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크 어게인’의 저자 애덤 그랜트는 우리가 성공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다시 생각하기’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것과 이제껏 배운 것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부정당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느끼게 되지요. 이것은 정체성의 위상을 지키려는 본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체성을 바꾸면 안 될까요? 우리는 완성된 존재가 아니지요. 계속해서 완성되어 나갈 뿐입니다. 따라서 다시 생각하면서 ‘정체성’을 바꿀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해 봤자 안 될 거야!’라는 생각이 들 때, 다시 생각할 수 없을까요? ‘전에 해봤는데 소용없었어.’라는 생각이 들 때, 또다시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너무 어려워. 나는 절대 못 해.’라는 생각도 다시 생각해야 할 말이 아닐까요? 만약 당신과 가장 친한 사람이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나 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다시 생각하라고 정중하고 간곡하게 부탁할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고, 의미도 생기게 됩니다.
며칠 전에 지방으로 강의를 다녀왔습니다. 집에 들어오니 너무 늦은 시간이고 너무 피곤했습니다. 씻는 것도 귀찮고 얼른 침대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녁기도와 끝기도를 바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생각했습니다. 피곤해서 곧바로 침대에 눕고 싶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줄이고 기쁘게 기도를 마치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율법 학자 한 사람이 다가와서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 사랑의 계명을 몰랐을까요? 아닙니다. 이미 신명기에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던 사랑의 계명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만든 세부 조항 613개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세부 조항 613개 모두 중요하다고 하니, 만약 두 개의 조항을 동시에 지켜야 할 상황이라면 어떤 조항을 지켜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했습니다. 그 결과 정작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랑을 소홀히 하게 된 것이지요.
이렇게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던 이유는 다른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잊지 않고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모습을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질서 있는 모습이 아름다움을 결정한다(펄 벅).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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