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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6월 17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6-17 조회수 : 520

6월17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2열왕기 2,1.6-14
마태오 6,1-6.16-18 
 
​타인은 지옥이다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드라마가 있습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한 소설작가 지망생이자 사회 초년생 주인공이 월세가 싼 어느 허름한 고시원에 들어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그 고시원에서는 계속 살인사건이 벌어졌고 직장에서도 아무도 자신에게 신경을 써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애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지만, 너무 예민하다며 그의 말을 믿어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상한 일을 고시원의 한 친구에게 털어놓습니다.
그 친구만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믿어주고 공감해줍니다.
그런데 사실 그 친구가 이 모든 살인사건의 주범이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타인처럼 느껴지는 이 공간에서 그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에 익숙해져 갑니다.
그래야 혼자만 타인으로 머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살인을 저지르는 데 쾌감을 느끼는 괴물이 됨으로써 비로소 그 사회에 속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부부는 정말 일심동체인가요, 아니면 가끔 타인처럼 느껴질 때가 있나요?
제가 아는 어떤 분은 몇 년 전부터 우울증약을 먹고 상담을 받습니다.
저녁에 피곤해서 들어오면 그냥 의미 없이 TV를 돌려보다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약을 먹어도 크게 호전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내와의 관계 때문입니다.
집에 둘이 있어도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있을 땐 아이들에게 신경을 쓰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둘이 있어도 자신에게 짜증만 낼뿐 다정한 미소를 짓는 적은 없다고 말합니다.  
 
정말 타인과 함께 지내는 것은 지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타인처럼 대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지옥이라면, 친구와 머물 땐 천국이 됩니다.
누가 타인이고 누가 친구일까요?
타인은 나와 함께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신경을 쓰는 사람입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나에게만 신경 써 주는 사람입니다. 
 
유럽에서는 남녀가 길거리에서 애정 행위를 거리낌 없이 합니다.
마치 세상에 둘만 존재하는 것 같게 행동합니다.
이런 상태라면 둘은 천국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를 아는 사람이 옆에 있다면 둘의 그런 모습에서 소외를 느끼고 그러면 지옥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의 제한된 에너지를 몇몇 사람에 쏟아버릴 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소외시켜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관계에서 우리는 천국도 느끼고 지옥도 느낍니다.
타인을 좋아하여 지옥을 체험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타인으로 만들어 남도 지옥에 살게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고 타인으로 만들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 관계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서는 안 됩니다.
우선 세상 모든 사람으로부터 소외되고 세상 모든 사람이 타인이 된다고 해도 상관없는 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관계를 맺어줄 능력이 있으신 분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밖에 없습니다.  
 
먼저 하느님과 좋은 관계가 유지되는 가운데 세상으로 관계를 넓혀가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에 신경 쓰다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모든 행복을 사람들에게 걸어야 해서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이웃들에게서 큰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이와 관련된 아주 좋은 예화가 나옵니다.
행복은, 마치 숟가락에 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려 그것이 흘리지 않고 들고 다니며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숟가락 위의 기름은 하느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 집중하며 에너지가 남는 만큼 이웃과의 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먼저 이웃과의 관계에 집중하면 숟가락 위의 기름이 쏟아지고 그러면 내가 하느님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잃었기에 결국 자신을 타인 취급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애정을 구걸하러 다녀야 합니다.
그러나 그도 그 외로움 때문에 모든 사람을 소외시키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선행도 이웃이 아닌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하고,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식할 때도 세상 사람들이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웃에게 먼저 신경 쓰면 숟가락의 기름이 흐르는 것도 모릅니다.
숟가락에 기름이 흐르게 한다는 것은 내가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누구도 자신을 친구로 여겨주지 않는 세상에서 영원한 타인으로
지옥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라디오를 들을 때 두 주파수를 동시에 들을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타인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우선은 세상을 타인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이 먼저 친구가 되면 그 기쁨과 계명으로 어떤 누구도 타인으로 만들 수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우선은 주님과의 관계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경을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림을 보는 것보다 숟가락 위의 기름이 더 중요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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