리고 인도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수도자들은 수도 성소의 삶이 매력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도록 청소년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함께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10. 전반적으로 청년기에 있는 이들은 학업, 취업, 연애,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대사 앞에서 고민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인생행로를 개척해 나갑니다. 짧은 시기에 겪는 다양한 선택과 결정은 곧바로 자신의 미래와 직결되는 것이기에 이들이 마주하는 혼란과 불안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있는 청년들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청년들이 다양한 선택의 순간 앞에서 겪는 갈등과 고민을 털어놓고 나누며, 친절한 도움과 위로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지구와 본당에서는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 깊은 신앙 그리고 후덕한 인품을 겸비한 상담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여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대리구에서는 기존의 청년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고 확대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지구 청년 사목을 지원해야 할 것입니다.
11. 우리 교구는 지난 2001년 교구 시노두스 결과를 바탕으로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서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이는 작은 신앙인 공동체 안에서 가장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살아갈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다만 방법적인 측면에서 더욱 다양하고 유연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부각하는 비대면 방식의 소통문화는 우리에게 소공동체 모임의 운영방식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함을 일깨우고 있습니다. 기존의 구역, 반을 중심으로 한 소공동체는 이미 효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단지 조직의 구성과 운영, 그리고 관리가 편리하다는 이유로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다가오는 세상의 도전에 대처할 수 없습니다. 사목 일선에 있는 사제들은 신자들이 스스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소공동체를 조직하고 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교구는 일선 사목 사제들이 유연하게 대응하며 소공동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입니다. 이미 신자들은 각종 친교 모임이나 동호회 활동, 혹은 신심 활동 등을 통해서 자신의 신앙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교구는 신자들이 자연스럽게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와 교회가 규정하는 소공동체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론적 의미 차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고 가능한 접점과 해결방안을 제시함으로써 일선 사목에 있는 사제들에게 도움을 주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12.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노인들이 자신의 생을 돌아보며 의미 있게 정리하고, 자아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돕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였고, 특히 우리 교회는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노인을 대상으로 한 사목 정책의 수립과 시행은 시급한 과제라고 하겠습니다. 사실 이미 우리 교구는 노인 사목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노인대학을 중심으로 한 본당 노인 사목의 활성화를 도모해 왔습니다. 노인대학연합회를 결성하여 봉사자를 양성하고 교육하며 본당에서의 노인 사목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를 갖추었습니다. 아울러 은빛 여정을 대표로 한 ‘노인 성경 프로그램’의 운영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비록 아직 교구 내 모든 본당으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지만, 지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또 그렇게 노력해 나가기를 희망합니다.
13. 한편으로 노인은 현저하게 활동성이 저하되는 생애주기 특성상, 동적인 활동을 추구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정적인 성향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노인은 기도와 묵상을 통한 내면의 성찰과 영적인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하느님과의 일치 안에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체험하는 관상의 여정은 노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의미 있게 해 줍니다. 또한, 노인에게서 보이는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모범이 되고 길잡이가 되어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년의 시기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관상의 기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사목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교구는 노인들을 위한 기도학교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다양한 노인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제공함으로써 이들이 충만한 은총 안에서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도울 것입니다.
14.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은 우리에게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다시 일깨웠습니다. 인류의 교만과 탐욕으로 말미암은 자원의 무분별한 남용과 착취는 지구의 생태환경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습니다. 그 결과로 지금 인류는 전례 없는 생명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회개하여 환경을 다시 살리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박한 위기의식을 갖고 적극적으로 환경실천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이미 2015년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를 반포함으로써 인류에게 환경의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인간의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이 가져온 자원의 남용과 착취가 어떤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지 지금 인류는 코로나19를 통해 혹독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더 큰 시련이 닥쳐올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는 것입니다.
15. 때마침 교황청에서는 지난 2020년 6월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을 맞아 본당 및 교회 기관이 활용할 ‘사용자 지침’ ????공동의 집 보호를 위한 길: 「찬미받으소서」 반포 5주년????(On the Path to Caring for the Common Home: Five Years after Laudato Si’). 을 발표하였습니다. 이 지침에는 환경보호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과 실행법이 들어있습니다. 이 지침은 소중한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한 친환경 정책의 실천과 더불어, 가난한 이들을 돌보고 가정과 생명을 보호하는 정책들이 시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 단체에서는 이 지침을 바탕으로 가능한 실행방안을 모색하고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환경실천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이웃사랑의 의무입니다. 환경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는 것은 그 어떤 이유로도 양보할 수 없는 최우선의 가치입니다.
16.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제기되는 ‘생명의 조작 가능성’은 창조주 하느님의 질서를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유전자, 신경과학, 인공지능 등의 기술발전과 유기체인 인간을 기능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고부가가치 사업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생명의 존엄이 갖는 배타적인 가치가 유용성과 수익성 때문에 왜곡되거나 배척되는 상황이 공공연하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생명을 거스르고, 하느님의 정의를 거스르는 온갖 형태의 불의에 맞서 생명의 가치를 수호하고, 인간의 존엄을 수호하는 데 항상 깨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17. 주님께서 보여주신 가난한 이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본받아야 하는 계명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가난을 지향해 왔으며(마태 5,3; 마태 25),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사명입니다. 더구나 코로나19로 직면한 심각한 경제 위기 앞에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살피고 돌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 교구가 진행하는 모든 사목 정책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향합니다. 뒤이어 제시한 ‘유기적 협력 사목’이나 ‘지구 중심 사목’ 등의 정책 방향들도 모두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가난하고 억눌린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것보다 더 큰 복음은 없습니다(루카 4,18).
18. 우리 교구가 지향하는 사목은 ‘유기적 협력 사목’입니다. 이는 교회의 각 구성원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공동체를 살피고, 아픈 곳을 찾아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치유함으로써 생명의 활력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이 통증을 느끼면 다른 지체들이 즉시 반응하여 통증을 없애려 집중하듯이,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도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내 본당, 내 단체, 내 구역 등 자기가 속한 곳에만 관심을 두고 다른 지체들은 돌보지 않는다면 살아 있는 유기체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살아 있는 공동체는 구성원의 아픔에 민감합니다. 서로 하나로 일치하고 있기에 구성원의 아픔이 곧 자신의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교구 구성원 모두는 유기적 협력 사목을 통해 신자들이 무엇에 아파하고 걱정하는지 민감하게 살피고, 그중에서 가장 아픈 곳을 찾아 치유하는 데 공동체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19. 우리 교구는 지난 2018년 대리구 제도를 개편하면서 ‘지구 중심 사목’을 전개하기로 방향을 설정하였습니다. 이는 교구 내 21개 지구가 갖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사목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교구나 대리구에서 정한 사목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각기 처한 본당의 상황이나 여건에 따라 제각각 그 방법을 달리 적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청소년, 청년, 노인 분야의 사목 정책에 있어서 곤란을 겪는 본당이 있습니다. 때로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다른 여력을 갖지 못하는 본당도 있습니다. 이들 본당이 사목의 활력을 얻기 위해서는 이웃한 본당 간의 유기적 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기적 협력이 가능하도록 조직을 구성한 것이 지구 체제입니다. 이미 교구는 지구장 본당을 지정하여 지구 내 소속 본당들과의 소통과 나눔을 이끄는 구심점 역할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각 지구 내 본당은 지구장을 중심으로 서로 협력하여 함께 하는 사목을 전개함으로써 활력이 넘쳐나기를 희망합니다.
20. 우리 교회 구성원의 대다수는 보편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입니다. 평신도는 자신의 일상생활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소명받은 사람들입니다. “신자들은 자신의 왕다운 사제직의 힘으로 성찬의 봉헌에 참여하며, 여러 가지 성사를 받고 기도하고 감사를 드리며 거룩한 삶을 증언하고 극기와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사제직을 수행” 「교회 헌장」, 10항. 합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일상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전할 소명이 있습니다.
