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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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 20년이 된 중년의 부인이 있습니다. 남편의 직장 때문에 늘 바빠서 함께 하기 힘들고, 그래도 자녀 때문에 산다고 했는데 자녀 역시 어느 순간 “내가 알아서 할게”라면서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직장 생활도 20년 동안 가정만을 지켰기에 이렇게 오랫동안 경력 단절이 있는 자신을 어느 회사에서도 채용하지 않을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무료한 일상 안에서 친구가 여행을 제한합니다. 그것도 한 번도 가 보지 못했던 해외를 말이지요.
남편에게 이 여행에 대해 말하니, “그럼 나는 누가 밥해줘? 애들은 누가 챙겨?”라면서 반대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화가 나서 무작정 여행을 떠납니다. 자기는 밥이나 해주고 청소, 빨래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서 말이지요.
여행을 통해 이 여인은 자기를 찾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해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편에게도 휴가가 필요해. 살갗에 햇볕을 느낄 필요가 있어.”
자신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행 전에는 자기 생각만 하던 여자가 드디어 제대로 눈을 뜨고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화가 아닌, 어느 책에 담긴 내용을 정리해본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사람이 비로소 남도 볼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인상 깊은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묵상하게 됩니다.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 역시 제대로 볼 수 없고 당연히 주님의 사랑도 볼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아야 하며, 이로써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도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을 잘 알고 계셨지요. 사랑하는 제자들이 어떻게 할지도 당연히 잘 알고 계셨습니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는 말씀에 제자들은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말합니다.
짐짓 자신은 주님을 절대로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마음은 유다 이스카리옷도 처음에는 그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은돈 서른 닢에 예수님을 넘길 마음을 품습니다. 은돈 서른 닢은 당시 노예의 가격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할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의 노예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자신이 예수님보다 더 높은 존재로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제자들처럼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뻔뻔하게 묻습니다.
죄로 쉽게 기울어질 수 있는 자신을 몰랐기에, 세상의 관점으로만 판단하고 있었기에 그는 커다란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연히 주님을 사랑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제대로 섬기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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