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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1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3-11-01 조회수 : 635

마태오 5,1-12ㄴ 
 
정체성이라니까, 이 멍청아! 
 
 
오늘은 모든 성인의 날 대축일이고 오늘 복음은 행복 선언입니다.
우선 제목을 보고 성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는 빌 클린턴이 선거 때 사용한 "경제라니까, 이 멍청아!"를 패러디한 것입니다.
성인이 되거나 참 행복을 원하는 이에게 저는 '정체성'을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참 행복을 아는 존재가 바로 성인들입니다.
조던 피터슨은 행복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행복은 짧은 쾌락을 의미합니다.
오히려 그런 행복을 추구하면 참 행복에서는 멀어집니다.
그는 인생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는 삶의 의미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결국 이것도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부모가 자녀를 낳을 때 자녀가 고생만 하며 살기를 바랍니까? 창조자는 자기 피조물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피를 흘리며 창조합니다.
때문에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피조물이 창조자에 대한 합당한 예의입니다.
자기를 망치는 사람은 부모에게도 하느님에게도 불효하는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려 합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행복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삶이 너무 고통스러워 덜 고통스러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죽음으로 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려 하는데 어떤 이들은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할까요? 
 
참 행복과 참 고통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돗개 호순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돗개가 첫 주인을 찾아 먼 길을 달려온 이야기는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진돗개는 더 편안할 수도 있는 곳을 마다하고 주인을 찾아오는 것일까요? 
 
호순이는 용인시에 위치한 한 사설 유기견 보호소에서 키워지고 있었습니다.
많은 유기견 중 제일 착하고 인기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보호소 소장이 장기간 병원에 입원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나머지 유기견들은 봉사자들에게 맡겨졌고 호순이는 수원에 있는 소장의 여동생 집에 맡겨졌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호순이가 사라졌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1년 동안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습니다.
나이가 많아 길에서 죽었겠거니 생각하고 있을 무렵 호순이의 짖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장은 밖으로 나가봤고 호순이가 맞았습니다. 호순이는 1년 넘게 수원에서 용인까지 자기 냄새를 추적하며 찾아온 것입니다.
호순이는 마지막 몇 년을 주인과 함께 살다 하늘로 갔습니다.  
 
왜 진돗개들은 한 번 주인을 영원한 주인으로 여기는 것일까요? 주인의 여동생 집도 편하기는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개들도 무엇이 가장 큰 고통이고 무엇이 가장 큰 행복인지 잘 압니다.
가장 큰 고통은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호순이는 유기견이었습니다.
주인이 잠깐 있었다가 사라진 고통은 감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기견 보호소 소장이 주인이 되어주었고
호순이는 행복했습니다.
주인에게 충실하고 주인이 원하는 일을 하면 되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먹고 생존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았다면 첫 주인을 그렇게까지 찾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유명한 진돗개 백구는 약 7개월 동안 대전에서 진도까지 300킬로미터를 주인 할머니를 찾아
여행하였습니다.
먹을 음식도 마땅치 않고 숨은 위협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러한 유혹에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그의 행복은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 준 할머니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갓 태어난 존재가 부모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으로써 울음을 그치고 부모가 주는 젖을 먹으며 자기가 누구인지 깨닫게 됩니다.
또한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이렇게 성인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왜 모두가 행복하길 바라는데 어떤 사람은 행복하지 못할까요?
그들이 참 행복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처럼 되어야 합니다.
어린이에게 참 행복은 게임기도 아니고 자전거도 아니고 스마트폰도 아닙니다.
부모 자신입니다. 
 
부모가 자신을 단순히 먹여주고 보호해주어서가 아닙니다.
보육원에서도 그것은 합니다.
부모를 통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부모 외에 다른 모든 즐거움들은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괴로움을 잊기 위한 방책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자녀를 행복하게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하느님을 만나 진정 내가 누구인지 깨닫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면 저절로 성인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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