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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9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09 조회수 : 3089

빛과 어둠은 통합될 수 없다


오늘 복음에서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시비 거는 내용이 나옵니다. 사실 음식을 먹을 때 손을 씻고 먹는 것이 건강에는 좋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보십니다. 그들은 겉은 하느님의 율법을 따른다고는 하나 마음은 자기 욕망을 따르고 있습니다. 자기 욕망을 따르면서도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착각을 하지만 사실 자기 욕망을 따르는 이들은 남을 겉모습만으로 비판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합리화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거스르는 사람들의 특징은 사람을 심판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모순에 빠지지 않으려면 한 사람 안에 두 본성이 결국 공존할 수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어둠이 빛과 통합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신성을 받아들이려면 인성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버리고 신성을 선택하신 방법입니다. 요즘 인간의 통합에 대해 말하며 마치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하는 자아를 통합하면 해결되는 것처럼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사람의 마음 안에 이 악한 것들이 나오는 원천이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 어둠으로부터 탈출하여 빛이신 그리스도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저에게 요한 형제님이라는 분이 메일을 보내왔는데, 이분은 어둠과 빛이 공존할 수 없음을 잘 보여주셨습니다. 빛으로 나아오기 위해 어둠을 버리셨습니다. 이분의 사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저는 50여 년간 남부럽지 않게 가위에 눌려 고생했습니다. 눈을 떠 보니 어둠 속에 시커먼 그림자 같은 사람이 제 가슴 위에 올라타서 누르고 있더라고요. 그때 이후로 너무 무서워서 가위가 눌리더라도 절대 눈을 뜨지 못한답니다. 저 같은 경우 언제 가위가 눌리냐면 술 진탕 먹은 다음 날 잘 때 꼭 어김없이 눌리더라고요(술 먹은 당일은 안 눌림).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강요로 억지로 성당에 다녔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술 때문에 성당에 다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저와의 결혼 때문에 세례를 받게 된 아내만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제가 냉담 중 가위눌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 같아요. 가위눌림은 점점 심해져 나중엔 소름 끼치는 이상한 소리도 들리고 제 허벅지도 누가 만지고, 꼬집고 하는 등 정말 장난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전날 마신 술이 안 깬 상태에서 갑자기 안방에 있는 철로 된 십자고상이 보이는 것이에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예수님 머리 위에 ‘INRI’란 글자가 보였습니다. 저는 비몽사몽 간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라 ‘아, 이 자식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면 곱게 죽이지, 왜 이런 걸 달아놨어!’ 하며 펜치를 가지고 INRI 표를 뜯어냈습니다. 제 마음속에 제가 다른 건 못 해 드려도 이런 모욕은 없애야지 하는 맘에 그랬던 거 같아요.


그 이후로 아내를 따라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고해성사와 성체성사는 하지 않고 스마트폰만 보다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날, 그날도 아내 위한답시고 미사를 갔었는데, 그날 제 귀에 신부님이 읽으시는 복음 말씀 중에 (요한복음 21장)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 물으시는 대목을 읽으실 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가슴도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갑자기 제 마음속에 영성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아내는 고해성사부터 하라고 했지만 저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이었고 눈 주위가 뜨거워지며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 후 고해성사를 보았고 지금은 평일 매일 미사를 참여하며 매일 영성체를 합니다. 이때쯤 그 좋아하는 술도 끊게 되었습니다. 4년이 지났는데 이때부터 너무너무 신기하게 가위눌림이 사라졌어요. 지금은 절대로 예수님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매일매일 기도합니다. ‘제가 부족하고 예수님의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저를 절대 버리지 마십시오, 아버지!’ 하고요.”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상반되는 둘이 한 주체에 공존할 수 없다. ... ‘빛이 어둠과 무슨 사귐이 있겠습니까?’(2코린 6,14) ... 이로 미루어 보더라도 영혼이 먼저 애집을 쫓아버리지 않고는 하느님과의 합일의 빛이 그 안에 자리할 수 없는 것이다.”(『가르멜의 산길』, 4,2)


빛과 어둠의 이원론이 허물어지면 바리사이들처럼 자기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살면서도 율법을 지킨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 사귈 수 없습니다. 어둠을 섬기며 빛을 따르려는 이들은 자기 합리화에 바쁩니다. 결국엔 사랑의 계명을 어깁니다. 그래서 남을 판단하고 미워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악을 섬긴다는 증거입니다. 가톨릭교리는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빛과 어둠의 이원론입니다. 빛과 어둠을 하나로 통합하려는 시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국 인간 미움의 본성에서 하느님 사랑의 본성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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