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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4-03 조회수 : 479

4월 3일 [사순 제4주간 수요일] 
 
복음: 요한 5,17-30 
 
< 확실할 때만 말하고 행동하라 > 

어린이들이 복사를 처음 설 때 매우 긴장하고 당황해하는 경우를 봅니다. 
어떤 아이들은 식은땀을 흘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심지어 제대에 구토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어렸을 때 저도 어찌 할 바를 몰라 혼났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배우는 복사를 소복사라 하고 선배 복사를 대복사라 합니다. 
소복사를 몇 번 서봐야 대복사를 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소복사를 한 번밖에 서보지 않았는데 수녀님이 대복사를 시키셨습니다.
물론 후배가 보는 가운데 못한다 할 수 없어서 하기로 했지만 매우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신부님이 미사 중 손 씻는 수건도 매우 복잡하게 접혀있었습니다. 
저는 어찌할 바를 몰라 그것을 거의 5분 가까이 벌벌 떨면서 접었습니다. 
잘 접히지 않으면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데 어찌할 바를 몰라 중요하지 않은 일에만 집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체축성 때 종을 쳐야 하는 것까지 잊고 그것에만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종을 치지 못해 신부님에게 혼이 났고 더 이상 복사를 서고 싶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은 매우 큰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 때문에 아무렇게나 말하게 되고 행동하게 되어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되고 모르면 알려줄 분을 바라보면 됩니다. 
저는 신부님이 종을 치라고 눈짓을 하는데도 여전히 등을 보이고 수건을 접는 것에만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화가 나게 만든 것입니다.  
 
아니면 수녀님을 보았어야했습니다. 
두려움이 나 자신만 바라보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가장 큰 이유는 하느님과 당신을 대등하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과 대등하다고 믿는 분이 무슨 두려움이 있겠습니까? 
그 두려움을 없애는 길은 자신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없애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보고 그대로 따라서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보지 않고서 아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라고 하시며 언제나 아버지를 바라보고 계심을 알려주셨습니다. 
 
초등학교 때 연극에서 대사를 잊어버리면 그 밑에서 알려주시던 선생님이 기억납니다.
어찌해야 할지 모를 때 바라봐야 할 분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오히려 안정이 되어 선생님을 볼 필요도 없이 모든 대사를 다 외워냅니다. 
내 힘으로 하려는 두려움이 그 두려운 결과를 초래하게 만듭니다. 
 
워런 버핏은 주식투자로 세계의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의 지론은 확실하지 않은 것에 투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구에서야 스트라이크 존에 볼이 들어오면 투 스트라이크 노 볼이라도 스윙을 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자는 삼진아웃이 없습니다. 
그냥 한 없이 기다리다가 70% 이상 확실한 것이 있다면 그것에만 투자하면 됩니다.  
 
그가 비록 마이크로 소프트나 아마존에 투자하지 못하였지만 그는 그것에 실망하지 않습니다. 
그는 컴퓨터를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는 코카콜라와 같은 것에 투자했습니다. 
코카콜라 값을 1센트 올리면 1년에 6조 원 가까이 더 번다고 합니다. 
그는 그냥 그가 잘 아는 것에만 방망이를 휘두를 뿐이었습니다. 
 
저도 확신이 없는 글들을 써서 실수를 할 때가 많았습니다. 
확신 없이 하는 행동들이 항상 나와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그리고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불확실한 것 같으면 그냥 넘기면 됩니다. 확실한 것만 기다렸다고 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를 위해 내 앞에서 아직도 말씀하시고 행동하고 계십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내 아버지께서 여태 일하고 계시니 나도 일하는 것이다.” 라고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분의 일을 바라보지 않아 헛수고가 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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