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담벼락에는 커다랗게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낙서 금지”
워낙 종이나 펜이 귀했기 때문에 담벼락은 어린이들에게 좋은 종이고 그 위에 돌을 연필 삼아 낙서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낙서 금지’라는 글이 가장 큰 낙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지요. “떠들지 마.”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어쩌면 본인이 더 시끄럽지 않을까요? 또 이런 말도 있지요. “남자는 다 늑대야. 절대로 믿지 마.”라면서 자기만 믿으라고 남자 친구가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본인도 남자면서 말이지요.
이런 역설들 사이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정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또 정답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것입니다. ‘3+2=6’이라는 수식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당연히 거짓입니다. 그렇다면 “‘3+2=6’은 거짓이다.”라는 문장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이 경우는 참입니다. ‘거짓이다’라는 문장 하나가 들어가 ‘3+2=6’이라는 수식이 거짓인데도 참이 됩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안에서 또 많은 역설을 품고 있는 세상 안에서 혼란을 느끼고 방향을 잡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듯싶습니다. 그래서 그 방향을 제대로 잡기 위한 기준이 필요합니다. 바로 주님이십니다.
주님의 뜻이 바로 세상을 잘 사는 기준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분명 멋지고 행복한 삶,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살 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만 잘 지키면 된다고 하시지요.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를 다시 묻습니다. 이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계명을 모두 지켜왔다고 예수님께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는 정말로 올바르게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기란 쉽지 않았나 봅니다. 슬퍼하면서 주님을 떠나고 말지요. 그는 자기의 관점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법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고 생각했겠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도달하기에는 아직도 멀었습니다. 즉, 세상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어야 했습니다.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는 여전히 주님을 제대로 따를 수 없는 처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이 담긴 주님의 기준을 늘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때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면서 주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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