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부활 제3주간 목요일]
독서 : 사도행전 8,26-40
복음 : 요한 6,44-51
< 양식과 음식의 차이 >
제가 어렸을 때 저희 집은 매우 가난하여
한 때 며칠 동안 라면으로만 식사를 해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쌀이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라면이 맛있기는 하지만 매 끼니를 라면만 먹으면 라면이 이상한 맛으로 바뀝니다.
며칠 먹으니 라면에서 짐승의 창자 냄새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못 먹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며 숟가락을 빼앗으셨습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지 못한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잠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때 어머니의 마음이 더 아프셨다는 것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매일 라면만 먹어야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음식이 마치 부모님이 뚝딱 하면 생겨나는 줄 알았던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의 뒤틀린 발가락과 손발에 박힌 엄청나게 두꺼운 굳은살을 보고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두껍고 딱딱한 살이 부모님 손발에 붙어있는 것이 신기해서 오랫동안 만져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비로소 음식과 부모님의 굳은살이 별개의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식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피와 땀으로 마련하는 것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음식은 이전의 음식이 아니라 하나의 양식이 되었습니다.
음식과 양식의 차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믿고 안 믿고의 차입니다.
그 이후로는 반찬투정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점심을 싸주지 못하셔도 불평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 한 달에 1,100원만 내면 우유를 매일 먹을 수 있었는데도 저는 그 돈을 달라고 청하지도 못했습니다.
돈이 바로 부모님의 살과 피임을 알았기 때문에 우리 가정 형편을 보며 우유를 먹겠다고 감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가는 때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부모님의 살과 피임을 알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전에 한 폐륜아가 부모의 돈이 탐나 부모를 살해하고 집에 불을 질러
유산을 노렸던 일이 있었습니다.
한약유통을 하는 집으로 기억하는데 저는 그 부모님이 자녀에게 음식은 주었지만
양식은 주지 못했다고 믿습니다.
음식은 고생하지 않고 마련한 것이고 양식은 그 주는 이의 살과 피가 섞인 것입니다.
부모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셨다면 부모를 그렇게 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먹는 음식이 부모의 피땀이 서려있었음을 믿지 못하며 성장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생명의 빵이신데, 그 빵은 곧 당신의 살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영하는 성체성혈은 진짜 예수님의 살과 피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태어나시면서 가축들의 밥통인 구유에 놓였습니다.
이것은 짐승처럼 사는 우리들이 예수님을 먹고 마셔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닫고 새로 태어나게 만들기 위해 세상에 오셨다는 상징입니다.
그러나 성체성혈이 예수님의 살과 피임을 믿지 못하면 하느님의 사랑도 믿지 못하여 미사를 참례해도 양식이 아니라 마치 비타민처럼 음식을 먹고 돌아가게 됩니다.
음식을 먹어서는 새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성체성혈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게 믿지 않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우리는 성체성혈이 진정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임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폐륜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주시는 음식이 부모님의 희생이 섞인 양식임을 알았을 때 어떻게 변했었는지를 기억합니다.
바로 더 이상 아무 것도 청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치 성당에 와서 미사를 하면서도 이것저것 부족한 듯이 청하고 있다면 성체성혈이 예수님의 살과 피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목숨을 내어주는 분 앞에서 또 무엇이 부족하여 다른 것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미안해서라도 그것에 감사하고 그분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느님의 나라를 청하면 나머지는 덤으로 받는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나머지 것을 청하면서 정작 하느님 나라는 잃습니다.
무언가 청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이 성체성혈에 대한 믿음을 깎아먹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합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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