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8,1ㄴ-8
요한 6,35-40
관계를 맺어주시는 분이 관계를 유지할 힘도 주신다
애완견에 1,200만 달러(약 150억 원)의 유산을 물려준 사람이 있습니다.
헴슬리 호텔 등을 소유한 미국의 부동산 여왕으로 불리는 리오나 헴슬리(Helmsley)입니다.
그녀는 2008년 사망하면서 자신의 남동생과 손자 2명에게는 1,000만 달러(약 120억 원)씩
상속을 물려주었지만, 그의 애완견 ‘트러블’에게는 1,200만 달러(약 150억 원)의 유산을 물려주었습니다.
엄청난 유산을 받은 애완견 ‘트러블’은 8년 전 친구가 선물로 준 강아지였습니다.
병원에 데려갔지만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며 야단법석을 피웠기 때문에 이름을 ‘트러블’이라고 지었습니다.
‘트러블’은 경호원, 간호사, 호텔 손님 등 헴슬리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을 닥치는 대로 물어
소송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헴슬리는 ‘트러블’을 개라 부르지 말고 공주라 부르게 하면서 ‘최고의 경호원’이라며 자랑했습니다.
왜 애완견에게 그렇게 많은 액수의 유산을 남겼느냐고 의아해하며 그녀의 정신 상태에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는 40억 달러(약 5조2000억 원)를 사회에 기부함으로써
2008년 미국 최대 기부왕으로 등극한 것으로 보아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완견 트러블에게 그 많은 액수를 유산으로 준 것도 이해가 갑니다.
말년에 친지와의 별다른 교류도 없이 드넓은 호텔 펜트하우스에서 혼자 지내야 했기 때문에
‘트러블’은 그녀의 유일한 벗이자 절대적인 애정의 대상이었습니다.
트러블은 헴슬리가 외출한 후에는 호텔 방문 앞에서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3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자리를 지키기도 했습니다.
트러블은 말썽꾸러기였어도 주인을 따르고 주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주인은 그에게 그만한 대접을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면면히 흐르는 의문은 ‘왜 어떤 사람은 표징을 보고 그리스도를 믿지만, 어떤 사람은 믿지 못하는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내리는 결론은 그들은 하느님께서 선택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올 것이고, 나에게 오는 사람을 나는 물리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모든 관계의 주체를 아버지로 여기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뽑으실 때도 밤새 기도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물으셨습니다.
또 베드로를 교회의 수장으로 뽑으실 때도 아버지께서 누구를 교회의 수장으로 정하셨는지
아시기 위해 시험해 보셨습니다.
당신을 누구라고 보느냐고 물으신 다음 베드로만 올바로 대답하는 것을 보고 그에게 성령을 주신 아버지의 뜻에 따라 그를 교회의 반석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관계의 주체를 자신이 아닌 아버지로 두는 것은 세상의 어떤 지혜보다도 높은 지혜입니다.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되어버리면 자신의 기분에 따라 관계의 친밀함이 오락가락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관계의 주체가 되는 사람은 변덕이 심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관계의 힘은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사랑의 열매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 성령은 하느님의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유산을 주시고 싶으시겠습니까?
자기 뜻대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에게 주고 싶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아버지의 뜻에 따라 관계를 맺는 사람에게 주고 싶으시겠습니까?
유산을 받으려면 유산을 주는 이를 잘 따라야 합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인 이사악의 신붓감을 찾아오라고 종을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종은 주인의 뜻에 따라 레베카라는 여인을 찾고 이사악에게 데려옵니다.
이사악은 아버지가 정해주신 신붓감을 두말없이 자신의 아내로 맞아들입니다.
이것이 이사악이 아버지께 대한 믿음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정해준 신붓감을 두말없이 받아들이는 이사악을 보고 아들이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로써 또한 둘이 잘 살 수 있도록 모든 유산을 부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아버지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으며 자신과 살 사람을 선택하고 유산만 달라고 하면
아버지는 그 유산을 기꺼이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 관계도 쉽게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계를 자신이 선택해서 하는 사람들 안에는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함이 숨어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의 이런 면을 질책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의 유산인 당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려는 이유는 그들이 또한 관계의 주체라는 교만함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가 성령과 같습니다.
성모님처럼 준비된 사람에게만 성령의 선물이 주어집니다.
성령의 선물이 주어지는 사람은 관계를 하느님께서 맺어주시는 선물임을 믿는 사람입니다.
인간관계의 주체가 자신이라 믿는 이들은 인간관계도 안 되고 하느님과의 관계도 안 됩니다.
레베카는 모르는 사람에게 물을 길어주고 낙타 열 마리에게도 물을 먹여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모든 관계의 주체가 자신이 아닌 주님께 두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주님께서 맺어주신 사람들이라고 믿고 최선을 다할 때 그 사람에게 진정으로 성체 성혈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친교와 영원한 생명도 주어집니다.
관계를 맺어주시는 분이 그 관계를 유지할 힘도 주십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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