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 연구가 전영애 선생님의 말씀입니다.
“파우스트에 나오는 말입니다. 사람을 마지막 실족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 마지막 걸음을 못 내딛게 뒤로 불러들이는 것, 이게 유년 시절 사랑의 기억이거든요. 얘들은 많이 사랑해 줘야 합니다. 어렸을 때 받았던 그 절대적인 사랑은 어디가지 않거든요. 그게 몸에 남아 있어서 그 힘으로 사는 것 같아요.”
괴테는 죽기 2년 전에 인생은 결국 ‘사랑이 살린다’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사랑은 지금 삶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열쇠가 됩니다. 이렇게 우리가 실천하는 사랑의 크기는 어마어마합니다. 더군다나 이 사랑의 확장성은 대단합니다. 나만이 아닌 우리가 지금 삶을 잘 살게 해주고,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 함께 갈 수 있게 합니다. 그런데도 사랑할 수 없는 이유만 찾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아이가 너무 예쁩니다. 이렇게 예쁜 아이도 때로는 무례한 말과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말과 행동을 해도 여전히 예쁩니다. 신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때 아이들은 그렇게 예뻐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이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다 예쁩니다. 예쁘니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사랑의 기억을 많이 남겨 주고 싶습니다. 사랑받은 아이가 또 사랑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사랑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이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 사랑의 극치가 바로 용서입니다. 자기에게 잘한 사람에게는 누구나 잘합니다. 그러나 자기에게 잘못한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서기란 쉽지 않지요. 그 모범을 예수님께서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모두 다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꾸짖고, 회개하거든 용서하여라. 그가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일곱 번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만이 우리 공동체가 하나 될 수 있으며, 사랑만이 우리가 모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을 갖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특히 세상 속에 살면서 무조건 용서하기가 쉽지 않지요. 그래서 주님의 힘이 필요합니다. 주님께 대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행복이란 자신에 국한되지 않은 다른 무언가를 사랑하는 데에서 싹트는 것이다(윌리엄 조지 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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