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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3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4-30 조회수 : 562

4월30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사도행전 8,26-40
요한 6,44-51 
 
​알고 싶지 않으면 사랑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대화’는 대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면 어색해지는 상황을 두려워하고 걱정합니다.
저도 그랬기에 대화의 기술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나름대로 방법도 실천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화의 기술 5가지를 정리해보자면 이렇습니다. 
 
1.말하는 것보다 들어라 – 입은 하나, 귀는 두 개. 내가 말하는 것보다 두 배는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잘 들어주기만 해도 “오늘 좋은 대화였어!”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2.상대의 말에 관심을 가져라 – 보통 말을 할 때 상대의 눈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양의 정서이고 우리는 인중 쪽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의 말에 호응을 해주고 장단을 맞춰줘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가 신나게 말할 수 있습니다. 
 
3.상대를 긍정하라 – 옳고 그름은 사실 말하는 사람이 더 잘 압니다.
그것을 바로잡아 주려다가는 상대가 가진 나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됩니다.
상대는 지금 상담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4.질문하라 –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화에 마침표를 찍는 사람이 있고 그 대화가 계속 흐르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를 흐르게 하려면 나의 대화 다음에 반드시 상대의 대답이 나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5.상대가 관심있는 것을 질문하라 – 질문이 취조가 되면 안 됩니다.
상대가 지금 말하고 싶은 것을 질문하면 상대는 신이 나서 말하게 됩니다.
그런 주제를 질문해야 합니다. 
 
여러 가지를 말했지만 사실 대화의 기술의 핵심은 하나입니다.
‘상대를 사랑하라!’입니다.
사랑하면 알고 싶어지고 알고 싶어지면 내 말보다는 상대의 말을 듣고 싶어서
질문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상대는 자신을 알고 싶어 하는 나의 마음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알고 싶은 마음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은 하나입니다. 
 
몇 년을 함께 지내도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 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라면 그것만큼 가슴 아픈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은 그야말로 슬픈 일입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처지에 있다는 것은 어쩌면 나도 다른 사람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해 알고 싶고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한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께서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묻는 것이 없다면 하느님도 침묵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당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귀를 막고 있는 사람에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체의 신비에 대한 믿음까지 오지 못하는 이들이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알려고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모두 하느님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예언서들에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나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과 친교를 맺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요즘은 하늘나라 신비에 대해 알려고만 하면 그 정보를 아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성경공부나 교리공부를 따로 하지 않더라도 SNS나 유튜브만 봐도 수많은 정보와 가르침들이 흘러넘칩니다.
그런데도 표징만을 요구하며 배우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참 구원과 진리에 무관심해지는 것일까요?
다른 것에 더 관심을 쏟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습니다. 
 
2007년, 어느 추운 겨울 아침, 한 바이올리니스트가 워싱턴 D.C의 기차역에 서서
여섯 곡의 바흐 작품을 연주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도 바이올린도 절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명인 조슈아 벨로였습니다.  
 
조슈아가 바쁜 직장인들로 가득한 기차역에서 35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동안
2,000여 명이 그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45분간 계속해서 연주했습니다.
단 6명이 잠시 걸음을 멈춰 서서 그의 연주를 들었습니다.
20명가량이 돈을 냈지만 이내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연주를 마쳤을 때 기차가 내는 소음 외에는 정적이 흐를 뿐이었습니다.
박수갈채도, 군중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가 진행한 이 실험은 놀라울 정도로 강력하고도 불편한 진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악가마저도 치열한 경쟁에 휩쓸리는 사람들 가운데서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안에도 우리 자신에 관한 관심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주님에 관한 관심이 없어집니다.
구원에 이르려면 먼저 그 구원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집에 뒹굴고 있는 우주에 관한 그림책을 보며 모든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려고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더 많이 알수록 더 친밀해집니다.
더 많이 알고 싶을수록 더 많이 질문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다면 지금 하느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가운데 성체 안에서 진정으로 주님을 만나 뵈옵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을 알기 위해 어떠한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시도하셨습니까?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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