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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10 조회수 : 3091

자신이 어둠임을 알 때 빛을 찾게 된다


오늘 복음은 어제 복음의 뒷부분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 몇 사람이 조상들의 전통을 어기고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 따집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남의 잘못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그들이 율법을 잘 지켜서가 아니라 율법의 본질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율법을 어떻게 지킬 수 있을까요? 우선 인간 안에서는 좋은 것이 나올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구원자를 찾게 됩니다.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지킬 수 있으면 구원자가 필요 없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마음에서 악한 것들이 나온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정말 사람 안에서 좋은 것이 절대 나올 수 없는 것일까요? 마태오 복음에서는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라고 하십니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달아서 성불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늑대에게 자란 아이가 명상을 통해 인간임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인간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리 명상을 하더라도 자신이 인간인 줄 모르고, 자신이 인간인 줄 모르면 절대 인간의 말과 행동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선이시고 진리이시고 빛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사람 안으로 들어오시기 전까지는 인간 안에 선이고, 진리고, 빛이 없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적어도 하느님께 향하게 만드는 작은 등불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순교복자수녀회 이영숙 베드로 수녀님이 인천 성모자애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병동을 방문할 때마다 이상하게 한 자매가 수녀님만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종교적인 문제라 여겼는데 함께 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그 자매는 자신 같은 죄인이 수녀님같이 거룩한 분 곁에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서 피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은 수녀님이 그 자매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앞을 가로막으며 “죄인 잡았다! 나랑 자매님이랑 누가 더 죄가 큰가 우리 내기해 볼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자매는 처음에 좀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수녀님을 안고 목놓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억울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들은 다 잘살고 있는데 자신만 죽어야 한다는 게 억울했던 것입니다. 자매는 시댁 식구들을 다 죽이고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자매는 서른아홉이었고 췌장암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매는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돈을 벌어야 했습니다. 우연히 출근길에 만났던 남편이 오랜 시간 자매를 쫓아다녔습니다. 남편은 학벌도 좋았고 시댁도 잘 사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남편을 거부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월세살이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시댁에서는 그 자매를 며느리로 받아들여 주지 않았습니다. 시댁 식구들과 겸상하지 못하고 일꾼 대하듯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쓰러져 식물인간이 되었습니다. 꼬박 3년을 간호하고 나니 남편도 미워졌습니다. 똥오줌 받아내며 남편을 구박하고는 또 미안해서 안고 울었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구박이 심해졌습니다. 남편만 믿고 살아온 것이 억울해졌고 남편 수발은 시부모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이들 핑계를 대며 구청 봉사를 다니며 밖으로 나돌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나마 칭찬을 받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도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수녀님은 시댁 식구들을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시댁 식구들은 며느리가 손자들을 안겨 주었을 때 결혼식을 시켜주려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가졌을 때 아들이 식물인간이 되었고 며느리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니,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사실 누워있는 아들과 며느리의 모든 병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이전에 당한 설움과 지금의 상태 때문에 시댁 식구들의 용서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았던 것은 그 자매였습니다. 


며칠 뒤 자매의 생일이었는데 시부모는 커다란 과일바구니에 많은 돈이 든 저금통장을 넣어 며느리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미안했고 재산 다 팔아서라도 고쳐줄 테니 빨리 나으라고만 했습니다. 시부모가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청하자 자매도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그러자 얼굴이 한결 밝아졌습니다.


“수녀님,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저보고 사랑하는 며느리래요! 그리고 처음으로 제 생일도 챙겨주셨어요!”


자매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0년만, 1년만, 한 달만 더 살며 남편에게 잘하고 성당에서 봉사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싶었으나, 얼마 뒤 죽음이 임박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단 하루라도 남편 품에서 머물며 죽고 싶다고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갔습니다. 모든 것을 성당 레지오 단원들이 챙겼습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남편의 품에 안겨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식물인간이라 못 알아듣는 줄 알았던 남편도 있는 힘을 다해 “사... 랑….”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두가 놀랐습니다. 혼인식을 올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렇게 간단하게나마 마지막 혼인식을 올리고 행복한 눈물 속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출처: 『내 가슴에 살아있는 선물』, 이영숙 베드로 수녀, 비움]


고 임언기 신부가 신자들의 간청으로 간암 말기 환자를 찾았을 때 그는 끝까지 고해성사를 거부했습니다. 도저히 안 되어 밖으로 나가는 신부님의 머리 뒤에서 “나 죄 없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인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두 부류로 나뉩니다. 자신에게서 무언가 좋은 게 나올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은 끝까지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느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 안에서 좋은 게 나올 수 없다고 믿는 이들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들입니다. 자신 안에서 좋은 게 나올 수 있다고 믿으면 자신이 자신의 구원자가 되기에 더는 외부에서 구원자를 찾을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이 가장 저주받은 삶입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하느님 외에 아무도 선하지 않다.”(『가르멜의 산길』, 4,4)라고 하고, “상반되는 둘이 한 주체에 공존할 수 없다.”, “빛과 어둠이 어떻게 어울리겠느냐?”(4,2)라고 말하며, “하느님과의 합일에 들려면 영혼 안에 사는 모든 것, 적거나 많거나 크거나 작거나 간에 모든 것이 죽어야 한다.”(11,8)라고 말합니다.


인간 안에서 선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하는 경우 우리는 그 사람이 더욱더 주님을 필요 없게 만들고 저주로 이끌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빛은 자신이 어둠임을 깨달은 이에게만 의미를 가집니다. 빛은 어둠만을 구원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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