21. 코로나19 이후로 집회 중심의 활동이 현저하게 제한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의 활동은 크게 위축되었습니다. 집회를 통한 전례와 성사 중심의 신앙생활을 전개해왔던 교회로서는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대면보다는 비대면 위주로 전개될 것입니다. 비록 상황이 호전되어 다시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하여도 비대면을 선호하는 문화적 경향은 지속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기회에 교구와 대리구는 신자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꾸준히 신앙을 실천해 나가는 습관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특히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습관화하도록 이끌고,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가정 성경 필사, 가정 성지 순례, 가정 기도 등 가족 구성원이 함께하는 신앙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안내하고 독려하는 노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22. 신앙의 여정은 완덕을 지향합니다. 이는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라는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소명과 능력에 따라 서로 다른 방법과 정도로 완덕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애주기에 맞는 인생의 여정이 있듯이, 신앙도 생애주기에 따른 완덕의 여정이 함께 합니다. 처음에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고, 하느님과 대화하며,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리고 점점 믿음이 강해지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아가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하며 내면의 성화와 완덕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자신이 신앙의 생애주기에 어디쯤 있는지 스스로 진단하고 성찰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안내하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길을 잃고 방황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신자들이 자신의 신앙 여정을 스스로 진단하고 안내받음으로써 자기주도적으로 신앙의 온전한 성숙을 향해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23. 이를 위해서는 교구 차원에서 지원하는 ‘통합 소통환경’이 필요합니다. 교구는 홍보국을 중심으로 사제와 신자, 신자와 신자, 교구와 본당, 본당과 본당, 단체와 단체, 신자와 단체 등 교구 내 모든 지체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통합 소통환경을 구축해 나갈 것입니다. 아직은 미비한 점이 많지만 점차로 완성된 형태로 성장하리라 전망합니다. 여기에서 신자들은 대면과 비대면 모두를 망라한 종합 신앙 정보를 얻고 소통하면서 복음의 기쁨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24. 영유아․초등부 저학년
교구․대리구 : 부모의 신앙교육이 영유아기 자녀의 인성발달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 연구,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과정에 눈높이를 맞춘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초등부 저학년을 위한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지구․본당 :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교육, 영유아 자녀와 함께 하는 미사, 영유아 부모 소공동체 운영, 각종 행사 기획
25. 초등부 고학년․청소년
교구․대리구 : 초등부 고학년을 위한 신앙교육 콘텐츠 개발, 청소년을 위한 신앙생활 기본 습관 안내 앱 개발, 본당․지구에서 실천 가능한 또래 학습 프로그램 기획(학업, 취미, 운동, 사회봉사, 성지 순례 등), 청소년 피정 프로그램 개발, 청소년들을 위한 사이버 공간 마련(전담 사제의 적극적 개입 필요)
지구․본당 :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교육, 초등부 고학년 및 청소년들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각종 동아리 활성화 모색, 특화된 청소년 미사 기획 및 운영, 지역사회와 연계한 위기 청소년 돌봄 센터 운영, 지구 차원의 청소년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사회봉사, 피정, 성지 순례, 축제, 콘서트, 운동회 등), 지구 차원의 청소년 기금 조성(긴급 지원, 장학금 등)
26. 청년
교구․대리구 : 기존 청년 교육 프로그램 강화, 청년들을 위한 사이버 공간 마련, 20대 30대 40대를 위한 신앙생활 가이드 앱 개발 및 알림 서비스 제공
지구․본당 : 청년 세대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청년 미사 활성화 방안 모색, 지역사회와 연계한 위기 청년 돌봄 센터 운영, 각종 청년 동아리 활성화, 취업 및 결혼 전문 상담소 운영, 교구 차원의 청년 프로그램에 적극적 참여, 지구 차원의 청년기금 조성(긴급 지원, 장학금 등)
27. 가정
교구․대리구 : 일상에서 실천 가능한 신앙생활 가이드, 부모 자녀 관계 교육 자료, 가정 폭력 예방 교육 자료, 가족과 함께 하는 성경 및 기도 프로그램 제공, 성지 순례 안내, 사회봉사 안내, 환경실천 안내, 기타 이웃사랑 실천 가이드
지구․본당 : 교구․대리구에서 제공하는 자료와 프로그램 활용 및 교육, 지역사회와 연대한 위기 가정 돌봄, 가족과 함께 하는 미사
28. 소공동체
교구․대리구 : 생애주기에 따른 자기주도적 신앙생활 로드맵 구축 및 안내 서비스 제공, 다양한 소공동체 모델 개발, 소공동체 교육 자료 발간(영상물)
지구․본당 : 자기주도적 신앙생활 교육 및 홍보, 다양한 소공동체 운영, 모범 소공동체 홍보 및 포상, 지구 및 본당 차원의 소공동체 활성화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축제, 운동회, 나눔터, 성지 순례 등)
29. 노인
교구․대리구 : 노인대학 활성화 방안 연구, 노인대학 봉사자 양성 및 교육, 노인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 개발, 노인을 위한 기도학교 프로그램 개발 및 운영
지구․본당 : 지구 차원의 노인대학연합회 결성, 노인들로 구성된 소공동체 운영, 노인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 기획 운영(성지 순례, 피정, 기도학교, 축제, 경로잔치 등), 각종 노인 동아리 활성화, 지역사회와 연계한 긴급 돌봄 센터, 노인 기금 조성, 지구 차원의 사회복지 전문가, 심리상담 전문가 양성 및 본당 지원
30. 가난한 이들: 다양한 특수 사목
교구 : 본당 사회복지분과 활동 지침 교육, 전문 봉사자 양성, 긴급 지원 활동, 다양한 특수 사목 지원
지구․본당 : 사회복지분과, 소공동체, 단체, 지역사회 등과 연계한 다양한 위기 가정 지원 활동 전개, 무료 급식소 운영, 나눔 장터 운영, 충분한 예산 배정 및 운영
31. 생명․환경
교구 : 교황청 ‘사용자 지침’ 교육 및 홍보, 본당에서 활용 가능한 홍보 영상 제작, 구체적 실천 방안 모색, 모범 사례 홍보 및 포상
본당 : 환경실천 교육 및 실행, 생명 교육, 생명 수호 운동 전개
32. 사제․수도자 양성
성직자국 : 중견 사제 연수 프로그램 기획 및 운영, 사제 피정 및 연수 프로그램 강화
성소국 : 예비신학생 인성교육 프로그램 강화, 수도 성소 모임 활성화 모색
33. 통합 소통환경 구축
신앙생활 종합 서비스 플랫폼 개발, 양방향 신앙 정보 네트워크 구축
34.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일치를 이루는 신비체입니다(에페 4,16). 각각의 지체는 나름의 고유한 역할을 통해서 교회를 윤택하고 풍요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한 지체도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한 몸이기 때문입니다(1코린 12,12~31).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일치를 이룬다는 것은 서로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소통한다는 것이며, 소통한다는 것은 서로의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며 치유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공동체의 아픈 곳을 느끼고, 어루만지며, 위로하여, 치유하는 살아 있는 교회, 사랑하는 교회,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일치를 이루는 교회로 나아가기를 희망합니다.
35. 교회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는 항상 우리를 위해 전구하십니다.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위기를 맞이한 인류를 위해 기도하시는 성모님의 성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 기대어 계십니다(요한 19,25~27).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주님께 당신 사랑의 힘으로 다시 인류를 구원해 달라고 기도하십니다. 또한, 성모님은 교회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십니다. 지금이 바로 회개의 때이기에, 교회가 다시 예수성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의 원천으로 돌아가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성모님 곁에 꿇어앉아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사목교서를 마치며 교구민 모두에게 우리 교구의 복음화를 위하여 자비로우신 주님께 한마음으로 기도해 주실 것을 제안합니다.
수원교구 복음화를 위한 기도
○ 만민의 임금이신 주님,
죽음으로 진리를 증언한 선조들을 통하여
이 땅에 구원의 빛을 밝혀주셨으니 감사하나이다.
● 수원교구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오니
사랑으로 협력하고 나눔으로써
주님 안에 일치하며 살게 하소서.
◎ 이제 저희도 선조들의 믿음을 본받아
힘차게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어
온 민족의 복음화를 이루게 하소서.
또한, 세계를 밝히는 등불이 되어
인류 평화와 번영에 이바지하게 하소서. 아멘.
○ 수원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여,
●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1. 사랑하는 수원교구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난 2013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이하여 “50주년 교서”를 반포한 이래로 교서에서 제시한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세 가지 복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교구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삼위일체 신비 안에서 드러나는 이 세 가지 복음적 가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끊임없이 본받고 실천해야 하는 항구적인 것입니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교황권고『복음의 기쁨』을 반포하시면서 전 세계 교회에 ‘시대의 변화에 걸맞은 복음 선포를 위한 새로운 성찰’을 요청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교구가 지난 3년간 “소통, 참여, 쇄신”이라는 주제로 자신을 돌아보며 복음적 가치에 충실하게 살아가고자 노력한 것도 이러한 성찰의 한 과정이었습니다. 이제는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들의 삶의 자리에서 드러나는 문제들을 깊이 성찰하고 복음의 빛으로 조명하여 현실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방법들을 모색해내야 합니다. 저는 이번 교서를 통하여 향후 3년 동안 우리 수원교구가 구체적으로 나아가야할 복음 선포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 지금 세상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를 예고하며 새로운 기술혁명이 가져올 생활방식의 변화를 예견하느라 분주합니다. 무선 정보통신 영역이 경이롭게 확장되고, 과학기술의 발달이 고도화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이 맺는 관계방식이 상호 유기적으로 진화하는 국면에 이르렀습니다. 인공지능의 등장은 이러한 사람과 사물 사이의 유기적 진화가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스스로 말하고 학습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은 다양한 사물과 결합하여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했던 영역들을 대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봇기술은 이미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한지 오래되었고 이제는 상당히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을 요구하는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자리를 대신하려 합니다. 앞으로 그 영역이 어디까지 확장될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혹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능가하게 되고 더 나아가 인간을 지배하는 새로운 종(種)의 출현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그동안 인간만이 가능하다고 여겨왔던 영역에 더 유능한 존재가 등장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인간이 가치서열의 중심에서 뒤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3. 이러한 가치의 혼란은 가치서열의 정점에 서있던 인간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만물의 영장’이요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가장 존엄한 존재였던 ‘인간’이 기능적 차원에서 인공지능에게 우위를 내어줌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잃게 되고, 사회적 지위의 상실은 존립의 기반을 위태롭게 하여, 결국에는 인간으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존엄의 권리’마저 위협받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능적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불가피하게 맞닥뜨리는 사회적, 윤리적 차원을 간과한다면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인간성 상실의 재앙을 맞이할 것입니다.
4. 정당한 노동과 일정한 수입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유지하고 자신의 존엄을 지킬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건입니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정한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며 미래에 대한 설계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지난 수년간 지속되고 있는 대규모 청년실업은 젊은이들의 사회생활을 불안하게 만들고, 비정규직 일자리와 불특정한 수입은 가정의 안정과 평화를 위험에 부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젊은이들은 결혼을 포기하거나 늦추게 되고, 기존의 가정 역시 위기에 봉착하게 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1인 가구’의 출현은 오늘의 우리사회가 불안정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지표입니다. 또한 가정과 노동에서 소외된 인간이 겪는 불안과 고독은 ‘개인주의적 불행’으로까지 이어집니다.
5. 지금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전수는 가정공동체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왔습니다. 가족구성원이 함께 모여 신앙 안에서 성가정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목표였습니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가진 가정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서로 기도하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교회의 모습이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신앙을 전수함으로써 그 맥을 이어가게 하였고 이는 교회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반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갈수록 가정은 와해되고 젊은이는 소외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가톨릭 신자들이 젊은 세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 단절이 있었음을 더 이상 간과할 수만은 없습니다. 많은 이가 가톨릭 전통에 실망하여 이를 더 이상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녀들을 영세시키지 않고 자녀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 부모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일부는 다른 신앙 공동체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단절의 원인들을 살펴보면, 가정 안에서 대화 부족, 대중 매체의 영향, 상대주의적 주관주의, 시장만 배불리는 무분별한 소비주의, 가난한 이들 가운데서 그들과 함께 사는 사목의 결여, 교회 기관들의 환대 부재, 그리고 다종교 상황 속에서 신앙의 신비를 지키고 되살리는 데서 겪는 어려움 등이 있습니다.”
6. 기술문명의 빠른 발전은 사람들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아직 이전의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에 기반을 둔 채 새로운 기술문명에 적응해가는 반면에, 젊은 세대들은 새로운 기술문명을 기반으로 새로운 생활양식과 소통방식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하여 세대와 세대 간의 단절이 생겨났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단절은 세대 간의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최근 국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에 드러나는 자기주장의 표현방식과 내용들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7. 오늘날 소통방식의 변화는 새로운 대중문화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은폐되거나 축소되고 조작 가능했던 일들이 이제는 너무나도 쉽게 대중에게 노출되고 밝혀짐으로써 더 이상 갑의 횡포를 좌시하지 않는 대중문화를 만들어내었습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것이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이라면 즉시 세상에 알려 대중으로부터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되게 하는 새로운 문화는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꾸고 있습니다. 또한 공동체를 구성하는 방식과 삶을 공유하고 나누는 방식에 있어서도 이전과는 판이한 새로운 유형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포털사이트를 통한 네트워크 서비스는 부단히 진화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한 새로운 차원의 소통방식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속지, 속인 등의 원칙이 적용되는 오프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루었었다면 앞으로는 지역과 소속, 계층과 계층을 넘나드는 온라인 형태의 공동체가 주류를 이룰 것입니다.
