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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1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10 조회수 : 411

5월 10일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독서 : 사도행전 9,1-20
복음 : 요한 6,52-59 
 
< 양식이 들어오면 목소리로 바뀐다 >
 
영화 ‘증인’(2018)은 세상에 물들어가는 한 변호사가 순수하기 짝이 없는 한 자폐아를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변호사 정우성은 한 살인사건을 맡게 되며 주인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피고가 된 한 가정부를 변호해야 합니다. 
변호를 잘 해 내면 아버지가 남겨놓은 빚보증은 물론 앞으로의 성공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우성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아이를 만나며 모든 진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의 진술이 옳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정우성은 갈등에 휩싸입니다. 
 
‘누구의 목소리를 따를 것인가?’
정우성은 아이에게 잘해주고 아이를 걱정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더 걱정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그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변론해야 했습니다. 
아이는 정우성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이 말에 정우성은 쉽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누구라도 그럴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먼저 생각하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음을 누구라도 알기 때문입니다. 
정우성은 아이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정우성은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한 자폐아의 물음에 올바로 대답하기 위해 지금까지 성공을 위해 쌓아온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순수한 한 아이에게서 칭찬 한 마디듣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꾼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도 우리 안에서 묻습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지금 저에게 그렇게 물으면 절대 예수님 앞에서 그렇다고 대답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답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예수님 앞에서 그렇게 대답해야합니다. 
 
좋은 사람만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습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이 부자일 수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은 그만큼 더 내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부자인 상태로 죽는 것을 경계해야합니다. 
 
만약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라는 목소리가 우리 안에 없다면 우리는 마지막 때의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피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이 물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양심에서부터 항상 이 목소리가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다른 목소리들로 이 목소리가 들리지 않게 살아온 것뿐입니다. 
학생 때는 “당신은 일류대 생입니까?”라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더 성장해서는 “당신은 능력 있는 사람입니까?”라는 목소리에 응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면서 양심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생존을 위한 목소리, 즉 “먹고 싶다. 자고 싶다. 가지고 싶다. 죽이고 싶다.” 등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목소리는 누군가에 의해 우리에게 주입된 목소리입니다. 
대부분은 부모에 의해 주입되었습니다.  
 
“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엄마가 말해주었다면 아이는 그 목소리를 성취하기 위해 삽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셔도 그 목소리는 죽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해 준 양식을 먹으며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아이 안으로 들어가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고 하신 의미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식을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서 ‘목소리’로 살아가십니다. 
그리고 매순간 “나처럼 살고 있니?”라고 물으십니다. 
마지막 순간에는 “너는 나니?”라고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살지 않았다면 이 질문에 대답하기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양식으로 들어왔습니다.
양식은 그것을 주는 이의 목소리를 내 안에 옮겨놓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양식인 성체성혈을 먹고 마셨다면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 안에서 양식은 항상 목소리를 변환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려야 그분의 양떼 가운데 하나입니다. 
양식이 목소리가 되지 않았다면 양식이 아닌 음식으로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 안에 사시는 성체의 목소리를 들어봅시다.
그러면 “너는 나를 닮았다!”라는 칭찬 한 마디 듣기 위해 나의 온 삶이 변화하게 됩니다.
이것이 새로 태어남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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