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관광객이 이탈리아 여행을 갔습니다. 길을 걷다가 건물을 짓는 공사판으로 들어서게 되었지요. 그는 한 노동자에게 다가가 “무엇을 하는 중입니까?”라고 묻자, “벽돌을 쌓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관광객은 계속 걸어가다가 먼저 만난 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번에도 똑같이 “무엇을 하는 중입니까?”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이 노동자는 “벽을 세우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관광객은 두 노동자와 똑같은 일을 하는 세 번째 사람을 만나서 역시 같은 질문인 “무엇을 하는 중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이 노동자는 아주 특별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성당을 짓는 중입니다.”
똑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 일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일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반복적인 일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즉, 자신의 시선에 따라 기쁨과 희망의 일상이 될 수도 있고, 무의미한 일상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비유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일상 삶 안에서 하느님 나라를 발견할 수 있다는, 그래서 일상의 삶을 특별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가는 일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사는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과의 만남도 의미있는 만남이 되어야 하지, 그저 그런 만남 별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만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일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함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을 사는 데는 많은 것이 필요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 없습니다. 그저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삶을 사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면서 나의 이웃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곳에 주님도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뒤를 충실하게 따라갈 수 있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를 위해 먼저 우리 공동체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 안의 일치는 주님처럼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소유를 포기하며 살아가야 가능합니다. 그러나 공동체 안의 일치보다는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갖습니다.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데 너무나 큰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 함께 계신 주님을 떠올리면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본인의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실천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책임질 준비를 하는데서 나온다(디트리히 본 회퍼).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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