8. 이렇듯 인간의 존엄이 도전받는 위기와 변화의 시대에 선교 활동은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도 선교 임무는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갈수록 “개인주의적 불행”으로 치닫고 있는 세상의 흐름 속에서 더욱 절박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하신 한 사건이며, 한 사람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도록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세상을 대하는 삶의 방식과 소통의 방식이 바뀌고 있는데 여전히 과거의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우리가 선포하는 그리스도가 세상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다가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욱 적극적으로 그리스도를 선포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그렇듯이 복음 선포의 원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다시 돌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우리가 원천으로 돌아가 복음 본연의 참신함을 되찾고자 노력할 때마다 새로운 길들이 드러나고 창조적 방식들이 보이며, 또 다른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오늘날의 세계에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모든 참다운 복음화 활동은 언제나 ‘새로운’ 것입니다.”
9. 기존의 사목은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의 전수가 이루어진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져 왔습니다.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본받아 행복한 가정을 이루도록 신자들을 인도하는 것이 사목의 주요한 목표였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 안에서 부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자녀교육과 어른공경을 중시하는 사목이 전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유교적 전통이 아직 남아있는 우리사회 안에서 신앙의 토착화를 이루는 유효한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가정을 중심으로 한 신앙의 전수가 점차 사라지고 모든 것이 ‘개인화’ 되어 가는 세상의 추세에 따라 신앙 역시 ‘사사(私事)화’ 되어 가고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좋으면 믿고 싫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를 온전히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기존의 사목방식을 고수한다면 우리는 더 많은 신자들을 잃게 될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개인맞춤형 서비스를 추구하며 변화되어 가듯이 이제는 선교의 방법도 개인의 성향을 고려하여 다양하게 전개되어야 합니다. 기존의 사목이 세대와 계층을 구별하여 특화된 형태의 사목을 전개해 왔다면 이제는 ‘잘 짜인 그물망 구조의 통합사목’ 안으로 신자 각 개인이 들어와 참여함으로써 신앙을 키워가는 형태의 새로운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10. 통합사목이란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사목유형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각 사목분야별로 갖추고 있는 그물들을 한데 모아서 하나의 유기적인 커다란 그물로 다시 짜는 소통과 협력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수많은 지체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신비와도 같습니다.(1코린 12장 참조) 이제는 통합사목의 그물망을 통해서 신자들이 각자의 성향과 적성에 따라 자신의 신앙생활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과 형태를 선택하도록 인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와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각 사목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이를 구체화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통합사목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해줄 인재의 양성이 필수적입니다. 그리고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계적인 과정과 지속적인 관리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각 분야별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에 대한 통합 로드맵이 작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이면서도 점진적인 교육과정이 마련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평신도 인재양성을 위한 전담기구의 설치와 전문 교육시설의 확충 또한 시급히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11. 지역의 본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기존의 선교방식은 전통에 익숙한 기성세대들에게는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세상의 변화에 민감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전혀 매력 없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미 젊은이들이 사라져버린 교회의 현실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을 교회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전통적인 방식은 이미 늦었습니다. 이제는 젊은이들의 소통과 참여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말씀이 선포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곳이 어디인지 부단히 찾아야 하고, 또한 그들의 언어로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부단히 새로운 형태의 표현들과 더욱 설득력 있는 기호들과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휘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특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더없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선 사목현장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애정 어린 시선과 관심으로 젊은이들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12. 통합사목의 범주는 복음화의 사회적 차원까지 포함합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신자들의 참여는 반드시 사회적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어야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더불어 예견되는 양극화와 인간의 소외는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기준에 따라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시도들을 견제하고 저지함으로써 사회의 발전이 인간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모든 사목현장에서 교회의 사회교리를 교육하고 이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통합사목의 실천이 사회적 차원에서 결실을 맺을 때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향한 쇄신의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13. 성령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영혼이십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는 기도하며 일하는 복음 선포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이 기도 안에서 말씀과 만나고 주님과 성실한 대화를 나누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쏟지 않으면, 우리의 활동은 쉽게 무의미해지고, 지치고, 열정도 사그라질 것입니다. 사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행하는 모든 선교 활동의 중심에서 우리와 함께 숨쉬고, 걷고, 이야기하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 안에서 성령과 일치를 이루지 않고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선포할 수 없습니다.
14. 성모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어머니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를 우리 어머니로 내어주심으로써(요한 19,27) 당신 교회가 어머니의 여성다운 모습을 지니기를 바라십니다. “참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서 함께 걸어가시고 우리와 함께 싸우시며 끊임없이 하느님 사랑을 우리에게 전해 주십니다.” “마리아께서는 이 세상 안에, 인류 역사 안에, 우리의 일상생활 안에 깃든 하느님의 신비를 바라보십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그분 안에 지닌 겸손과 온유, 정의와 사랑의 힘을 믿고 모범으로 따릅니다. 우리 모두 마리아께 어머니의 전구를 간청하며 새로운 변화와 도전에 직면하고 있는 교회에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기를 기도합시다.
복음화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수원교구는 지난 2013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기념하며 교구의 미래 복음화를 위한 지표로서『50주년 교서』를 반포하였습니다. 이 교서에서 저는, 오늘날 우리가 안고 있는 사회와 교회의 여러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복음적 가치를 “소통과 참여를 통한 쇄신”에 두고, 이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전 교구민이 일치하여 매진해 줄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이어서 2015년 “소통”을 주제로, 2016년 “참여”를 주제로 온 교구민이 “쇄신”을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도록 구체적인 실천사항을 담아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저는 지난해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해”를 은혜로이 지낸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2017년을 맞이하며 “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을 주제로 사목교서를 발표합니다.
2. 하느님의 말씀과 소통하고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한 성찰은 우리를 쇄신된 삶으로 초대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우리 교회는 끊임없는 쇄신의 노력을 통해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세상 안에서 새 복음화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는 더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더욱이 수도권에 위치한 우리 교구는 급속한 신도시의 개발로 인해 외적으로는 계속 팽창하는 교세에 대응해야 하고, 내적으로는 교구민의 영적 갈증을 채우고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야 하는 이중의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 교구의 상황 속에서 우리는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교회의 미래와 쇄신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구원의 보편 성사”인 교회의 쇄신은 그 신비체인 하느님의 백성들이 “말씀과 성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보다 깊고 풍요롭게 체험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인의 쇄신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원천을 두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세상에 본질적으로 ‘전적인’ 새로움을 가져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신선하고 질적인 새로움은 우선 그분께서 전해주신 가르침에서 드러납니다. 또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 안에서도 드러나고, 제자들에게 남겨 주신 ‘새 계명’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새로움은 십자가상의 희생 제사를 통해 이루신 구원의 신비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권력이나 힘이 아니라, 자기를 비우고 낮춤으로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보여주신 비움과 섬김의 삶은 하느님 사랑의 절정이요 교회 쇄신의 원리입니다. 이 원리는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에게도 신앙생활의 쇄신을 통해 교회의 구원활동에 참여하도록 인도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비움과 섬김의 삶으로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어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로마 13,14 참조)
4. 교회의 쇄신은 그 원천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고,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구체화됩니다. 모든 새로움의 원천이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성사를 통하여’ 성령과 함께 교회 안에서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5. 교회의 쇄신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는 신자 개인은 물론 교회 공동체 전체를 변화시키는 신비로운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은 믿는 모든 이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1,16)이고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특히 교회의 전례 안에서 선포되는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 개개인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계시는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만나게 합니다. 따라서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과,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은 말씀을 듣는 이들이 보다 경건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깊이 있게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교육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6.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강론은 하느님 말씀이 신자들의 삶에서 더욱 깊이 이해되고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을 풀이하는 직무를 맡은 사제들은 말씀의 단순함을 가리는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강론이나 복음 메시지의 핵심을 잃어버린 준비되지 않은 강론을 하지 않도록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자신의 양식으로 삼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말과 행동이 강론과 모순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7.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그리스도인 영성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나, 영적 독서를 통해서나, 또는 적합한 성경 강좌 등을 통해서 성경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사목자들의 승인과 배려로 교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경사목에 보다 많은 본당과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거룩한 독서와 접목하여 이루어지는 소공동체 모임의 말씀나누기를 통해 모든 신자들이 공동체의 친교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접할 수 있기를 권고합니다. 왜냐하면 성경 본문은 언제나 교회의 친교 안에서 접근해야 비로소 개인주의적 접근의 위험성을 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루어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합니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것은 교회가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며 거행하는 것을 동반하고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8. 교회는 “구원의 보편 성사”입니다. “교회는 일곱 성사를 통하여 자기 자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표현합니다. 이 성사 덕분에 하느님의 은총이 구체적으로 신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신 신자들의 삶 전체가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예배 행위가 될 수 있도록 합니다.”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모든 교역이나 사도직 활동과 마찬가지로 다른 여러 성사들은 성찬례와 연결되어 있고 성찬례를 지향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으로 생명을 얻고 또 생명을 주는 당신 살을 통하여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자신의 노동과 모든 피조물을 당신과 하나 되어 봉헌하도록 부르시고 이끄신다.”라고 상기시켰습니다. “성찬례가 참으로 교회 생활과 사명의 원천이며 정점이라면, 그리스도교 입문과정은 언제나 성체성사를 지향하여야 합니다. … 우리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받는 것은 성체성사를 받기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실제 사목은 그리스도교 입문 과정에 대한 더욱 통합적인 이해를 반영하여야 합니다. … 거룩한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입문을 완성시키며, 그리스도인의 모든 성사 생활의 중심이자 목표가 됩니다.”
