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과 광주 두 곳에 있는 대신학교만으로는 사제 양성이 부족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교구장과 사제들, 신자들이 뜻을 합하여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84년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방한 및 한국 천주교 설정 200주년 기념신학교를 설립하였다.
1994년 7월, 수원교구와 중국 길림교구는 자매결연을 맺어 교구간 물적, 재정적, 인적 교류에 나섰고 그 첫 열매로 1996년 8월 길림교구 다조구에 성당을 신축 기증했다.
이로써 도움을 받았던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의 모습을 보여주게 되었다.
교구청 업무와 조직의 규모에 맞게 수원시 장안구 정자동에 지상 6층, 지하 2층, 연건평 4,082평의 새 교구청사를 완공하고 1997년 2월 6일에 이전했다.
구 교구청사는 가톨릭 청소년 문화원 및 청소년국과 사회복음화국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2000돌을 기념하며,3천년기를 여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 복음화를 위해 우리에게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탄생 2000돌을 맞으시는 그분을 진정 기쁘시게 해 드릴 생신 선물은 보다 복음화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는 것입니다. 보다 복음화된 세상은 우리 자신들의 복음화,우리 가정의 복음화,우리 사회의 복음화,더 나아가 이웃 국가들의 복음화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한국교회는 세계의 여러 나라 교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죽의 장막'을 치고 살던 중국의 개방으로 중국교회가 도와 달라고 호소해 오고 있고,'철의 장막’ 을 치고 공산주의를 신붕해 오던 러시아와 구소련 연합 국가의 교회들도 도움을 요청하고 있음을 우리는 직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사회는 민주화와 경제 성장이라는 큰 성과를 이룩했으나 아직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이고 급변하는 사회현상으로 여러가지 해악과 부작용을 안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윤리 도덕적 위기와 가치관의 혼란을 맞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여기’에서 누릴 행복만을 추구하고 참된 행복과 영원한 행복을 지향하지 않습니다. 또 이웃과 함께,인류 가족과 함께 누리는 행복이 아닌 나만의,내 가족만의 행복 추구로 인하여 부정부패,강력범죄,성폭행,생명 경시 사건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이렇게 중병을 앓고 있는 우리 사회 역시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교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민족복음화와 인류복음화를 책임질 한국 천주교회는 어떠합니까? 한국천주교회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면서 신자도 많아졌고 사회복음화에도 일조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동안 성장 발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영세자는 감소하고 냉담자와 행불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고 많은 사목자들과 열심한 교우들은 위기의식을 느끼며 빠른 사회변화에 알맞는 교회쇄신이 필요함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깊은 영성과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하여 새로운 사목적 구상을 가지고 사목 목표를 세우며 조직을 정비하는 등, 체계적인 작업을 이루어 감으로써 교회의 쇄신을 이루어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쓸모 있는 복음화 도구가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천주교도 예수 그리스도도 마치 백화점의 여러가지 상품들 중 하나처럼 생각하고 취사선택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 역시 시대의 흐름에 물들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생활에 가장 기본이 되는 주일 미사참례를 빠지면서도 잔치집이나 산과 들을 찾아 갑니다. 또 7성사와 성교사규도 우리 삶의 이러저러한 것들에 의해 밀려나고 있습니다.
다른 한편 오늘날은 믿지않는 이건 믿는 이건 모두가 바삐 움직이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신세대이건 기성세대이건 모두가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고급술집과 러브호텔을 찾고 호화사치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 찾는 것과 수도자나 지리산 청학동 사람들이 찾는 것이 무엇일까요? 모든 이들이 찾는 것은 한결같이 행복한 삶일 것입니다. 이렇게 모두들 행복을 찾고 있는데 행복을 추구하는 모습과 과정이 어찌 이렇게 다양합니까? 서로 다르다 못해 심지어는 서로 반대되기까지 합니다. 행복을 찾는 이 모든 길들이 과연 우리를 모두 참 행복에로 인도해 줍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치 사랑,사랑하지만 진실한 사랑이 있고 가짜 사랑이 있듯이 행복도 그러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가짜 행복이 있고, 찰라의 행복이 있고 항구하고 영원한 행복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우리가 찾고 있는 행복이 참된 행복인지 아닌지 잘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생을 걸고 가짜 행복을 찾아 헤매는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참된 행복의 길을 찾으려는 결심과 행복한 삶을 향해 나아가려는 우리의 노력이 꼭 필요합니다. 즉,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철학을 가지고 선택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만난 모든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셨습니다. 당시 영생을 얻으려는 사람,진리를 찾던 사람,나병환자,중풍병자,과부, 가난한 사람등 그분과 진정으로 만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삶의 용기를 찾거나 (새)생명(력)을 얻음으로써 행복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분을 진정으로 만난 사람들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이야말로 참된 행복의 길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세대대로 행복에로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변하지 않으시는 유일한 구세주요(히브리13, 8)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안겨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르치시기를 ‘행복의 길은 복음(또는 예수그리스도)을 믿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고,불행의 길과 멸망의 길은 복음(또는 예수그리스도)을 믿지 않고 이기주의적 삶,-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 죄의 삶을 사는 것’ 이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한 절대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은 것은 … 그리스도를 믿어서 된 것이지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에페소 2, 8) “하느님께서는 믿는 사람이면 누구나,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당신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십니다.”