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머니가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이가 좀 이상하다면서 걱정스러운 마음에 전화하신 것입니다. 아이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덜컹 겁이 났습니다. 눈을 마주치지 않는 모습은 자폐 아동의 특징 중 하나라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이후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그러했습니다. 말할 때도,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도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모습을 보면 자폐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며칠 뒤, 그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남편으로부터 아이와 대화할 때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는 말을 듣게 된 것입니다. 솔직히 양육에 너무 힘들었습니다. 아이가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정리하느라 잠시도 쉴 수 없었고, 여기에 두 살 터울의 둘째까지 생기면서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소통할 여유가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남편의 말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는 자기 모습을 깨닫고 아무리 바빠도 아이와 시선을 맞추고 대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눈 맞춤이 자연스러워진 아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눈맞춤이 불가능해집니다. 이것도 봐야 하고, 저것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면 상대도 내 눈과 마주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소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자기를 몰라 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항상 유심히 바라보시고, 우리의 눈을 마주치십니다. 그 점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도 볼 수 있습니다.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사람을 보고 계신 주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유심히 바라보시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선이 이 한 번일까요? 아닙니다. 지금도 주님께서는 유심히 그리고 눈을 마주치시면서 보십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길 원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의 부자들처럼 보여주기 위한 모습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주님과 눈을 제대로 맞출 수 있을까요? 주님께 받은 것을 주님께 모두 드린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주님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서로 마주 볼 수 있게 됩니다.
과연 주님을 바라보고 계십니다. 서로 눈맞춤 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그대에게 죄를 지은 사람이 있거든, 그가 누구이든 그것을 잊어버리고 용서하라. 그때 그대는 용서한다는 행복을 알 것이다(톨스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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