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그 밖에도 못 하는 것이 거의 없어 보이는 동기 신학생이 있었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해서 기도 시간에 제일 나중에 성당 문을 나오는 친구였습니다. 아무튼 모든 점에 있어서 다른 이의 모범이 되는 친구였지요. 그런데 이 친구가 여름 방학 끝나고 개학 때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에게 물어보니, 방학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신학교 생활하면서 우울증으로 힘들었다면서 말입니다. 당시만 해도 우울증을 정신력이 약한 사람이 겪는 것으로 여겼었습니다. 그래서 다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친구 정신력이 강해 보였는데 아닌가 보네.”
정신 질환은 나약한 사람이 앓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본인이 의지를 세우면 얼마든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친구는 결코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이 의지를 세우려 그토록 노력했지만 결국 무너지고 만 것입니다.
지금은 우울증을 마음의 감기라고 할 정도로 흔하기도 하고 또 치료받아야 할 병으로 여깁니다. 아주 특별한 사람만 이 병에 걸릴까요? 2020년 OECD 국가별 우울증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의 우울증 유병률은 36.8%로 전체 1위를 차지했습니다. 2.5명 당 1명 꼴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이만큼 우리 인간은 계속해서 보호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 역시 보호가 필요할 정도로 나약함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완벽한 사람을 뽑지 않습니다. 당신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을 당신 제자로 뽑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부인 시몬을 뽑습니다. 그런데 어부로서 그렇게 능력이 뛰어났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밤새도록 애써도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자기 직업에 대한 자부심도 없는지 목수인 예수님 말씀을 듣고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립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자,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됩니다. 이때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자기 기술이나 능력을 초월한 어떤 힘에 사로잡혀 두려워졌던 것입니다. 그때 깨닫게 되는 것이 자기 죄악입니다. 그래서 죄 많은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주님께서는 죄가 많다고 해서 내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 많은 부족함을 보시고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부르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의 보살핌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더욱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해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는 있다(클라이브 루이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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