(로마 3, 22)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입니다.”(로마 1, 17) 그런데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필립비 3, 18-1 9 ) 필립비서는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를 지어 멸망의 길을 간다 해도 “주님을 믿으며 굳세게 살아가라”(4, 1)고.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것 위에,우리 삶 전체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을 따르렵니다.” “나는 주님의 뜻대로 살렵니다.”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이러한 굳은 믿음과 실천적인 삶이 있을 때 하느님께로부터 참된 행복인 - 기쁨,평화,사랑, 정의가 넘치는 삶을 - 받게 될 것입니다. 부부간에도 상호간의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신뢰심을 지켜나가는 실천적 삶이 있어야 금실이 좋은 부부생활,행복한 결혼생활이 전개됩니다. 반대로 상호간의 신뢰가 깨지면 모든 것에 금이 가고 결국 싸움과 가정파탄이 오고 불행과 죽음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이 참된 행복을 누리기 위한 절대적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믿음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생존시에 주위 사회나 종교적 전통과 대조적인 가르침과 삶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율법이 아니라 사랑이 첫째임을 강조하셨고, 정치적 해방을 바라던 당시 사람들에게 죄로부터의 근본적인 해방을 강조하셨으며,영광의 메시아를 그리던 기대를 뒤엎고 십자가를 지고 죽는 하느님의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처럼 오늘을 사는 믿는 이들의 삶도 자신이 선택한 대조적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은 마치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는 교훈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처럼,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아무리 부정한 생활을 하고 호화스런 생활을 할 지라도 내 길을 갈 수 있는,정말 개성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은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주위의 많은 가정들이 핵가정화를 해 가고 가정에서조차 개인주의적인 생활을 한다 할지라도 의식적으로 함께 사는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 진정 그리스도 공동체가 되기 위하여 가정기도와 가족대화의 생활을 하려 노력하며,교회 생활에서는 주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미련스럽다고 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성당 짓는 일, 주일미사 참례와 7성사생활,성교사규를 충실히 이행해 나가는 사람으로 살며,직장 및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믿는 이들은 윤리적으로나 돈에 있어서 깨끗한 삶을 살아가고 성실하고 솔선수범하며 직장과 동료들, 이웃들을 사랑하는 대조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여야 합니다. 내 고뿔만 중히 여기는 사람은 이웃의 장례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보되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보아야 하듯이 우리 교회를 보되 이웃사회,이웃나라,이웃교회도 같이 보고 도우며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믿는 이들로서 더 나아가 세계인으로 살아가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려면 '여기' '지금'의 '행복'을 지 향하는 삶을 자제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와같이 오늘날 다원주의 사회에서 믿는 이답게 사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복음정신에 바탕을 두고 내가 선택한 대조적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이 개개인이 정말로 성서말씀 생활과 기도생활을 잘하고 성체성사등 성사생활을 통해서 그리고 사랑의 실천을 통해서 우리에게 오시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함께 사는 삶이 된다면, 그의 생활은 기쁨과 평화, 감사와 사랑과 나눔의 나날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야 말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요, 여수 그리스도께로부터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정은 가족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일에 충실하게 되고, 믿음 안에서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힘과 폭이 점점 커져서 성가정이 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는 직장과 사회에서도 봉사적이고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심는 전도사가 되어 그곳에 사랑과 평화, 기쁨과 정의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때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바보 취급받고 박해도 받겠지만 이를 이겨내면 결국은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될 것이니 이 또한 행복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세계교회를 바라보면서 믿는 이들의 공동체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죽음과 부활로써 가르쳐 주신 "죽어야 산다", 남을 살려야 내가 산다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살고자 합니다. 그래서 한국천주교회가 처음 시작하여 어려울 때 주문모 신부님을 보내주었던 중국교회와 몽골, 러시아 등에 이제는 한국교회가 그리고 우리 교구도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이렇게 서로 사랑을 주고 받는 삶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이요 행복한 삶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행복사냥에 나선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행복들은 각양각색이고 서로 상충되는 것도 있습니다. 이 행복들이 모두 똑같은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이 행복들 중에는 가짜행복, 부분적행복 그리고 완전한 참 행복이 있습니다. 우리는 참 행복을 추구해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참 행복을 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속이시지 않으십니다.(디도 1,2)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러기에 우리를 당신의 행복에로 초대하십니다. (요한 1서 4,7-21) 이제 우리의 순명적 응답과 매일매일 삶속에서의 힘찬 실천만 남았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우리 자신의 복음화와 민족의 복음화, 더 나아가 세계복음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이요 동시에 우리가 행복하게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지금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2000주년이 되는 생신기념으로 참 행복을 주시는 그분을 굳게 믿고 살아감으로써 그분께 보다 복음화된 세상을 봉헌하여 그분의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