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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11-09 조회수 : 1492
11월9일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
 
학교나 병원이 더 성전다운 성전이 될 수 있는 이유
 
저는 라떼라노 성전 봉헌 축일이나 성 베드로 대성전 봉헌 축일을 지낼 때마다 ‘하느님께서 이 큰 성전들을 짓기를 원하셨을까?’를 먼저 생각합니다.
이런 성전을 짓기 위해 돈을 걷어야 했고 그것 때문에 개신교가 생겨나는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라떼라노 성전 앞에는 거지로 사는 수도원의 회칙을 승인받기 위해 제자들과 함께 올라온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성전의 크기에 놀라는 모습이 청동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그 모습은 절대 ‘성당 멋지다!’라는 모습이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도 커다란 성전을 짓고 빚을 갚고 또 유지보수 하기 위해 많은 돈을 쓰는 것보다는 성전의 더 본질적인 의미에 충실해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양원역’은 우리나라 민간자본으로 설립된 최초의 기차역이자 가장 작은 기차역입니다.
물론 허구가 가미되긴 하였겠으나 양원역이 세워지게 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가 ‘기적’(2021)입니다. 
 
천재 준경의 목표는 단 하나, 마을에 기차역을 만드는 것입니다.
마을이 작아 기차가 서지 않기에 마을 주민들이 굴을 지나고 다리를 지나다 사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준경은 천재인데 일부러 꼴찌를 합니다. 
공부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사실 공부 때문에 갖게 된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를 좋아하는 국회의원 딸이 있습니다.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라희는 그의 능력을 발휘해 볼 것을 종용합니다.
그러나 준경은 오로지 마을에 기차역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에게 편지를 쓰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물론 라희가 이것도 도와줍니다. 
그러나 준경은 라희에게 더 가까이는 다가가지 못합니다. 
 
준경의 누나 보경은 동생과 함께 살면서 동생의 친구가 되어줍니다.
동생은 누나 때문에 아버지를 따라 도시로 나가지 않았고 시골집에 누나와 함께 삽니다.
준경은 누나가 섭섭해 할까봐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말도 못 합니다.
아버지 태윤은 기차를 운전하는 기관사인데, 아들을 지나치다 보아도 아는 척도 안 합니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둘은 서먹하기만 합니다. 
 
어느 날 대통령이 그 지역에 역을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를 해 줍니다. 
하지만 돈은 지원해주지 않습니다.
준경은 자신이 삽과 곡괭이를 들고 땅을 평탄하게 하고 손수 역을 세우려 합니다.
그러자 보다 못한 마을 사람들도 도와줍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서 첫 민자역인 양원역이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태윤은 기차역을 통해 아들의 마음을 알아차립니다.
준경의 어머니는 준경을 낳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누나 보경도 사실은 준경이 환시를 보는 것입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교 1등을 해서 상을 받아 올 때 기차 때문에 다리 난간에서 몸을 피하다 동생의 트로피 때문에 물에 빠져 죽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자신 때문에 죽었고, 누나도 자기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은 준경을 그 집에 잡아놓고 있었습니다.
준경이 그렇게 만들려고 한 양원역은 어떻게든 그런 죄책감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고 싶은 의지였습니다.
특별히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누나도 죽게 했다고 생각할 줄 알고 아버지께 칭찬받기 위해 만들기로 한 것이 기차역입니다.
 
그는 기차역만 있었어도 자신을 낳다가 엄마가 죽을 필요가 없었고 누나도 죽지 않았을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그 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는 천재성을 펼칠 수도 없고 결국 자신을 믿어주는 라희에게도 갈 수 없습니다. 
 
태윤은 고등학생 아들이 자신이 기뻐할 것이라 믿어 손수 만든 작은 간이역을 들어가 보며 모든 것을 준경에게 말해줍니다.
사실 태윤이 일만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준경을 낳을 때 집에 늦게 도착해서 준경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누나 보경이 죽을 때도 기차를 몰던 기관사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상을 받을 때 자신만 즐기면 아내에게 미안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이 운전하겠다는 것까지 뿌리치고 누나를 따라 보냈던 것입니다.
 
준경의 어머니와 누나의 죽음에 아버지도 큰 책임이 있었기에 준경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던 것인데, 준경은 아버지가 자신을 원망하는 줄 알고 괴로워했던 것이고 아버지의 칭찬을 듣기 위해 역을 세우려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준경이 다시 꽃필 수 있도록 기차를 태우고 차를 몰아 나라에서 주최하는 수학 경시대회에
나가게 해 줍니다. 
준경은 전국 1등을 하여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됩니다.
준경은 드디어 누나와 엄마의 숨결이 깃든 집을 떠날 수 있게 되었고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양원역은 단순한 공간이 아닌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드는 공간이었고 자신 안에 있는 죄책감을 아버지가 해결해 주어 이전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 안에 세워야 하는 성전의 상징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각자의 마음 안에 그런 성전을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성체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가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모든 죗값은 당신이 다 치러놓았으니 하느님의 자녀답게 당당하게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께서 머무실 작은 간이역을 만들지 않는다면 주님은 영원히 우리의 무서운 심판자로
외부에 서서 계십니다. 
 
이태석 신부님이 ‘예수님께서는 이 돈으로 성전을 짓기를 원하실까, 학교를 짓기를 원하실까?’를 생각하셨던 것을 떠올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떠올려야 우리가 어떤 성전을 지을지 알게 됩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 성당을 짓는 것보다 주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행위 안에 주님께서 이태석 신부님의 마음에 자리를 잡으시는 것입니다. 
 
내 죄를 인정하고 주님을 내 안에 받아들이기 위해 내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를 원할 때 내 안에 성전이 세워지고 주님께서 머무실 공간이 마련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들어오시고 주님께서 “너는 죄 없다.”라는 말씀을 해 주십니다.
 
또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와 하나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면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고 새로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머무실 우리 마음 안의 작은 간이역, 그런 성전을 만들어야 합니다.
큰 성전을 벽돌로 지었다고 주님께서 오지 않으십니다.
 
성전을 지을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산다면 우리의 성전은 벽돌로 된 커다란 건물이 아닌 이웃을 행복하게 해 줄, 학교나 병원, 유치원이나 무료급식소 등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건물이 마치 양원역처럼 우리 내면 성전의 상징이 되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미사를 하면 어떻고 병원에서 하면 어떻습니까?
이런 성전이 오히려 진정 내 안에 주님의 공간을 마련하는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 마음 안에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이웃사랑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지어지는 양원역과 같은 참 성전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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