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연중 제25주간 금요일]
하까이 1,15ㄴ―2,9
루카 9,18-22
<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영광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
오늘은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 성 빈센트 드뽈 기념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살고 또 가난한 이들을 위해 여러 수도회를 세운 성 빈센트 드뽈이 처음부터 그렇게 거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는 젊었을 때 출세하고 싶어서 일찍 사제서품을 받고 싶어 했습니다.
신학교 시절엔 아버지가 형편없는 옷차림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아들을 찾아왔을 때 체면이 깎일까봐 창피해서 만나지 않은 적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시골 출신으로 돼지치기를 했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참으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살아보았던 두 번에 걸친 하느님 체험은 성 빈센트 드뽈을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그 첫 번째 체험은 그가 도둑질을 했다는 누명을 쓰고도 여섯 달 동안 침묵을 지킨 일입니다.
두 번째 체험은 어떤 신학박사가 신앙의 유혹에 빠져있는 것을 돕기 위해 그 유혹을 자신이 대신 받겠다고 기도한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유혹이 그에게 주어졌고 그는 유혹에 빠질 듯하면 ‘사도신경’을 베낀 종이를 가슴에 품고 그 위에 손을 대며 신앙을 새롭게 고백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신앙에 대한 심한 유혹에 사로잡혀 괴로워하고 있을 때, 그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바치기로 서원합니다.
그 때부터 마음을 괴롭히던 유혹과 고통은 사라지고 신앙에 대한 확신과 영혼의 평화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한 모습을 닮고 싶어 합니까?
영광의 예수님입니까, 아니면 고통 받고 멸시 받는 십자가의 예수님입니까?
요즈음 우리가 보고 있는 루카복음은 참된 신앙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본받는 것임을 줄기차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군중이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 엘리야,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살아나셨다고
말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수님은 이번엔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은 마귀들도 알았습니다.
베드로의 고백과 마귀의 고백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이 복음 바로 위로 올라가보면 헤로데가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헤로데도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헤로데가 예수님을 알고자 하는 이유는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신앙고백입니다.
자기 자신의 영광을 위한 관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 바로 위에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이야기가 나옵니다.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의미합니다.
당신의 봉헌으로 열두 광주리, 즉 이스라엘 백성이 탄생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 한 백성이 탄생하는 영광은
자기 자신을 양식으로 내어주는 십자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당신을 알아보는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헤로데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예수님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의 등에는 자기를 죽이는 십자가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내가 이웃을 살리는 양식이 되려는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게 됩니다.
십자가 없는 신앙고백은 가짜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교만하면 기쁨을 잃습니다.
성 빈센트 드뽈처럼 겸손해지고 가난해질 때 참 기쁨을 다시 찾습니다.
이것이 십자가를 통해 나에게 주어지는 영광입니다.
고 김수환 추기경님이 이런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가난한 집 출신입니다. 여러 해 동안 남의 집 셋방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신부가 되면서 가난을 점점 잊어버리더니 주교, 대주교, 추기경이 되면서 불행하게도 귀족이 되어버렸습니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당신을 낮추신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랑은 겸손입니다.
이걸 먼저 깨달아야합니다.”
우리가 어떤 때 마음이 편안하고, 어떤 때 기쁨이 솟아나는지 잘 기억해야합니다.
확실한 것은 더 가지고, 더 교만해질 때 평화와 기쁨을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가난해지고 겸손해지는 길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을 온전히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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