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다목적 댐처럼: 기쁨의 발전기를 수시로 점검하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배운 것을 신자들에게 전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상대에게 양식이 되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깨어있음’이란 내가 하는 것이 사랑인지 살피라는 뜻입니다.
내가 하는 사랑이 참사랑이라면 지금 어떤 느낌일까요? 기쁠 것입니다. 사랑하면 항상 기쁩니다.
하느님께서 기쁨 자체이신 이유가 그것입니다.
만약 사랑을 실천하는데도 행복하지 않다면 분명 다른 기쁨을 찾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는 사랑이 아님을 증명할 것입니다.
다목적 댐이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은 댐처럼 아래로 사랑을 전해주는 기쁨을 느낍니다.
이 과정에서 전기가 생성됩니다.
그것처럼 그냥 사랑을 내어주는 것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만약 전기를 생산하지 못한다면 내려보낸 물을 받는 것들에게서 자신의 기쁨을 뽑아내려 할 것입니다.
이것은 고장 난 댐입니다.
이와 같은 일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벌어집니다. 최광현 작가의 『가족의 두 얼굴』에 나오는 사례들입니다.
진혁 씨는 상담하며 자신은 30년 동안 한 번도 자신의 인생을 살아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진혁 씨의 아버지는 돈이 없어 공부하지 못했지만 사업 수완을 발휘하여 자수성가한 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공부에 대한 한이 있었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는 것이 꿈이었고, 주위에서도 공부만 했었다면 분명 합격했을 것이란 말을 합니다.
진혁 씨는 셋째였는데, 아버지는 진혁 씨가 임신했을 때 왕관을 받는 태몽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진혁 씨가 자신의 꿈을 이루어줄 아들로 여겼습니다.
물론 다른 형제들보다 특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진혁 씨도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지만,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고시 공부에 지친 진혁 씨는 회사에 취직했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다시 시도하라고 윽박지릅니다.
진혁 씨는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게 만든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또 그 꿈을 이뤄주지 못한 죄책감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저 맛있는 물고기에 불과합니다.
지금 깨어나지 못하다면 하느님 앞에 가서 자신은 셋째를 가장 사랑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깨어납시다.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연화 씨는 가족의 무게를 항상 등에 업고 다니며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4남매의 장녀로서 술과 도박, 친구들을 너무 좋아해 언제나 집 밖으로 나도는 무능한 아버지와 그런 남편 뒷바라지하다 건강을 잃어버린 어머니 때문에 연화 씨는 가장의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화 씨의 고생은 교육대학을 나와 선생님이 되고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동생들이 뚜렷한 직장을 잡지 못해 수입이 변변찮았기 때문입니다.
남편 눈치 보면서 부모의 치료비를 대며 친정을 돌보느라 30대 중반이 되었어도 자기를 위한 옷 제대로 한 번 산 적이 없습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이젠 너도 좀 쉬어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셨을 때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하지만 연화 씨는 말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이젠 제 자신을 멈출 수 없어요. 제가 없으면 친정 식구들이 다 무너지지 않을까 너무나 불안해지는걸요.”
연화 씨는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아닙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것 자체로 기쁨의 보상이 있습니다.
연화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혹은 형제들의 인정을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언가가 보상으로 주어져야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거래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 중 단 한 명도 구원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십자가 사랑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큰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사랑만으로 보상이 있습니다. 힘들면 사랑도 멈추십시오.
대학에서 만난 두 남녀는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는 남자는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여자는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남자에게 주기도 하고
시간이 날 때마다 남자의 자취방에 가서 빨래와 청소를 해주며 사랑하는 남자에게 많은 것을 아낌없이 베풀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여자가 먼저 취직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취업이 되지 않자 대학원에 진학하여
사회진출을 위한 숨 고르기를 하였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대학원에 다니는 동안 학비를 대고 헌신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남자가 대학원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업하였습니다.
여자는 이제 고생스러운 시간이 끝나고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여자는 남자로부터 그만 헤어지자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다른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왜 여자를 떠나려 했었던 것일까요? 여자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빚을 아주 많이 진 사람입니다.
그 빚을 떠안고 결혼해서 평생을 갚아나가야 할 부담감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냥 나쁜 놈이 되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물론 무작정 잘해준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를 떠나가게 하고 싶다면 한없이 잘해주어라.”라는 말도 있듯, 잘해주면서도 상대가 어떤 마음을 갖는지도 고려해야 합니다.
내가 더 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냥 사랑하는 데서 충분한 행복이 오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을 하면서 ‘내 사랑이 사랑이 맞나?’를 끊임없이 살펴야 합니다.
가짜 사랑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은 이것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것만으로 기쁜가?”입니다.
사랑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전기가 생성되고 있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만약 사랑하는데 우울하다, 그래서 다른 보상을 원한다고 하는 것은 본성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하지 않으면 내가 고통스러워서 어쩔 수 없이 할 수밖에 없는 본성입니다.
누가 보답을 바라고 두 발로 걷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냥 그것으로 기뻐야 하는데, 오늘 복음처럼 먹고 마시고 때리는 등의 또 다른 기쁨을 찾는다면
그것이 깨어있지 않은 삶입니다.
양식을 내어주는 것만으로 기쁠 때, 그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하는데 힘들다면, 그래서 다른 보상을 찾는다면 당장 멈추십시오. 그건 사랑이 아닙니다.
기쁨이 생성되도록 고장 난 발전기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아주 기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목적 댐과 같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