10.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입문 과정 곧, 세례성사와 견진성사가 얼마나 통합적이고 효과적으로 신자들을 거룩한 성찬례로 인도하고 있는지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사실 성급하게 단기적으로, 그리고 단절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는 신자들을 교회 전례의 정점인 거룩한 성찬례로 인도하는데 충만한 성과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이 세례 받은 후 1, 2년 사이에 냉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교구 내 각 본당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문 과정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는 교리교육의 기간, 교리교육의 단계적 과정 및 프로그램, 교리교사의 양성 및 관리, 본당-대리구-교구의 역할 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본당 사목자와 교리교사 그리고 교구담당자 상호간에 유기적인 소통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11. 세속화의 거센 물결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를 양산함과 동시에 사람들로 하여금 죄의식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신자들을 둘러싼 문화는 죄의식을 잃어버리게 하는 경향이 있고, 합당한 영성체를 위해서는 하느님 은총 안에 있어야 함을 간과하는 피상적인 태도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신자들이 성찬례에 대한 정성과 애정을 더욱 깊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다양한 교육과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화해 성사에 대한 이해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해성사의 직무를 맡은 사제들은 언제든지 기꺼이, 헌신적으로, 또한 합당한 준비와 자질을 갖추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데에 주력함으로써 신자들이 고해성사의 부담을 갖지 않고 고해소를 즐겨 찾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12. “병자성사는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내어 놓으신 그리스도의 봉헌에 병자들을 일치시켜 그들도 성인들과 함께 통공의 신비 안에서 세상 구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특별히 병자성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영성체는 병자에게 파스카 신비의 충만함을 엿볼 수 있게 하므로 적절하게 집전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목 현장의 변화에 따라 고려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새로이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로 노인전문요양원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구 대부분의 본당 관할 내에 이러한 노인요양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노인요양원에는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관할 사목구 주임의 권한과 역할, 이웃 본당 사목구 주임과의 협력, 병자영성체의 식별기준, 지역공동체의 유기적 협력 등에 관한 방안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13. 교회는 사제 서품이 성찬례의 합당한 거행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세속화의 영향으로 세계 교회는 사제부족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 한국 교회에서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사제성소를 지망하는 젊은이들이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고, 몇몇 교구에서는 신학교의 유지문제를 염려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젊은 부부들의 저출산 경향과 무분별한 독신주의는 교회 내의 성소자 감소를 넘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는 성소자 양성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선 성소자의 양적인 양성에 앞서, 교회 공동체가 보다 근본적으로 사제직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 사제들은 스스로 그 직분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도록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 곧 사제들의 삶이 신자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젊은이들이 사제들의 삶을 동경하고 따르기를 희망하기에 충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세속화를 거스르는 사제들의 쇄신을 향한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또한 양성에 있어서도 “현실적으로 또 마땅히 우려해야 할 사제 부족 문제에 대처하고자 성소 식별을 충분히 거치지 않거나, 또는 사제 직무에 필요한 자질들이 부족한 후보자를 신학교 양성과 성품에 허용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필요한 식별 없이 충분히 양성되지 못한 성직자가 성품을 받게 되면 다른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하려는 원의를 불러일으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14. 혼인으로 결합된 남녀의 사랑은 당신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 십자가에서 정점에 이르는 그 사랑을 성사적으로 드러내는 표지입니다. 혼인성사 안에서 거룩한 서약으로 맺어진 혼인의 유대 안에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이루는 “해소될 수 없고 배타적이며 충실한 유대”가 그대로 깃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세속화의 거센 흐름은 이러한 혼인의 유대가 갖는 성사적 의미를 점점 더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 젊은이들이 개인의 성향과 경제적인 이유로 교회 밖에서 혼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혼인하려는 그리스도인 젊은이들만큼은 교회 안에서 성찬례와 결합된 사랑의 성사를 통해 혼인의 유대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일반예식장과 다를 바 없는 비용을 요구하면서 신앙인이기에 불편하고 볼품없는 환경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면 더 많은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거룩한 성사를 거행해야 하는 교회가 장소의 사용을 이유로 경제적 논리를 적용하고, 그 때문에 혼인하려는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간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더라도 혼인하려는 젊은이들을 교회 안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아무리 교회가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하더라도 혼인이 거행되는 장소 자체가 매력을 잃어버린다면 결국 교회는 혼인성사를 베풀 기회 자체를 잃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15. 가정은 자녀들에 대한 그리스도교 교육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에 교회 생활의 일차적인 영역입니다. 가정은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자신을 성화시켜 나갑니다. 교회가 말씀과 성찬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아먹고 성장하듯이, 가정의 자녀들도 일상의 식탁에서 대화와 나눔으로 부모의 사랑을 받아먹고 성장합니다. 교회의 전례가 거룩한 성찬례를 정점으로 지향하는 것은 바로 그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도 음식을 나누는 식탁의 자리에서 서로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빵을 나눌 때에 주님을 알아보았던 것처럼(루카 24,30-31), 우리들도 식탁에서 가족과 음식을 나누며 그 자리에 함께 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6. 우리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지극히 거룩하신 마리아 안에서 구원의 성사가 성취되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그분 삶의 모든 순간은 하느님 활동에 응답하는 순종적인 믿음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인 동정녀이신 그분께서는 하느님 뜻에 온전히 일치하여 살아가시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소중히 마음에 새기시고 그 말씀들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또한 아드님과 함께 극도의 고통을 겪으시며 당신에게서 나신 희생 제물에 사랑으로 일치하시어 아드님의 희생 제사에 어머니의 마음으로 당신을 결합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교회의 모범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지극히 정성된 마음으로 모셔야 하겠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시며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저는 지난 2013년 교구설정 50주년을 마치면서 소통과 참여로 교구를 새롭게 쇄신하여 교 회의 역동적인 복음화를 이루기 위한 지침으로『50주년 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교서에서 이 미 밝힌 대로,‘소통과 참여와 쇄신’은 오늘날 교회와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귀 중한 복음적 가치들로서,새로운 복음화를 이루고자 하는 우리 교구의 중요한 신학적 사목적 원리가 됩니다.
‘소통,참여,쇄신’,이 세 가지 복음적 가치들은 서로 구별되면서 또한 하나의 연속선상에 있 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심으로써 당신이 창조하신 인간과 ‘소통’하시고,그분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사랑의 친교와 본성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도 록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참여를 통해 하느님의 풍성한 자비를 입고 ‘새 인간’이 된 우리 모두는 하느님의 모습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는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2. ‘하느님은 자비와 은총의 하느님이시며 사랑과 진실이 넘치시는 분(탈출 34,6; 예레 32,3)’으로 서 당신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한 모든 사람이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며 당신의 본성에 참여하도록 하셨습니다. 오직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만이 그분을 알아 모시고 섬김으 로써 그 영원한 생명과 친교에 참여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인간이 하느님 을 찾고 사랑함으로써 그분과 일치를 이루고자 갈망하는데서 깨닫게 됩니다. 또한 이는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거룩함에로의 부르심,하느님 자비와 사랑에로의 초대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파스카 신비를 통한 하느님 본성에 참여3. 죄로 말미암아 본성에 손상을 입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인간은 하느님이신 분,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이루신 파스카 신비를 통하여 그분의 본성에 다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강생과 파스카의 신비를 통해서 우 리가 하느님의 신적 본성에 참여하도록 해주실 분만 아니라 이 본성에 참여하는 데 원형이 되 어 주셨습니다.”(2베드 1,4)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하느님이 될 길이 열린 것입니 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분에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된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 리스도와 함께 공동 상속자가 되며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사명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 본성에 참여4. 하느님의 본성과 영광에 참여할 수 있는 길과 희망을 주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도 세 상이 끝날 때까지 당신이 수행하신 그 지고한 사명을 수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 명,곧 그분께서 행하시고 말씀하시고 수난 받으신 모든 것은 죄로 인해 하느님의 본성으로부 터 멀어진 인간을 다시 그 본성에 참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교회를 통해 모든 사람과 피조물이 하느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교회 전례 안에서 복음의 기름과 성찬례의 신비를 통해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됩니다.
5. 교회는 그 본성상 그리스도께 파견된 존재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할 소명을 받았는 데,그 소명은 세례를 받은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그리스도의 삼중직무,곧 사제직,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함으로써 구체적으로 실현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는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삼중직무에 참여함으로써 그 리스도와 하나의 신비체를 이루고,모든 사람을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 본성에 참여하게 하 는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용서와 화해의 제물이 되는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사제직6. 하느님이시며 자비로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를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단 한 번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통하여 자신을 속죄 제물로 바치심으로써 믿 는 모든 이들을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연민과 자비로 용서하는 분이신 하느님은 그 자비 안에서 당신의 전능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십자가의 희생 제사가 보여주듯이 하느님의 자비는 추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실재입니다.
주교와 사제들은 인내와 성실함으로 그리스도의 거룩한 직무를 수행하는 가운데,특별히 고 해성사를 통해 죄와 삶의 무거운 짐에 짓눌려 고통과 부자유 중에 있는 형제들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고 용서를 베풀며,영적으로 병들고 굶주린 형제들에게 복음의 영약(靈藥)과 성체의 양식을 나누어줌으로써 그리스도의 거룩한 직무에 참여합니다.
또한 성령의 도유를 받은 모든 신자들도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자신을 십자가 위에 서 거룩한 산 제물로 봉헌하심으로써 온 인류를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시키신 것처럼,자신의 모든 활동 안에서 형제들을 하느님의 넘치는 자비와 사랑에로 인도함으로써 그분과 화해시키 는 거룩한 직무에 참여합니다.
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과 온 생애를 통해 자비하시고 너그러우신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분은 공생활 시작부터 하느님 아버지께 파견되신 목적이 성령을 받 아 가난한 이들과 묶인 이들에게 기른 소식과 해방을 전하는 것임을 밝히셨고, 실제로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시고 죄인들을 용 서해 주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심으로써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선포 하셨습니다. 성령의 도유를 받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왕직과 더불어 예언자직에 참여 하여 그분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세상 끝 날까지 선포합니다. 그 선포의 핵심은 그 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드러난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고백하는 동시에,사람들에게 그 자비를 선포할 때 본연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자비가 창조주와 구세주 의 가장 놀라운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자비를 배우고 선포하며 실천함으로써 그분의 예언자직에 참여합니다.
자비와 사랑으로 봉사하는 그리스도인,그리스도의 왕직8. 그리스도의 왕직이 어떤 것인지는 그분의 온 삶에서 완전히 드러납니다. “나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하신 예수님은 경손한 왕이요 착한 목자로서 하느님 백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그들과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으시기 위해 하느님이신 분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셨고,섬기는 분 으로서 십자가의 희생까지 기꺼이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이며 그리스도의 제자인 교회는 용서와 화해의 도구로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몸소 가르쳐주시고 보여주신 지극한 사랑 과 자비를 본받아 형제들을,그 가운데서 믿음이 허약한 이들과 죄에 묶인 이들과 작고 보잘 것 없는 이들을 돌보고 그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시켜주고 지켜줌으로써 그분의 왕직에 참여 합니다.
9.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께서는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부 터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를 ‘자비의 특별 희년’으로 선포하셨습니다. 이 희 년의 정신과 주제를 교황 성하께서는“너희 아버지께서 자비로운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 람이 되어라.”(루카 6,36)라는 복음 말씀에서 찾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 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 그분은 동정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어 당신의 말씀과 행동으로 만 나는 모든 이들에게 ‘용서하는 데에 결코 지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뵌 사람은 곧 자비가 풍성하신 아버지의 참 모습을 뵙게 되는 것임을 알게 해주셨습니다(요한 H9 참조). 더 나아가 예수님께서 베푸신 자비는 하느님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 이 되어 우리가 죄인임에도 용서를 받아 다시 아버지께 영원히 사랑을 받으리라는 희망을 품 게 해 주었습니다.
