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13,18-21
시계는 태엽만 감을 줄 알면 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겨자씨의 비유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행복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영원히 삽니다. 하느님 나라를 거부하면 이 세상에서부터 지옥을 체험하고 결국 그곳으로 갑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우리 안에 겨자씨와 누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자씨와 누룩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영화 ‘먼지로 돌아가다’(2022)에서 한 중국 시골 노총각은 단돈 4만 원에 장애가 있는 여자를
아내로 사옵니다.
이런 관계가 잘 될 수 있을까요? 결국 잘 됩니다.
노총각은 사랑을 해 보지는 못했지만, 사랑은 주는 것임을 압니다.
아내도 남편의 진심을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내가 사고로 죽습니다.
남편은 더는 살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아내를 따라갑니다.
이 영화에서 남자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사랑을 몰랐을 것이고 그러면 더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랑을 알고 나서 사랑하지 않는 삶은 사는 게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 안에 받아들여야 하는 한 가지는 ‘사랑’입니다. 그것뿐입니다.
시계는 태엽을 감거나 건전지만 갈아주면 저절로 갑니다.
우리는 겨자씨가 어떻게 싹이 터서 어떻게 자라는지 알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겨자씨가 심겨지면 자라서 새들을 쉬게 할 수 있음만 알면 됩니다.
새들은 힘든 사람들입니다.
나에게 사랑이 심겨지면 사람들을 쉬게 할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도가에서는 이것을 ‘무위자연’(無爲自然)이라 합니다.
누룩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이 떨어지면 나를 정화시킵니다.
밀가루 서 말은 곧 우리 안의 삼구, 곧 탐욕-성욕-교만을 꺾어 정화시킨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청빈과 정결과 순명의 덕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기로 남습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가 “그래, 너 나에게 많이 주었니? 난 네게 다 주었다!”라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는 나 자신이 정화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 붙어있기만 하려니까 저절로 성령의 열매들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만 하면 됩니다. 기도란 은총과 진리를 받아들이는 시간입니다.
성찬의 전례, 말씀의 전례와 같습니다.
제가 신학교에 들어가기로 결심한 것은
『하느님이시요 사람이신 그리스도의 시』를 읽은 후였습니다.
그것을 읽으니 사랑받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결혼 안 하고 혼자 살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성체에서 울려 나오는
다 주셨다는 그분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되는지는 잘 모릅니다.
그저 사랑을 받아들이면 인간은 마치 다시 태엽기 감긴 시계처럼 째깍째깍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유튜브 동영상에서 한 아빠가 코로나로 식당이 잘되지 않자 새 메뉴 개발을 한다고 힘들어 식당 의자에 앉아 엎드려 자고 있었습니다.
작은 딸아이가 아빠를 찾다가 피곤해서 자는 모습을 보더니 자기 조끼를 벗어 아빠를 덮어드립니다.
아빠는 자고 일어나 자기 등에 아이의 조끼가 있는 것을 알고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렇게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은 것입니다.
삶에 힘이 빠진다면 사랑받지 못해서입니다. 그것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기 위해 열심히 진리를 받아들입시다.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좋고 저 같으면 하.사.시.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기도합시다. 그분께서 성체로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느끼기만 해도 그분께서 우리를 감싸주심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살 힘을 얻습니다.
연료를 넣지 않고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자동차는 없듯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는 인간도 없습니다.
우리에겐 사랑만 있으면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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