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수원교구는 농촌이 대부분이고 방인 사제로만 구성되어 있어 외부의 지원이 없고 경제적 자립도 약했던 지역이었다. 초대 교구장은 자립을 위한 신자 재교육에 주력하여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전국 ‘평신도 교육 3개년 계획’을 통해 교구 공동체의 쇄신과 부흥을 이끌었다.또한 신학생의 양성과 후원을 위해 ‘우슬라회’를 창설하였다.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교구장과 사제들의 일치속에서 신자들의 신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주교와 사제단이 일치 안에서 신자재교육을 통해 신앙의 기초를 다진 시기”
교황 바오로 6세, 1963년 윤공희(빅토리노) 주교를 수원교구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
당시 1개시 10개 군 신자 42,548명(3.2%), 본당 24개, 공소 205개, 사제 28명, 대신학생 26명, 수도자 44명으로 농촌 중심의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상태로 출발
자립을 위한 신자의식 계발에 주력 및 신자 신앙교육을 통한 교구 성장을 꾀함
교구청사 신축(화서동 100번지 437평)과 성소 계발(신학생 후원단체 우술회 발족)에 주력
수도회의 활발한 진출을 통해 본당사목과 의료사업에 큰 발전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1969년) 결성 및 평신도교육 3개년 계획(1972~1974년) 통한 교구 공동체 쇄신 및 부흥운동
1972년 7월 교구청 행정기구 개편(사목부 신설 등) 및 1973년 교구 내 각 본당 사목협의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