교회의 복음 선교,하느님 자비의 활동10. 그리스도의 제자이자 신부인 교회는 바로 그 자비를 언제나 바라보며 그 안에서 기름과 평화,그리고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리스도의 직무에 충실히 참여함으로써 하느 님 자비의 얼굴을 드러내고 자비의 영약으로 형제들을 돌보도록 세상에 파견되었습니다. 교회 가 그리스도를 통해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받은 ‘자비’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만나러 오시는 궁 극적인 최고 행위이자,형제자매를 진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근본법칙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로부터 명령을 받아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 어지고 있는 복음 선포 활동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께서 하신 ‘자비의 활동’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모든 구성원은 세례에 힘입어 선교하는 제자입니다. ‘새로운 복음화’는 세례 받은 모든 이의 주도적인 참여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만 난 그리스도인은 모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생생하게 전하는 선교사’입니다. 따라서 그분 의 제자요 선교사로 살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삶의 자리에서 실제로 마주하게 되는 굶주 리고 목마른 이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고,병든 이들을 돌보아 주고,감옥에 있는 이들 을 찾아가 주며,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을 돌보는 자비의 활동에 망설임이 없이 참여해야 하겠 습니다(마태 25, 34-40 참조). 또한 하느님의 자비 이신 그리스도를 모르는 이들이나 멀어진 이들에 게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신 그리스도를 가르쳐주고,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며,자신을 괴롭 히고 모욕하는 자들을 인내로 견디며 용서하고,산 이와 죽은 이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는 자비 의 영적 활동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합니다.
11. 사랑의 본질은 구체적인 삶에서 드러나고 실현됩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모든 사 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하신 말씀대로 주님께서 는 우리의 삶의 모습이 하느님 자비의 얼굴이 되기를 바라십니다. 그것이 가장 구체적으로 드 러나고 실현되어야 할 곳은 ‘가정과 소공동체’입니다.
가정은 하느님을 모시고 예배하는 ‘작은 교회’이자 가족 구성원 모두가 자비의 얼굴이신 주님을 본받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면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배우는 ‘신앙 학교’입니다. 가정에서 실현되고 체험되어야 할 모습이란 이렇습니다.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거룩한 사람,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경손과 온유와 인 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콜로 3.12-14).
소공동체는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구성원들이 서로 영적 친교를 이루며 다양한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에 참여하여 자비의 활동을 하게 됩 니다. 자신들이 머문 삶의 구체적인 자리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찾아가 위로하고,하느님 자비에서 멀어진 이들을 사랑으로 다시 모아들이며,죄와 두려움에 갇힌 모든 이들에게 그리 스도의 용서와 해방의 말씀을 선포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의 얼굴을 마주하도록 형제들을 인 도해주는 것입니다.
12. 저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는 올해,우리 교구의 곳곳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고대하는 이들과 하느님 자비의 활동에 투신하고 있는 수많은 봉사자들을 기억하고자 합니다.
사제들을 아들과 벗처럼 여기며 감싸주어야 하는 주교는 영육 간에 병들거나 지쳐 힘들어 하는 사제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 중에 믿음이 허약하거나 갈등 과 불목으로 상처받고 하느님과 교회에서 멀어진 수많은 이들을 다시 교회로 이끌어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머물도록 하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교황성하의 뜻과 일치하여 혼인 후 이별의 고통과 함께 혼인 장애에 묶여 잠시 성사적 은총에서 단절된 형제들의 힘겨움을 돕기 위한 교구 차원의 사목적 배려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애의 힘겨움을 겪고 있는 형제 들과 가난과 소외로 힘겨워하는 형제들,세월호 참사와 같은 여러 가지 구조적인 사회의 부정 과 적폐로 인하여 고통 받고 신음하는 형제들,그리고 이국땅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주민 형제들,교도소 수인들,탈북 주민들,청소년 가장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 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들을 위해 자비와 봉사의 손길을 펼치고 있는 모든 형제자매들 에게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3.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 한해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면서 우리는 보편 교회와 함께 하느님 자비의 큰 은총과 축복 속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또한 교회 안팎에서 불목과 불신 으로 갈라져 상처 입고 죄에 짓늘려 힘겨워하는 형제들에게 우리가 받아 누리는 하느님의 자 비를 보여주고 그것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한해를 지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거룩하고 중대한 직무에 우리의 온전한 참여가 요청됩니다. 저는 주님께 받은 거룩한 직무를 통하여 보편 교회가 지내게 될 희년의 정신을 실 현하기 위해 다음의 말씀을 함께 마음에 새기고 싶습니다.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에페 4,32-5,1-2)
평화의 모후이시며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1. 수원교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교구설정 50주년을 마치면서 ‘소통과 참여로 쇄신하는 수원 교구’라는 부계(副屬의『50주년 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소통은 교회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가치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이웃과 소통 하도록 창조되 었고, 이웃과 소통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하도록 부르심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전해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인류 전체에 전해야 할 사명을 갖고 있는 교회는 소통을 가로 막는 현대의 모든 사조에 맞서 참된 사랑의 소통을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이웃과 나누는 사랑의 소통이 사랑의 체험을 전계로 하듯이, 교회가 표방하는 소통은 먼저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이 하느님의 사랑 안에 살기 위해서는 다가오시는 그분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은 이러한 하느님과의 내적인 소통을 위해 마음의 문을 열고 영혼을 개방하며 내심을 넓히도록 촉구합니다. 누가 자기 창문을 닫아 놓는다면 그는 그 영원한 빛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은 우리의 눈을 하느님 본성의 심오한 신비에로 향하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본성적으로 소통하는 사랑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홀로 존재하고 자족하시는 분이 아니라 세상만물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당신이 누리는 기쁨과 영광을 우리에게 건네는 분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실 때도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서로 협력하셨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 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라는 말씀이 삼위일체의 신비를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2) 또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에도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 오시고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들려오면서 성삼위 하느 님의 위격적 친교가 드러났습니다.(루카 3,21-22 참조) 이처럼 성삼위 하느님의 일치와 사랑의 소통 은 인간 구원의 역사 안에서 신비롭게 드러납니다.
3.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당신 안에 홀로 머물러 계시지 않으시고 항상 당신을 드러내 보이십 니다. 이를 하느님의 역동적 자기 소통이라고 하는데,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에서 확연 히 드러나고 ) 성령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 신비가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하느님의 소통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죽으심과 부활하심에서 충만한 실현을 이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소통의 신적 원리로 십자가를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 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 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 다. 이 렇게 여느 사람처 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 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 6-8) 이처럼 예수님의 소통방식에서 비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국, 비움은 자기과시나 교만과는 정반대인 낮춤이고 겸손이며 순종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향하도록, 곧, 소통해야만 하는 본성을 지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런 이유에 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통의 원형(모델)’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웃들과의 소통을 위해 그리스도의 소통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합니다.
4. 신비로운 하느님 의 소통에 한걸음씩 더 가까이 다가설수록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싹릅 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이 만들어졌다는 창세기 1장 26절의 말씀처럼 사람은 하느님을 닮 은 존재 입니다. 이는 사람이 나날이 하느님을 닮아 갈 수 있고 닮아 가야 하는 귀중한 존재 임을 일 깨워줍니다. 사람은 그러므로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합니다.(콜로 3,10 참조) 따라서 하느님의 위격적 친교와 일치 안에서 창조된 사람은 소통을 위한 존재이며 소통하는 존재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타인에게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느님 모습을 닮아감으로써 완성에 도 달하게 됩니다.
우리를 생명의 삶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거룩한부르심은 인간 내면 깊은 곳의 양심을 통해 이 루어지고, 그 양심을 통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 하느님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하느님 과의 대화인 기도가 필요하며,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발견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뜻은 무엇보다 소통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닮으라는 초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 신의 온 인격, 곧 ‘말과 행위’로 세상 안에서 자기 증여적 하느님의 소통을 실현시키셨습니다. 이 계 남은 것은 우리의 결단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따를 것인지 자신의 뜻을 따를 것 인지 결단을 내리도록 촉구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모범은 나와 이웃,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 보게 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결합하기 위해 먼저 아버지를 떠나 이 세상에 자발적으로 내려 오셨습니다.8) 특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웃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소극적 인 자세가 아니라, 내가 먼저 이웃에게 다가가는 능동적이고 자발적 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도행전에서 성령께서는 필리포스를 시켜 이사야서를 읽고 있는 에티오피아 관리에게 바싹 다가서라고 명령하십니다. 필리포스는 자신이 먼저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알아듣습니까?”라고 말 문을 열며 용기 있게 대화를 시도합니다.(사도 8,26-40 참조) 이렇게 성령께서는 이웃에게 다가가는 힘을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친교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은총은 오늘도 이웃을 향해 나아가도록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본당공동체 안에서, 이웃과의 관계 안에서, 특별히 소외 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향해서 내가 먼저 다가서는 자세를 지녀야 하겠습니다.
6. 사람이 되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소통하시는 방식은 ‘낮아짐’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주님이요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친구’라 부르셨고,(요한 15,15 참조) 군림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인간을 섬기러 오셨다고 선언하셨습니다.(마태 20,28; 마르 10,45참조) 그분은 급기야 계 자들의 발을 씻어줄 정도까지 낮아지셨습니다.(요한 13,1-17 참조) 그리고 그렇게 낮아지는 모범이 이웃에게 향하는 자세임을 일깨워주시며, 계자들도 세상에 복음을 전하러 나갈 때, 그 겸손의 모 범을 본받아 그대로 실천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요한 13,14 참조)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기로 맹세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위해 파견받기 이전 에 먼저 자신을 낮추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7. 하느님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내어주셨습니다.(요한3,16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소중한 아드님을 내어주시면서 세상과 소통하셨다는 이 사실은 매 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바로 내가 나 자신과 내가 가진 것들을 내어놓는 것이 소통의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 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의 원형입니다. 이계 우리가 이웃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내어주고 자신을 죽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는 밀알 하나가 떨어져서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 습니다.(요한 12,14 참조)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주는 사랑은 하느님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의 열 매를 맺을 것입니다.
