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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08 조회수 : 2946

2월 8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복음: 마르코 6,53-56 
 
우리 자신도 공동체의 힘을 모른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께 데려오는 모든 병자를 치유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병자들을 들것에 눕혀 데려옵니다. 이 장면은 다시 네 명의 친구가 한 명의 중풍 병자를 데려와 치유를 받고 죄의 용서를 받는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힘을 지니고 있었는지 알았던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 전에 나오는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신 기적과 물 위를 걸으신 기적입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가라앉히십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었던 제자들은 아직 5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나오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자신들 안에 어떤 힘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니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할 때,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하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겐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라고 주시는 빵이 있습니다. 빵은 에너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주님께로 나아올 힘이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그들이 먹을 빵이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언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결단하는 것도 큰 에너지가 소비되는데 그 결단을 따를 에너지는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에서만 주어집니다.
인간은 생존 본능과 그것과 반대되는 율법 간의 선택 사이에서 이미 지쳐있습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1998년 이런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여자를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똑같은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룹 ‘A’에게는 동영상을 보고 난 후 자신이 느끼는 그대로를 표현하게 했고, 그룹 ‘B’에게는 자신의 정서를 드러내지 않고 억누르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들의 악력을 측정했는데, 자기감정을 억눌렀던 그룹 ‘B’의 사람들이 악력이 더 약해진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룹 ‘B’의 사람들이 자신의 정서를 억누르기 위해 이미 의지력이 소모되었다는 뜻입니다. 
 
초콜릿을 이용한 또 다른 실험도 있습니다.
대학생 한 그룹에는 초콜릿을 다른 그룹에는 무를 주어 그 맛을 기록하도록 한 것입니다.
무를 먹는 그룹은 초콜릿을 먹는 그룹을 보며 먹고 싶은 의지를 억눌러야 했을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어려운 문제를 내거나 어려운 퍼즐을 맞추라고 했을 때 초콜릿을 먹은 그룹이 훨씬 오래 인내심을 발휘해 문제를 풀었다는 것입니다.
무를 먹는 그룹은 그것을 먹는 동안 의지력을 많이 소진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판단을 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스티브 잡스는 마크 저커버그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소진되는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같은 옷과 신발만을 입고 신습니다.
판단을 위해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은 분명 인간은 자유의지로 이것과 저것 중 하나를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지쳐있으면서도 지친 줄 모릅니다. 
 
헤로데와 같이 아예 결정을 자신을 섬기는 것으로 내린 경우를 제외하고는 교회 공동체는 주저하는 누구에게나 결단의 힘을 줄 빵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예수님께 나아와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옷자락 술은 율법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힘을 얻은 이들의 공동체가 움직이지 못하는 이들을 예수님께로 데려와 율법을 지키는 사람으로 새로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마르코는 이미 5장에서 예수님께 에너지가 나와 악령을 몰아내고 하혈병 걸린 여인을 치유하며 죽은 야이로의 딸까지 살리신다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만약 예수님으로부터 모든 에너지가 솟구친다는 것을 믿었다면 물 위를 걷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이 그렇게 두려워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코에게 예수님은 에너지의 근원이고 그 힘이 주는 결과는 평화입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는 그 자체로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기에 모든 이들에게 나눠줄 빵을 지녔습니다. 
 
저도 사제가 되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주저할 때, 저의 어릴 적 두 친구가 신학교 먼저 들어가 있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한 친구가 들어갈 때는 아주 잠깐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나머지 한 친구마저 들어가니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셋 중 둘만 한쪽으로 가도 그쪽으로 갈 힘을 얻게 됩니다. 
 
주님을 전하는 이들이 의지력이 약해진 이들, 그래서 좋은 것을 선택할 줄 모르는 이들에게 주어야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로 나아올 힘입니다.
좋은 것을 선택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 선택을 할 힘이 없어서 못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무를 먹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초콜릿을 먹고 싶어도 자신들의 선택을 넘어설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먹고 마심으로써 에너지가 충만합니다. 초콜릿을 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들도 모르고 우리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를 일깨우기 위해 당신이 물 위를 걸어 배 위에 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한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어떻게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스도를 모신 공동체로서 그 자체로 가진 힘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누구든 들것에 들고 주님께로 데려갈 수 있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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