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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1월 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1-06 조회수 : 1111

11월6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 16,1-8 
 
​돈을 쓴다고 다 친구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루카 복음 16장은 인간이 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입니다.
15장에서 아버지에게 유산을 달라고 하고 떠난 탕자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유산을 가지고 나가서 그것을 탕진하였습니다.
그때 그의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재물이 사라지자 아무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청지기가 많은 친구를 사귀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왜 같은 돈을 써도 누구에게는 친구가 생기고 누구에게는 생기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그래서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거처로 맞아들이게 하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불의한 재물’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도구는 ‘불의한 재물’이지 나의 재물이 아닙니다.
내가 사용하고 있는 재물이 나의 것이라고 느끼면 그것으로는 친구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쓴 돈을 반드시 회수하려 합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보다는 부담스러운 마음을 줍니다.  
 
따라서 주면 보답은 받을 수 있으나 관계가 형성되지는 않습니다.
어차피 그 사람 것이 아니니 갚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게 베풀어야 친구가 생깁니다.
오늘 청지기가 그렇게 재물을 써서 친구를 사귄 사람입니다. 
 
누군가 쓴 「왠지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란 글을 소개해 드립니다.
왜 우리는 남에게 잘해주면서도 친구가 생기지 않을까요?
이 글에 그런 고민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싫지는 않은데 더 가까워지는 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
이야기해 보면 재미있고 공유하는 느낌도 많고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 좋은데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커피 같은, 아이스크림 같은 그런 사람이 있다.  
 
멀어지면 걱정이 되고 오래 말 안 하면 이대로 침묵이 굳어질까 두려운 사람이 있다.
함께 오래 이야기 나누는 좋은 사람, 부담 없이 이야기해도 되는 사람, 그래서 여기서 그냥 말하고 싶은데 슬슬 다가와 앉거나 더 친절해지려 하거나
있어야 할 경계선 같은 걸 무시하려 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  
 
사실 알맞지 않으면 저도 힘겨울 텐데, 저도 다 생각이 있을 텐데 이쯤이 그래도 좋다는 걸 저도 알 텐데 슬그머니 자꾸 가까워지는, 나도 모르게 가까워져서 놀라서 뒤로 발을 빼게 되는 사람이 있다.  
 
왜 그러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다른 걸까.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서로 오해에서 이만큼 다가선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잘못 생각할 것이 무엇이 있다고. 그 또한 미안해하고 고마워하는 것을.
그 또한 가끔 침묵하고 서먹하고, 쑥스럽기도 한 것을.
사람 사이란 벽돌처럼 가운데에 쌓아 올리는 경계가 아닌 것을,
물 흐르듯 흐르기도 하는 것을,  
 
그래서 가끔 내가 넘어가고 저가 넘어와 서로 미안하기도 한 것을.
그래서 더 걱정돼서 물러나, 그 부담스러움을 다시 일깨우는 것을.
아니, 솔직히, 친절해지고 싶지만 그걸 호감으로 느낄까 봐 두려운 사람이 있다.
호감이 아니란 건 아니지만, 호감 이상으로 느낄까 봐 두려운 사람이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니 원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저대로 나대로 잘 있으면서 쿨하게 그래 쿠울하게 부담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잘해주면 내가 잘해준 것보다 더 잘해줘서 위험한 사람이 있다.  
 
알맞은 마음을 재는 내 마음이 고장 난 걸까.
알맞은 마음 이상으로 늘 퍼주려 하는 그 마음이 고장 난 걸까.
늘 한결같이 친절하고 고맙고 따뜻하고, 그래서 불편한 좀 오래갔으면 좋을, 친구가 되고 싶은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
누군가에게 나도 이런 사람일까.” 
 
왜 우리는 잘해주면서도 누군가에게 부담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일까요?
그 사람 속에 자신이 준 것에 대한 보답을 받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것이니까 손해를 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약삭빠른 종에게 이것저것 탕감을 받는 이들의 마음엔 부담이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것 주는 것도 아닌데 뭐!’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고맙기도 한 것입니다.
비록 갚아야 할 의무는 없지만 고마워서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의 보답만 하면 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친구 사입니다.  
 
우리는 그런 편안한 사람이 되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친구가 생깁니다. 
 
유튜브 채널 ‘애니멀봐’에 「할머니 장례식에서 눈물 흘리던 백구가 2년 동안 한 일」이란 짧은 동영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노환으로 돌아가시자 나이가 많고 몸도 성하지 않은 백구는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할머니와 함께 걷던 떡집과 절 등을 순례합니다. 
 
보통 젊은 주인이었으면 개에게 밥을 주거나 보살펴 줄 때도 무언가 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할머니는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 없는 사랑을 베푸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같은 사랑을 받았어도 할머니의 사랑이 더 순수하고 깨끗하여 할머니를 더 생각하는 것일 수 있겠습니다. 
 
‘어차피 나도 받은 건데 뭐’라고 생각하며 재물을 쓴다면
그 재물을 받는 이들은 그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이만큼이나 해 주는데’라고 생각한다면 상대는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고마움을 느끼게 할 것인지, 부담을 느끼게 할 것인지는 주는 사람의 자세에 달려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따라 친구가 생기고 안 생기고가 결정되고, 하느님 나라에서 나를 맞아들일 사람이 생길 것인가, 아닌가가 결정됩니다. 
 
부담이 아니라 감사가 나오게 재물을 사용해야 친구가 생깁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과 거저 주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예수님은 감사가 나오게 당신 살과 피를 내어주십니다.
그 이유는 그것을 당신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다 아버지께 받은 것으로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는 모든 것, 그것들은 항상 본래 나의 것이 아닌 ‘불의한 재물’이어야만 합니다.
세상에 나의 것은 없습니다.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줄 때는 친구가 생길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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