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 당신 자신을 낮추어 내려오셨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참 주인을 받아들이 지 않았고 그분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 다. (요한 1,9-11 참조) 예수님 께서 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몇몇이 아니라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을 포함한 많은 이를 위해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계자들도 당신의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이라고 말 씀하셨습니다.(마태 10,17; 마르 13,9; 루카 21,12 참조) 따라서 우리는 고난이나 배척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이웃 소통은 그것이 상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자체만으로 도 우리 영혼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우리 마음이 이웃을 향해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되찾은 아들 의 비유’(루카 15,11-32 참조)를 들려주십니다. 우리는 죄를 뉘우치고 돌아오는 〇아들을 포용하는 자비 로운 아버지의 모습을 이웃을 향해 가져야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당신 생명을 내어 주신 이유는 특정한 몇몇이 아닌 모든 죄인’을 용서하시고 다시 받아들이기 위함이셨습니다. 이 는 우리도 용서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깨닫고 모든 이웃을 향해 항상 자비로운 마음으로 열려 있어 야 함을 일깨워줍니다. 용서가 없는 소통과 친교는 있을 수 없습니다.
9.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탈현대화(Post-modernism)를 표방하면서 세속화의 거대한 물결 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윤리질서가 붕괴되고 이웃과의 접촉이 단절되며, 인간의 가치가 쾌락, 경계력, 안락, 젊음, 외적인 아름다움 등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특히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황금만능주의 사조는 부정부패, 소득 불균형의 심화, 성의 쾌락적 도구화, 퇴폐적 문화의 확산 등을 부채질하고 급기야 경계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생명까지도 위협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단면도 궁극적으로 보면 이러한 세계적인 세속화의 결과라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는 경쟁의 문화가 자리하면서 상생의 원리보다는 약육강식의 논 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약한사람은 점점 자리를 빼앗기고, 힘 있고 능력 있는 사람만 대우받은 사회가 되어갑니다. 공교육은 무너지고, 경쟁력을 조장하는 교육 풍토로 인해 계층 간 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속화의 물결은 사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인간소외’와 인간 존엄성 상실’이라는 상처를 가져옵니다.
10. 우리는세월호의 참사를 겪으면서 참된 인간의 가치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우리 사 회의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를 이 뤄야한다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눈을 뜨는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논리가 아니라 신앙의 논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중받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가난하고 약한 사람도 존엄한 인격으로 인정받는 사회, 모든 계층 이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회, 도덕적 가치가 우선시 되고, 물질적 가치보다 영적인 가치가 존중되 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식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우리 교구는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참 된 행복으로 이끄는 그리스도의 빛을 향해 더욱 매진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 며, 참된 길이고,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회의 문계를 극복할 수 있는 열 쇠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열정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11. 하느님의 소통과 이웃과의 소통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원초적 인 공동체가 바로 가정 입니다. 가정에서 자녀들이 소통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사회에 나가서도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소통하고 일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비우시고 먼저 다가오셨듯이 부부, 그리고 부모와 자녀 모두가 먼저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열어 다가서 려는 용기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가정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모여 인격적 친 교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회는 가족 모두가 신앙 안에서 마음을 열고 서로 다 가가 사랑을 내어줄 수 있도록 가족이 함께 하는 전례를 비롯하여 가족신앙캠프나 혹은 가족피정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가족들이 소통하여 가까워지고 사랑을 나눌 뿐만 아니라 신앙을 성숙시켜 성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12. 소공동체는 함께 모인 이들이 성령과 형계들에게 마음을 열어 말씀’ 안에서 부활하신 그리 스도를 만나는 기쁨을 체험하고, 그 기쁨을 서로 나눔으로써 친교를 이루는 공동체입니다. 소동공체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자신을 낮추고 구성원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받아들임으로 써 그 말씀에 따라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삼위일체이 신 하느님 의 친교를 구현합니 다. 이 친교를 바탕으로 소공동체는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도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도록 초대하 고 돌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소공동체 모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직접적인 만남을 체 험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계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걸으시며 성경말씀을 가슴 뜨 겁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즉시 일어나 이 말씀의 뜨거운 체험을 다른 이들에 게도 나누어 주었습니다.(루카 24,25-35 참조) 이것이 소공동체의 참된 모델이 되어야합니다. 소공 동체는 ‘말씀’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구성원들 서로에게, 더 나아가 이웃에게 다가가 소통을 이루 며,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친교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느님과 이웃과의 소통의 매개체인 소공동체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소공동체 구 성원 모두에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나눌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지속적인 성경교육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통해 얻은 뜨거운 감동과 하느님 사 랑을 같은 삶의 자리에서 살고 있는 다른 형계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전해주도록 해야 합니다.
13.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4,18 참조) 가난한 이들이란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이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친교 방식은 상대에게 부 족한 무언가를 먼저 인식하고 그 필요를 채워주는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불통의 시대라고 하는데, 사실 불통은 자기 것’부터 챙기려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소통은 나눔인데 소유하려고만 하니 불통의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그리스도와 소통하는 신앙인들이 세상을 향해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지부 터 점검해야 합니다. 교회 주위엔 결코 소외된 이들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과의 소통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보호해주고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다 양한복지 서비스 제공을 위한 소통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눔,곧 내어줌이 소통의 시작입니다.
14. 하느님은 당신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맺도록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1 코린 1,9). 우리는 그리스도와 소통함으로써 아버지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아버 지께로 향하는 ‘길’이라 부르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요한 14,6)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삼위일체의 내적친교를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 모두에게 확장시키셨습니다.(요한 10,30; 17,21 참조) 따라 서 소통의 본질은 우리끼리의 단절된 친목의 회복만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웃들을 향해 끊임없이 확장되어 나아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소통은 더 깊고 더 넓은 친교에로 우리 모두를 이끕니다.
소통이 바로 아름다운 친교입니다. 하느님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속을 거닐고 있다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또한 그분의 아들 예수님의 피는 우리를 온갖 죄에서 깨끗 하게 해 줄 것입니다.(1요한 1,7)
평화의 모후이시며 순교자들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친애하는 수원교구 형계자매 여러분,
우리는 교황 성하께서 공표하신 보편교회의 신앙의 해’와 함께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의 역사 적인 희년을 개막합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희년은 2013년 12월 마지막 주일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지난 반세기의 격동기를 보내면서 온 교구민이 일치하여 주님의 복음을 열성으로 전파하였으며, 내·외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구에 무한한 은 총과 축복을 베풀어주신 자비로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교구의 첫 희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은 교구의 지난날을 성찰하는 가운데 신앙의 자랑스러운 전 통을 확립할 때입니다. 우리 교구는 이 기념비적인 순간에 전통과 역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영적으로 쇄신하여, 신앙 공동체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 은 요청에 부응하여 본 교구장은 이 희년이 우리 교구와 사회에 하느님 나라를 앞당기는 도약의 전환점이 되길 바라며, ‘수원교구민의 영적 쇄신의 염원을 담은 이 사목교서를 반포합니다.
1963년 10월 7일 바오로 6세 교황성하의 칙서 [최고의 목자] 반포로 설정된 수원교구는 서울대 교구로부터 분리되어 한수(漢水) 이남 경기도 지역의 1개 시와 10개의 군을 관할하는 작은 농촌교 구로 출발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교구는 사계 412명, 본당 200개, 신자 80만 명에 육박하 여 외형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서울대교구에 이어 두 번째 큰 교구로 성장하였습니다. 교구 설정 당시 성직자 29명, 본당 24개소, 공소 205개소, 신자 42,548명이었던 것1)과 비교해 보면 실로 경 이로운 변화입니다. 지금도 우리 교구 교세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걸맞은 복음화 사 업을 위해 끊임없이 사목적 연구와 실천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구의 이러한 발전된 모습을 전임 교구장님들의 탁월한 사목적 노력과 헌신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조대 교구장 윤공희 주교님(1963~1973)은 ‘신자 재교육, 평신도 사도직 교육’을 통해 교구 공동체의 쇄신에 주력하셨습니다. 제2대 김남수 주교님(1974-1997)은 급속하게 도시화되는 교구의 미래를 예견하고 사제 양성기관인 수원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하여 사제 양성에 주력하시는 동시에, 새 본당 설립’, ‘생명 운동’,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를 지향하고, 교구 공동체 활성 화에 힘을 쏟으셨습니다. 제3대 최덕기 주교님(1997~2009)은 교구 제1차 시노두스(1997. 10. 9~2001. 10.11)를 개최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교구는 미래의 새 복음화’를 위한 중점 과제를 구역·반 공동 체의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의 활성화’에서 찾았고, 이때부터 시노두스 과제의 실현을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또한 대형화된 교구에 맞는 효율적인 사목을 위해 2006년 7월부터 대 리구제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본 교구장은 역대 교구장님들의 모범과 사목적 유산, 그리고 영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보 다 효율적이며 다양한 복음화 사업을 위해 ‘새 복음화’와 내적 복음화’ 그리고 ‘외적 복음화’라는 세 개의 틀 아래 교구장 중점 사목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습니다. 또한 2010년~2012년에 교구가 역점을 두고 시행할 내용을 담은 사목교서 ‘교회와 청소년’을 반포하여 청소년 사목에 힘을 쏟았습니다.
