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시 길을 떠나며>
수도회 인사발령에 따라 최근 새로운 소임지로 옮겨오게 됐습니다.
바람처럼, 구름처럼 떠나는 생활에 익숙하다보니 홀가분하기도 하고, 또 은근히 기대도 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솔직히 '짠한 마음'을 금할 길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진하게 정을 주고받았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들을 뒤로 하고 떠나야하는데서 오는 안타까움은 정말 큰 것입니다.
함께 동고동락했던 형제들, 선생님들, 후원자들, 지인들과 이별도 아쉽기만 합니다.
그간 정들었던 삶의 터전을 바꾸는데서 오는 부담감 역시 큰 것입니다.
그래도 '떠남'을 통해서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지난 6년간 사목을 정리하면서 저는 다시 한 번 제 삶을 정돈할 수 있습니다.
결국 떠남의 순간은 영원한 떠남인 우리의 마지막 날을 준비하는 행위이기에 삶의 여러 순간 가운데 아주 소중한 순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떠남은 슬픔과 아쉬움의 순간이기보다는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자주,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에게 있어 삶은 언제나 경이로움이며 새로움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떠남은 하나의 축복입니다.
만일 우리가 언제까지나 한 자리에 집착한다면, 언제까지나 우리가 지니고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 삶은 언제나 제자리일 것입니다.
떠남의 순간이 있기에 우리는 보다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안주와 편리에 길들여진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금 과감히 길 떠나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매일 작은 희생과 양보, 기쁘게 물러남, 십자가의 수용 등을 통한 일상적 떠남에도 더욱 익숙해지길 바랍니다.
오늘 복음 역시 '길 떠나는' 구도자이자 선교사로서 예수님을 잘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어제와 결별하고, 익숙한 곳과 작별하고, 조금이라도 더 어려운 곳으로, 조금이라도 더 일손이 필요한 곳으로, 조금이라도 더 낮은 곳으로 떠나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앓고 있던 열병을 치유하셨고, 악령 들린 사람을 구해주신 예수님에 관한 소식은 순식간에 갈릴래아 전역에 퍼져나갔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안식일이 지나면서 '안식일 규정'에서 자유롭게 된 사람들은 수많은 환자들, 악령 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밤새 대대적인 치유활동이 이뤄졌습니다.
하느님 은혜가 풍성하게 내린 이 호숫가 작은 마을의 밤은 감사와 환희, 기쁨과 설렘과 함께 그렇게 깊어갔습니다.
먼동이 트기 전,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피곤에 지친 제자들이 깊은 잠에 빠져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외딴 곳으로 가셔서 기도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밝자 어제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예수님 모습이 안보이자 사람들은 그분이 어디 계시냐고 다들 아우성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아룁니다.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준비가 덜 된 복음 선포자였다면, 덕이 덜 닦인 선교사였다면 우쭐하는 마음에 사람들에게 달려갔을 것입니다.
자신을 열렬히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마음껏 능력발휘를 해보고도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기에 영합하지 않으십니다. 단호하십니다.
일어나셔서 홀연히 앞장서 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온 것이다.”
카파르나움 외에도 갈릴래아 호숫가에는 많은 고을들이 있었습니다.
종려나무와 올리브 나무로 둘러싸인 조용한 마을들이 많았습니다.
그곳 사람들도 예수님께는 소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 모습은 오늘날 우리 모든 선교사, 복음선포자들의 모범이십니다.
자신의 인기를 전혀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성취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하느님 일을 하실 뿐이지 자신은 조금도 챙기지 않으십니다.
오직 죄인을 부르기 위해서, 잃어버린 양들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쳐 많은 사람들의 몸값을 치루려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며 그렇게 살아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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