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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8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5-08 조회수 : 369

5월 8일 [부활 제3주간 수요일] 
 
독서 : 사도행전 8,1ㄴ-8
복음 : 요한 6,35-40 
 
< 양식은 뜻이다 >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사회학과 교수가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볼티모어의 유명한 빈민가로 가서 청소년 2백 명의 생활환경을 조사하라는 숙제였습니다.  
 
학생들은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청소년들을 조사하여 그들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조사서를 만들어 제출하였습니다. 
평가서는 거의 동일하였습니다. 
 
‘이 아이들에게는 전혀 미래가 없다. 너무 가난하여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났습니다. 
이 학교에 사회학과 교수가 우연히 이 연구 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2백 명의 청소년들이 25년이 지난 현재 모습을 조사하여 오라는 
숙제를 냈습니다.  
 
조사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 동안 죽은 아이와 이사 간 아이가 20명이었습니다. 
나머지 180명중에서 176명이 대단히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변호사, 의사와 사업가 등 상류층이 많았습니다.
교수는 놀라서 그 조사를 더 진행시켰습니다. 
교수는 그들을 한 사람씩 만나 직접 물어 보았습니다.
‘당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답은 모두 한결같았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이 계셨지요. 그분의 가르침 때문입니다.’
그 여교사가 아직도 생존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교수는 수소문 끝에 그 여교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쳤기에 빈민가의 청소년들을 이처럼 성공적인 인생으로 이끌었습니까?’
늙었지만 아직도 빛나는 눈으로 여교사는 작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비결은 정말 간단합니다. 그 아이들을 사랑했답니다.’ 
 
빈민가는 배가 고픈 아이들이 사는 곳입니다. 
배가 고프면 사랑도 고픕니다. 
음식을 주는 것이 곧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고프면 다른 것으로라도 채워 넣으려 합니다. 
마음이 공허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은 물질로는 채워지지 않습니다. 
음식이 고픈 것이 아니라 사랑이 고픈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만 차면 술과 게으름과 방탕으로 자신을 채우려하지 않기 때문에 세상에서도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 사랑 안에 그 사랑을 주는 이의 뜻이 들어있는데 그 사랑을 주는 이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생명의 빵이라고 하시며 당신을 먹으면 결코 배고프지 않고 당신을 마시면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성체성혈을 영하면서도 배고프고 목마릅니다.  
 
돈에 배고프고 애정에 목마릅니다. 
인정받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 합니다. 
왜 생명의 빵을 먹으면서도 배고프고 목마른 것일까요?
그 이유는 예수님을 영혼의 양식이 아닌 육체의 양식으로 받아 모시기 때문입니다.  
 
영혼이 채워지면 육체의 욕구가 사라집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이 욕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실 때 오히려 세상의 배고픔과 목마름을 위해 모십니다. 
성체를 영하면서도 자녀가 잘 되게 해 달라고 청하고 가족이 건강하도록 기도합니다.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성체를 영해야하는데 오히려 성체를 영하면서도 육체의 배고픔과 갈증만을 해소하려고 예수님을 영혼이 아니라 육체에 밀어 넣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갈증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당신이 생명의 빵이란 말씀을 하신 직후, 곧 “나를 보내신 분의 뜻”, 혹은 “내 아버지의 뜻”이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십니다. 
그 이유는 양식과 뜻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양식은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한 번은 예수님께서 “내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실천하고, 
그분의 일을 완수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양식이 들어있으니 다른 욕망이 들어올 틈이 없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곧 생명의 양식입니다. 
내 뜻을 그분에게 청하기 위해 성체를 영하는 것이 아니라 내 뜻을 죽이고 그분의 뜻을 먹는 것이 성체성사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내 뜻을 성취해 줄 것을 요구하며 성체를 영하니 성체가 나의 배고픔과 갈증을 해소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나의 뜻과 반대되는 뜻이 양식으로 오기에 내 뜻을 요구하면 하느님의 뜻이 내 배를 채워줄 수가 없습니다.  
 
이는 마치 목마른데 밥만 먹는 격이고, 배고픈데 물만 마시는 격입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개에게 받아먹으면 아기는 자기가 개인 줄 알 것입니다. 
개가 주는 양식 안에는 자신처럼 살라는 개의 뜻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주는 양식은 부모의 뜻이고, 하느님이 주시는 양식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함이 우리 양식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배고픔과 갈증이 사라집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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