우리 교구의 급속한 외적 성장 이면에는 극복해야 할 적지 않은 과계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교 구 시노두스 당시 세례자 수와 주일미사 참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쉬는 교우 수가 증가하던 상황 은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지금에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미사 전례 안에서도 활력과 영성을 얻지 못하고, 선교를 향한 열정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활기찬 교회의 모습과는 달리, 내적으로는 심각한 신앙의 갈등과 위기 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 사회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그 문명의 변화로 많은 문계를 양산하고 있으며, 교회에도 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고유한문화와 전 통이 단절될 위기에 처해졌고, 외래문화의 무분별한 수용은 우리의 정체성까지 위협하고 있습니 다. 고도의 경계 발전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게 하였지만, 심각한 사회 부조리와 소외계층을 출 현시켰습니다. 최근 들어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과 함께 경계적 불평등과 소외현상이 확산 되면서 실업과 빈부격차가 극대화되고 경계적 ■ 사회적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이는 물질만능주의를 더욱 부추겨 인간의 본질적인 내적가치, 곧 정신적, 윤리적, 신앙적 가치를 외면 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생명경시풍조 등으로 대변되는 ‘죽음의 문화’5]는 확산일로에 있습니 다. 이 밖에 청소년 폭력, 인권 침해, 소통의 부재, 환경파괴 등은 인간의 품위와 존엄성을 해치는 형태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문계들은 결국 삶의 최종 목적 과 의미를 외면한 채 하느님과 궁극적 행복에 대한 열망을 잃고 방황하는 현대인의 내면을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상황은 그리스도인이 신앙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비록 오늘날이 우리나라 초대교회 당시 수많은 신자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박해시대는 아니지만, 건전한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요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21세기의 과학문 명 사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수호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신앙인들 또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비신앙인들과 같은 문화와 체험을 이 시대에 함께 나누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신앙이 종종 삶의 본질 적 기준이요 목적이 아니라, 부차적이며 사교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며, 신자로서 해야 하는 몇 가지 의무를 형식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만족하기도 합니다. 또한 신앙 때문에 오는 사회적 계 약이나 불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편의 위주의 신앙에 젖다 보니, 희생과 봉사를 전계로 하는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거부하게 됩니다. 시련이 닥치고 어려움이 생기면, 세상의 불의와부정과 타협하고 신앙을 쉽게 저버립니다. 이러한 ‘신앙 따로, 삶 따로’의 신앙생활은 우리 를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은”(묵시 3, 16) 신앙인으로 전락시켜 버립니다. 그리스도 신앙이 우리 교우들의 삶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은 우리 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음을 의미하며,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미래 사목방 향을 전개할 것인가를 묻도록 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서 드러나는 가장 시급한 과계는 결국 신앙심의 심화와 그에 걸맞은 실천 과 행위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과 세상의 구원을 향한 열망과 신앙인의 본분, 그리고 성성 (聖田을 상실하고 방황한다면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구 공동체가 한 단계 성숙한 교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교구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일체가 되어 영적으로 쇄신되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구 가 교회 활동의 외적인 부분에 관심과 노력을 쏟았다면, 이제 교회 신앙 선조들의 열정적인 신앙 심을 본받아 초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할 때 가 온 것입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막 50주년이 되는 오는 10월 11일부터 2013년 그리스도왕 대축일(11월 24일)까지를 ‘신앙의 해’로 선포하고 “온 세상의 유일한 구세주이신 주님을 향하여 참으로 새롭게 돌아서야 한다.” 는 말씀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권고는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다시금 그리스도께로 눈을 돌리고, 신앙의 내적 성숙을 이룰 것을 요청 합니다. 오늘날 ‘죽음의 문화’로 위협받는 우리 사회에 복음의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먼저 그리스 도인들이 신앙의 핵심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간으로 우리 안에 오신 역사적 인 물 천주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인간을 향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이 빛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내적 성숙의 길은 각자가 “신앙의 여정을 재발견”하여 “그리스도와 만 나는 기쁨과 새로운 열정”8)을 되찾는 데에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 구원사의 역사를 올바로 이해 하고, 그 안에서 개별 신앙인이 자신의 몫과 역할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면서 그분 안에서 참 된 행복과 평화를 발견하고, 우리의 죽음과 삶, 고통과 기쁨,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이 해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규범과 기준으로 삼고 따르며, 그분과 깊은 인격적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각자의 신앙 여정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는 일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참으로 중요한 과 계 입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상에서 고통당하고 돌아가 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갈라 2, 20).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근본적 믿음으로 고백하는 세례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대상, 곧 신앙의 내용을 잘 알고, 그것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고백하며 실천하는 일입니다. ‘신앙 의 해’를 맞아 보편교회의 계안에 따라 교회의 신앙을 전해주는「가톨릭 교회 교리서화「계2차 바 티칸 공의회 문헌」을 읽고 연구하며 묵상해야 하겠습니다. 나아가 인류 구원사가 담겨있는 성경 을 읽고 묵상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소명과 직무를 알고 깨닫는 중요한 도구와 수단이 될 것입니 다. 이 렇게 깨달은 신앙 내용의 정수, 곧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신비는 신앙생활의 정점 인 전 례를 포함한 교회의 모든 활동 안에서 더욱 깊이 체험되고 체득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 교구장은 교구 설정 50주년을 우리 모두의 영적 쇄신을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해’로 선포합 니다. 그동안 우리 교구가 열의를 다해 추진해 온 여러 사목 정책이 더욱 풍요로운 열매를 맺기 위 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와 회개를 통한 신앙의 내적 성숙이 필요하기 때문입니 다. 이러한 노력들은 교회의 신앙을 강화하고,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향상시키며, 그리스도의 성 성(聖性)에 더욱 완전하게 참여하도록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 교구에서는 교구민의 실천운동으로서 “잘 섬기 겠습니다!” 영성운동을 전개하고 있습 니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우리 교구가 전통적으로 굳게 지켜온 3대 신심, 곧 성체·성모·순교 자 신심’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신 말씀으로 창조한 인류를 위해 당신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 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성체 신심), 이 절대적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믿음으로 고백하 며 당신 자신을 하느님 신비에 온전히 맡기며 순종하신 성모님처럼(성모 신심), 그리스도의 사랑 때 문에 자신의 현세적 명예와 지위, 생명을 포기하며 하느님 사랑을 증거 하려 했던 순교자처럼(순교 자 신심), 그리스도인은 ‘섬김’이라는 가시적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기쁨과 희망을 선포 하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이 운동의 복음적 내용인 섬김’은 서로를 이기기 위해 무한경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류 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섬김’을 통한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과 증거만이 탐욕과 폭 력으로 얼룩진 ‘죽음의 문화’로부터 ‘생명의 문화’를 다시 회복하고, 인간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희 망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또한 불신과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를 소통과 신 뢰회복의 길로 인도하는데 큰 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따라서 수원교구민은 “잘 섬기 겠습니다!” 운동을 삶 안에서 적극적으로 실천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문화 안에서 신앙을 새롭게 발견 하시기를 바람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영적 쇄신은 우리 교구가 새 복음화’를 실현하기 위해 계시 한 구체적 사목 방향, 곧 소공동체 활성화’,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가정성화’, 사회복음화’에 새로운활력과숨결을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는 그리스도교 영성이 살아숨 쉬어야 합니다.
① 소공동체 영성의 재발견초대 교회에서 신앙인들이 함께 모여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고 형계적 사랑을 실천했던 것처 럼, 구역, 반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소공동체 모임이 뜨거운 열정으로 활성화되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구체적으로 체험하고 나눌 수 있는 모임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소공동체 모임이 본당 내에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힘을 기울였다면, 이계는 이 모임이 참으로 교회의 살아 있는 세포의 역할을 하도록 전력을 쏟아야 하겠습니 다. 소공동체는 작은 교회이며 그리스도의 사 랑으로 살아가는 공동운명체 입니다. 본당이 대형화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 형계자매임을 깨닫고 친교를 나누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인들은 교회에 대한 애착 과 관심, 자긍심을 잃고, 점점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신앙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소공 동체 모임이 교회 구성원으로서 하느님의 한 형계자매임을 체험할 수 있게 하는 장, 열렬한 기도 와 사랑 실천을 통해 살아계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특히 소공동체는 자선과 애덕활동이 신앙의 본질인 ‘나눔이요 섬김’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 줄 것입니다.
② 영적 성장의 요람인 가정‘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는 가정과 부모의 역할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신앙생활로부터 멀어지는 근본적 이유는 부모들이 신앙생활을 멀리하는 데서 오는 경우가 대부분 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부모들이 세상의 사조와 시류에 편승하여 자녀를 교육하기 때문에, 신앙 교육의 기회가 상실되어 가정과 부모에 의한 신앙의 전수가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 상을 계속 방치한다면 그리스도교 신자 자녀들은 자신이 마땅히 받아야 할 신앙교육으로부터 계 외되고, 세속적 가치관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 것이며, 신앙인으로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 을 모두 버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위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하게 요 청되는 것은 ‘부모들의 사고의식 전환과 영적 쇄신’입니다. 가정은 부모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 을 배우는 신앙의 보금자리이고 첫 학교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성화’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 되는 과계이며, 이를 통해 청소년들이 가정에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아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③ 신앙의 내용을 삶의 실천으로: 사회복음화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의 내적 쇄신은 교회의 본질인 선교와 외적 복음화로 드러납니다. 적지 않은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오해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사회참여는 교회 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화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강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9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세상과 함께 고통과 갈등을 나눌 때 참다운 복음화가 이루어지며 화해와 일 치의 성사로서의 교회의 기본적 사명을 확립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권위와 사도좌는 사 회교리를 통해, 적절한 사회참여는 그리스도인의 본연의 의무’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 과 함께 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 소유물을 거 침 없이 나누고, 사람의 생명과 생태환경을 살리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는 일입니다. 이는 우리가 신앙 안에서 발견 한 그리스도인 삶의 기쁨과 희망을 이웃과 나누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랑의 나눔과 실천으로 교회는 어둡고 절망적인 사회를 희망 가득한 세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교구는 지금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 신실한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은 그동안 주님께서 우리 교구에 내려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 100년 을 향해 가는 교구의 청사진을 준비하고 계시하는 희망의 원년입니다. 모든 이가 주님을 만나는 희년이 되도록 힘을 모아야겠습니다. 특히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이를 사로잡아 감동시키고, 모 든 교구민의 영적인 쇄신을 통해 교구의 신앙 전통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출발점이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면서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준비위원회의 미래정책분과’는 지 난 3년간 각 복음화분야별 연구를 거쳐 새 복음화 건의안’을 계출하였습니다. 이 건의안에는 우리 교구가 새 복음화를 향해 시행하고 있는 ‘수원교구 대리구계도 보완지침’을 비롯해 각 분야의 미 래정 책을 위한 길잡이가 담겨져 있습니 다. 본 교구장은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교구의 미래 복음 화를 위해 이 건의안을 시행하도록 승인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구의 모든 신자는 신앙의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고 신앙의 열정을 되찾고자 마련된 이 건의안이 구체적으로 실현되도록 노력해 야 할 것입니다. 새롭게 마련된 ‘새 복음화 건의안’이 각 분야에서 구체화될 수 있도록 교구민 모두 의 아낌없는 기도와 성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아 우리 교구의 주보이신 평화의 모후 성모님께서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모든 거룩한주님 사업이 풍성한 기쁨과 희망의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 전구하여 주시기 를 기도드립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제 1차 시노두스 이후, 수원교구는 교회의 미래를 준비하며 시노두스의 실현 과계인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를 실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또한 이를 더 욱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새로운 사목체계인 대리구계를 시행하면서 새복음화 시대를 열 게 되었습니다.
본 주교는 역대 교구장 주교님들이 마련한 사목적이고 영적인 유산을 계승하고 전통을 보전 하면서도, 수원교구가 이 시대에 더욱 역동적이면서 생명력을 갖고 지상교회에 맡겨진 주님의 사명을 다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에 따라 본 주교는 수원교구 계 4대 교구장직을 수행하는 동안 교구 복음화 실현을 위하여 실행할 ‘교구장 중점 사목 방향’을 계시하고, 그 가운데서도 2010년부터 3년간 특별히 관심을 가 지고 실천해야 할 사목 지침들을 담아 ‘사목교서’를 공표합니다.
