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기쁨을 얻는 방법 : “조금만”을 이해하면!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알 듯 모를 듯한 말씀을 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당신을 보지 못하게 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만나게 되리라고 하십니다. 또 세상은 기뻐하겠지만 너희는 울며 애통해 할 것이고 곧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를 어머니가 아기를 낳는 것에 비유하십니다. 아기를 가진 엄마는 세상의 모든 기쁨을 끊고 근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아기를 낳으면 새로운 생명을 보며 기뻐합니다. 사실 아기를 낳는 것도 고통이지만 아기를 낳아야 하는데 낳지 못하는 것은 더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가셨다가 성령으로 우리에게 다시 오십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은 예수님의 발현을 보는 기쁨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만나게 되는 예수님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성령은 나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모습을 내가 볼 수 있게 하고 기쁨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세상이 기쁨이라 여기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 먹기 위해 살아요.”라고 말하는 ‘로리 스트라이커’란 여자가 있습니다.
나이는 45세이고 몸무게는 107kg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기 3일 전에 결혼 서약을 했습니다. 남편과 나눈 마지막 대화에서 남편이 말했습니다.
“반드시 건강해지겠다고 약속해 줘!”
그녀는 남편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트니스 트레이너인 에릭을 만나러 갔습니다. 에릭은 로리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자신이 먼저 당신과 똑같이 살을 찌우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건강과 기분까지 망쳐가며 살을 찌웁니다.
자신은 그렇게 살을 찌우며 로리를 닮아가려고 하는데 로리는 술을 마시고 음식을 절제하지 못하는 것에 화가 납니다. 하지만 로리는 먹는 욕구를 절제하지 못합니다. 몇 주 뒤 망가져가는 자신의 몸을 보며 에릭은 지칠 대로 지치고 이 일을 포기하고 싶어지기까지 하였습니다. 몇 발짝만 뛰어도 숨이 차는 그런 몸이 되었습니다. 살을 21.5kg이나 찌워 106kg에 도달한 것입니다.
이제 둘이 함께 빼는 일만 남았습니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트레이너 에릭과 남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녀는 사력을 다하지만 또 무너지곤 합니다. 그러면 에릭은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에 화가 나 로리는 더 먹습니다. 그러다 점점 마음 안에서 남편과의 약속이 더 자신을 절제하게 만들면서 휴가 동안에도 몸무게가 줄었습니다. 결국 남편과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그렇게 첫 8주 동안 약 30kg을 감량하였습니다.
그녀는 이제 산도 오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며 이렇게 말합니다.
“지난 몇 개월간 인생이 달라졌어요. 이 표현을 마지막으로 쓴 게 테드가 병을 진단받았을 때인데 부정적인 의미였죠. 지금은 긍정적인 표현이에요.
몸도 훨씬 가벼워졌고 정신적으로도 좋아졌어요. 개인적인 생활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이 실험에 참여하는 이유가 달라졌어요. 여전히 테드를 위해서지만 저를 위해서이기도 해요. 저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거든요.
누굴 만날지도 모르죠. 그의 이름은 밥이고 좋은 남자예요. 절 행복하게 해주죠. 테드도 좋아할 거예요. 테드가 죽기 전에 대화가 가능할 때 저에게 새로운 삶을 살라고 분명히 얘기했어요. 짝을 찾으라고 말이죠.”
8개월 동안 목표는 79.5kg이었는데 75kg이 되었습니다. 8개월 만에 처음 그녀를 본 친구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출처: ‘32kg 감랑! 죽은 남편과의 마지막 약속을 지키기 위한 여정’, 유튜브 채널, ‘라이프타임’]
로리는 에릭과 함께 세상의 즐거움을 끊는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죽은 남편 테드를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끊음을 통해 테드를 만났습니다. 자신의 몸에서 테드가 보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처럼 살라고 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분처럼 살면서 그분을 만나게 됩니다. 바뀐 자신을 보면서 그분을 만나고 기뻐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가 세상과 죄를 이기고 당신께 나아오게 하는 방식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는 참되고 완전한 기쁨을 다른 이들로부터 멸시와 오해를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흥분하지 않고 고통을 참아 견디며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고통, 죽음, 병고, 그 밖의 다른 모든 어려움은 참 평화이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도구라고 합니다.
그는 제자에게 참 행복에 대해 이렇게 가르칩니다.
“가장 큰 행복이 무엇인지 아느냐? 내가 수많은 사람을 회개시키면 그것이 참 행복일까? 아니다. 더 큰 행복이 있다. 내가 어느 집에 문을 두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청할 때 심한 모욕을 당할 것이다. 이것이 행복이다. 그러면 나는 지치지 않고 다시 문을 두드려 주님의 이름으로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 사람은 욕을 하며 오물을 뿌리고 나를 두들겨 팰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행복이다.”
왜 그것이 진정한 행복일까요? 자신 안에서 우리를 위해 박해받으시는 그리스도를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분을 닮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요?
세상의 행복을 거슬러봅시다. 남이 먹을 때 굶고, 남이 편안함을 찾을 때 깨어있고, 남이 일하지 않을 때 더 열심히 일하고, 남이 기도하지 않을 때 성당으로 가봅시다. 분명 그 모습 안에서 사랑하시는 분을 닮은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오는지 모를 기쁨이 샘솟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신학교에서 남이 밥을 먹을 때 굶었고, 남이 잘 때 기도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예수님께서 성체를 통해 저에게 말씀하셨고 그 기쁨은 지금도 마르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기쁨을 거스르지 않고 천상의 기쁨을 찾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천상의 기쁨을 얻는 방법은 단순합니다. 성령의 사랑 때문에 세상의 기쁨을 역행하면 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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