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해설서라 할 수 있는 ‘근사록’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가 없다.”
사람들이 제게 책을 어떻게 읽느냐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정독이냐, 다독이냐, 일 년에 어느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하느냐 등을 물어보시지만, 근사록의 말처럼 1,000권을 읽어도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물론 책을 읽는 것 그 자체가 의미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을 저자는 읽었을까요? 또 이 책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유의 시간을 가졌을까요? 따라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유능한 과외 선생님 한 분을 보시고 직접 교육을 받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과외 선생님이 바로 옆에 있다고 하더라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또 보려고도 하지 않으면서 공부를 전혀 하지 않는다면 굳이 돈 들여서 과외 선생님을 모실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닐까요? 이처럼 책을 읽는 것도 미래를 향해 나아가지 못한다면 오히려 책 읽는 것이 낭비일 수 있습니다.
유능한 선생님도 학생이 따라오지 않으면 그 유능함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습니다. 즉, 학생의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여기서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완벽한 분이십니다. 하지만 하느님과 함께하지 않고, 또 하느님의 뜻을 계속 무시하고 있다면 어떨까요?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개조시켜서 당신의 뜻을 따를 수 있도록 만드실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계속해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해 주시면서 기회를 주실 뿐입니다. 따라서 변화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무슨 일인가를 했다고 해서 자기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 주인이신 주님께는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기도했다고 주님께서 부귀영화를 누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 없는 분이 우리의 기도나 선행, 희생을 가지고서 무엇을 얻으시겠다는 것일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환하게 웃는 것만으로도 그 부모가 큰 기쁨을 얻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사랑으로 당신의 길을 따르기만을 원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자랑할 것도 없고, 당연히 해야 할 일임을 기억하면서 자기의 변화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됩니다. 그 결과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두 가지는 신뢰 그리고 믿음이다(제임스 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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