1. ‘새 복음화’는 과거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현실을 새롭게 분석하며 , 세상 안에서 끊임 없이 지속되는 하느님의 구원경륜을 이해하여, 우리 시대에 수용할 수 있는 복음적 언어로 전해야 하는 사명을 말합니다. ‘새 복음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교회가 “우리 시대의 뜻”1을 통해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을 간파하고, 그분께서 맡겨주신 세상의 복음화를 새로운 열정, 방법, 표 현으로 구현해 나아가야 합니다. 따라서 그동안 수원교구가 역점을 두고 시행해 온 모든 복음 화의 노력들이 새 복음화’의 요소에 포함될 것이며, 교구는 시대적 소명에 따라 이를 새롭게 해석 하여 이 시대에 적응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수원교구의 ‘새 복음화’는 특별히 수원교구 계 1차 시노두스의 양대 실현과계인〈소공동체 활성화〉와〈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그리고 이를 뒷받 침하기 위해 시행해 온〈대리구계의 정착〉과〈가정의 성화〉가 중심축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내적 복음화(Ad Intra Evangelizatio)2. ‘내적 복음화’는 그리스도인들이 ‘새 복음화’를 실현하고 세상의 복음화 사업에 참여하기 위 해서 우선적으로 갖추어야 할, ‘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오늘날 수원교구 민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영적·내적 자세는 참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수원교구는 ‘순교자들의 땅’이며 그 순교의 피가 젖은 땅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보편적인 가톨릭 교회도 초대 교회 순교자들의 기초 위에서 만개(滿開)하였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 따라서 수원 교구민은 한국 순교자들의 후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수원교구 내 많은 성지의 다양한 지향 을 바탕으로 전교구적 일치를 이루면서 순교자의 정신을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내적인 순 교정신을 바탕으로 이 시대에 복음적 삶을 실천하고 증거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 해 교구에서도 신자들을 위한 다양한 영적 체험과 내적인 복음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계시 할 것입니다.
외적 복음화(Ad Extra Evangelizatio)3. ‘외적 복음화’는 ‘내적 복음화’의 다양한 표현으로, 세상 안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그 책임과 사명을 수행 하는 삶을 말합니다. 세상을 향한 교회의 선교적 노력은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교회의 설립 부터 ‘마지막 날’까지 지향해야 하는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 도께서 실천하셨던 위업을 교회와 세상의 현실적 삶에 투영시켜,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억압받 는 이들과 함께 하며, 사회정의, 환경 등 다양한 교회의 대사회적 사업들을 전개해야 할 소명을 갖습니다. 이를 위해 수원교구는 지역선교, 해외선교, 사회복음화와 사회의 정의와 평화 실현, 장애인, 노인, 교도소 수인, 이주민을 포함하는 사회복지 등에 더욱 관심을 갖고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생동감 넘치는 활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
4. 수원교구 계 1차 시노두스는 그 실현 과계의 하나로〈청소년 ᅮ 신앙생활 활성화〉를 채택하 여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 문계는 오늘날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청소년을 위한 사회적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 교회로 하여금 청소년 사목에 대하여 더욱 숙고하고 정진 하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현재 청소년들은 교회의 재정적인 투자와 관심에도 불구하고 안정적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며, 신앙과 교회를 멀리하고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청소년 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오늘날 교회의 사목적 노력들은 점점 더 한계점을 드러내었으며, 이렇게 교회의 정체된 청소년 사목 구조는 결국 청소년들이 교회에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수원교구는 청소년 사목의 현 상황을 심각히 반성하면서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대처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에 교구에서는 청소년국을 중심으로 각 국이 협력하여 청 소년 사목의 극대화와 새로운 도약를 위해 노력할 것이며, 각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위원 들을 선발하여 위촉하고, 청소년 사목의 효율적 전환을 위한 다각적 인 검토와 연구를 진행하게 될 것입니다.
의식의 전환 : 청소년은 사회와 교회의 중요한 주체자요 동반자5. 오늘날 급속한 사회 문화적 변화와 경계계일주의적 환경은 청소년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갖 고 건전하게 성장하는 데에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경쟁 사회의 구조적 결함과 입시 위 주의 교육 정책은 청소년들의 과도한 경쟁을 유도할 뿐 아니라, 불안한 심리적 상태를 자극하고 윤리적·정서적 성장을 저해함으로써, 그들의 인격적 성숙에 적지 않은 장애를 주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방황하는 청소년이 증가하고 자살에까지 이르게 하는 기형적 청소년 상황과 문화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문계는 청소년 자신만의 문계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교회 의 문계 입니다. 그동안 사회는 우리 자녀 인 청소년들을 교육을 받아야 하고, 양육되어야 하고, 보호받아야 할 사회의 객체자’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계는 우리 사회와 교회에 반드시 필 요하고 소중한 구성원이요, 중요한 ‘주체자’이며 ‘동반자’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의 주체는 청소년6. 교회의 미래를 열어 갈 주인공은 우리 청소년들입니다. 우리는 청소년들이 교회를 책임질 소중한 주역들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항상 청소년들을 위해 많은 관심을 가져 왔습 니다. 그러나 그동안 교회는 청소년들을 사목의 대상으로 인식하여 마치 사회적 교육구조에 따 른 교육의 객체처럼 인식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은 청소년의 위치를 교회 안에서조차 ‘교실에 갇 힌 수동적인 수혜자’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3년 전 전임 교구장님께서 사목교서를 통해 표명하신 ‘청소년의, 청소년에 의한, 청소년을 위한 사목(Pastoral of, by, for youth)’을 다 시 되새겨 봐야 합니다. 이는 이미 수원교구 계 1차 시노두스 최종문헌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 다.4이계 교회는 청소년 사목에 있어서 청소년들을 사목의 주체요 주역으로 보고, 청소년들 안 에 새로운 ‘가톨릭 청소년 문화’가 꽃피고 정착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이야말로 청 소년을 직 접 만나는 첫째 사도요, 자신들이 사는 사회 환경 에서 자기 자신들 가운데서 자기 자 신들을 통하여 사도직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교회의 모든 계층이 역량을 다 하여 청소년 사목의 새로운 기틀과 장을 마련하기 위해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가정은 청소년들의 1차적 신앙공동체7. 종교 교육에 있어 가정의 역할과 영 역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종교 교육은 가정 이 ‘가정교회’로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청소년들의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 이 교회에 무관심한 이유는 사회·문화적 상황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1차적 신앙공동체인 가정의 역할 부재에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한 실례를 들면, 부모들 이 입시 위주의 자녀 교육에는 혼신을 다하면서도 정작 신앙의 유산을 그들에게 물려주는 데는 소극적 인 면을 보이는 것 등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다양하고 복잡한 그들의 문화 안에서 참된 가치관을 발견하고 성숙하고 올바른 신앙인으로서 미래를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그리스도교 적 모범과 증거를 자녀들에게 증여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를 위하여 시노두스 최종문헌에서 언급한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위한 부모 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사목 현장에서의 실천은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교구는 대리구와 본당 공동체와 함께 부모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부모들이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적극적 인 자세와 태도를 갖도록 하기 위해 노력 할 것입니다. 교구의 복음화국과 청소년국은 가정 사목과 청소년 사목을 연계하여 이를 뒷받침 할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청소년 사목8. 시노두스의 결과로서 또 다른 축인〈소공동체 활성화〉는 청소년들의 신앙생활을 위해서 교회가 공동 협조 체계를 갖추기 위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소공동체는 가정들의 연대 안에서 살 아 숨쉬는 작은 교회의 모습을 더욱 드러내며, 본당 공동체와의 깊은 결속으로 교회의 청소년들 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이러한 공동체적 책임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다가가도록 요청합니다. 청소년들의 신앙 교육 은 그들의 가정과 본당의 교리교사들에게만 맡겨 진 것이 아니므로, 가정과 반·구역 의 모든 교 우들이 함께 관심을 갖고 그들을 위한 영적·물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을 위한 교리교사와 전문 인력의 양성9.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청소년 문화의 쇄신과 미래를 위해 교회에서는 그들의 문화를 이해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사목적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그들 안에서 봉사할 교리교사와 여러 부류의 전문 인력의 양성해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을 위한 많은 프로그램에도 불구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고 그들 문화 속에서 함께 하며 , 그들을 참 그리스도인으로 양성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지 못한다면, 청소년 사목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청소년을 위해 사명감을 갖고 고유한 직무를 수행할 교리교사와 전문인력을 양성함에 있 어서, 과거의 양성 프로그램을 재점검하고 효과적인 양성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새 복음화 시대 에 걸맞는 새로운 청소년 사목을 전개해야 하겠습니다.
본당 공동체의 관심과 배려10. 본당은 청소년 활동의 중심이며 청소년 사목의 원천입니다. 본당에서 청소년들이 살아 움 직여야 역동적인 공동체가 됩니다. 본당에서 청소년 사목의 계 1 주관자요 관리자는 신앙의 교 육자인 본당 주임 신부입니다. 본당 주임 신부는 보좌 신부와 수도자 그리고 교리교사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본당의 청소년 사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본당의 모든 교우들은 청소년 사목의 공동 책임자임을 의식하여 청소년들을 위한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고, 재정적 인 뒷받침은 물론 실계로 그들을 위해 봉사함으로써, 본당 공동체가 혼 연일체가 되어 청소년들을 미래의 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 나 청소년 사목의 핵심적 내용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본당 공 동체는 그들의 눈높이에 맞는 신앙 기초교육과 사회에서 보충하지 못하는 전인교육을 병행하여 야 하며, 특별히 본당 청소년을 위한 전례는 하느님의 말씀을 느끼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최고 훌륭한 장인 만큼 청소년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전례를 거행해야 합니 다. 또한 여 러 가지 이유로 청소년을 위한 교리교사나 봉사자 양성에 어 려움을 겪고 있는 본당 에서는 이웃 본당이나 지구와 연계해서라도 청소년들로 하여금 신앙교육의 기회를 놓치지 않도 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대리구나 교구 차원에서 마련하는 청소년 프로그램이나 봉사 자 양성 교육에도 적극 참여하도록 배려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관심 가져야 할 청소년11. 교회는 약자와 가난한 이들, 소외당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정서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은 그들의 생활 환경과 문화, 그리고 또래와 의 관계 안에서 많은 영향을 받으며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합니다. 그러나 한편 으로 우리 사회는 부정적인 가치관을 형성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로 청소년 문계를 악화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도 청소년 문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청소년 사 목에서 교회는, 또래 안에서 소외된 청소년, 빈곤과 결손 가정의 청소년, 교정대상이 되는 청소 년, 장애를 가진 청소년, 학교 부적응 청소년,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청소년 사목은 교회의 미래를 설계하고 완성시키는 무엇보다 중요한 복음화의 과제입니다. 이 복음화의 주역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입니다. 교회의 복음화활동 안에서 성령께서는 복음 의 힘으로 교회를 젊어지게 하시며 끊임없이 새롭게 하시어,온 교회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백성’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복되신 동정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