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오 11,25-30
죽은 이를 위한 기도가 착각이라도 좋은 이유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매일, 어쩌면 매 식사 후 기도를 통해서 만이라도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 자신에게도 좋은 일인지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연옥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만으로도 비록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우리에게 매우 유익합니다.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에서 시골 노총각은 4만 원을 주고 장애가 있는 신부를 데려옵니다.
둘은 진정으로 위해주고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죽자 노총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전에는 자기 자신을 위해 일하는 것을 견딜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일하는 맛을 알고 난 뒤에는 더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일하는 것이 힘들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내어주고 아내를 따라갑니다.
베르테르 효과라고 있습니다.
유명인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자신도 죽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2005년 이은주 씨가 사망한 한 달 후는 하루 평균 23명이 자살하던 것이 41명으로 늘었습니다.
2007년 정다빈 씨가 사망한 후 전달 평균 21명에서 45명으로 늘었고 최진실 씨 동생 최진영 씨가 자살하기 이전 38명에서 이후 51명이 되었습니다.
최진실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평균 32명에서 59명으로 껑충 뛰었습니다.
이를 한 달, 혹은 그 이후의 파급효과로 따지자면 유명 연예인이 자살하면 수백 명이 뒤따라간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돌아가신 분을 위해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또 연옥을 믿지 않으니 무조건 하늘나라로 간다고 믿고 자기들도 따라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이 유일하게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 사랑을 증명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러나 연옥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도 연옥에 있는 사람을 위해 일을 할 수 있고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통교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버릴 필요가 없고 따라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연옥이 있다면 지옥도 믿기 때문입니다.
자살도 살인이기에 마지막에 그 대죄를 짓는다면
구원받을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할 수 있습니다.
긍정적 착각이 있습니다.
버락 오바마는 흑인이었음에도 어렸을 때부터 꿈이 대통령이었습니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그는 어렸을 때부터 대통령이 된 세상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믿어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실험에서 한 여성에게 농구 자유투를 해 보라고 했습니다.
여성이 열 번을 던졌지만, 열 번 중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실험 진행자는 믿으면 된다고 말해주고 믿는다는 뜻에서 눈을 가리고 해 보라고 했습니다.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들고 여자가 공을 던지자
환호성을 올립니다.
그 사람들은 처음부터 관중이 아니라 그렇게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입니다.
공은 들어가지 않았지만, 눈을 가리고 공을 던지는 여자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그렇게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여자는 진짜 공이 들어간 줄 알고 자신을 믿게 됩니다.
이제 눈가리개를 하지 않고 공을 던집니다.
열 번 던져서 네 번을 성공시켰습니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해줄 때도 이런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지옥에 갈 것이라 여기며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나도 내가 기도해주는 이처럼 연옥이나 천국에 갈 것이라 믿게 됩니다.
그러면 그곳에 가기에 합당하게 자기 삶을 변화시킵니다.
죄를 덜 짓게 되고 하느님을 더 믿게 됩니다.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진짜 연옥이 있다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만약 연옥이 없더라도 자녀들과 함께 연옥 영혼을 위해 식후 기도라도 하면 자녀들은 적어도 연옥을 목적지로 여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과 연옥의 교리가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며 자기 안에 완전히 박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착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데도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보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 버리듯 버리는 어리석음과 같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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