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복음: 마태 19,23-30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성인은 12세기를 살았던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당시 그의 역할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12세기를 자신의 두 어깨에 짊어졌다.”라는 말까지 돌 정도였습니다.
베르나르도의 지혜와 경륜은 하늘을 찔렀는데 당대 교황님들을 비롯해 많은 왕들이 그에게 조언과 상담을 청했습니다.
단 한번이라도 그를 만나 본 사람들은 ‘사람의 모습을 한 천사’라며 우러러 보았습니다.
동시에 베르나르도는 가톨릭 신앙의 옹호자, 수도생활 쇄신의 선구자, 교회 분열을 저지하는 든든한 보루, 탁월한 성서학자, 위대한 명 설교자, 그러면서도 겸손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동시에 살아갔습니다.
그는 ‘가톨릭교회의 마지막 교부’ 또는 ‘꿀과 같은 혀를 가진 박사’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1090년 프랑스 귀족 가문의 촉망받는 자녀로 태어난 베르나르도는 다정다감하고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22살의 나이에 시토회에 입회해서 수도생활을 시작합니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출중한 인품과 지도력, 그리고 놀라운 언변과 감수성의 소유자였습니다.
입회하기 전 그는 여러 형제들과 친구들을 영적으로 잘 지도하고 설득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30명이나 되는 동료들을 하나로 모았고 의기투합한 그들은 당시 개혁파 수도원으로 ‘뜨고 있던’ 시토회에 동반 입회를 하게 됩니다.
초기 양성 기간을 마친 베르나르도는 장상의 지시에 따라 동료 수도자 12명과 함께 그 유명한 클레르보 계곡으로 내려갑니다.
척박한 황무지였던 클레르보에 작고 소박한 수도원을 건립한 베르나르도는 오랜 기간 동안
철저한 고행과 단식, 집필과 일에 전념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살았고, 숨을 쉬었으며, 또 그 결실을 형제들과 나누었습니다.
점차 클레르보는 수도생활 개혁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메마른 골짜기였던 클레르보는 점차 빛과 생명의 계곡, 기쁨과 구원의 골짜기로 탈바꿈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르나르도의 성덕에 감화를 받고 클레르보로 몰려왔습니다.
베르나르도는 가톨릭교회 쇄신에 대한 강한 열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병약한 몸을 이끌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목숨을 바쳐 헌신했습니다.
교황청의 폐단과 고위성직자들의 세속화를 신랄하게 경고했습니다.
교회 당국으로 부터 공인받은 순회 설교자로서 수많은 지역을 다니며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아서게 했습니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베르나르도는 스스로에게 그 유명한 질문 한 가지를 던졌습니다.
“베르나르도야? 너 여기 무엇 하러 왔느냐?”
그가 남겨준 수도자로서의 모범을 바라보며 같은 수도자로서 큰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그는 교도권으로부터 부탁받은 중요한 임무를 완수하는 즉시 고향 집으로 달려가듯이 부지런히 클레르보로 돌아와 평범한 수도자로서의 삶을 계속했습니다.
그가 수도원으로 돌아올 때는 절대 혼자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누군가를 데리고 왔는데 그의 삶에 매료된 나머지 수도 생활을 선택한 젊은이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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