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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3-04 조회수 : 485

3월 4일 [연중 제8주간 월요일] 
 
"가진 것을 팔고 나를 따라라." 
 
< '부자'의 의미 >

영국의 유명한 부자인 컨글튼 경이 어느 날 집에서 일하고 있는 하녀가 부엌에서 접시를 닦다말고 한숨을 쉬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이고, 5파운드만 있으면... 5파운드만...”

이 소리를 들은 컨글튼 경은 그 하녀에게 5파운드가 급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힘내라며 5파운드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 나오는데 더 큰 한숨소리가 들리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고, 10파운드라고 할 걸... 10파운드라고 할 걸...” 

우상은 내가 지배를 받는 대상이고 내 맘대로 할 수 없는 내가 섬기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 하느님의 뜻이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임을 알았지만 그대로 할 수 없다면 그 재산은 나를 지배하는 우상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내가 섬기는 우상이 나에게 무엇을 주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양심의 소리입니다.  
 
분명 양심에서는 재산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소리 지릅니다. 
그러나 부자 청년은 그 목소리가 진리이고 그게 옳은 일음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 소리를 따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산이 그 자신의 것이고 그래서 자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섬기는 대상, 즉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옳은 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서게 되었을 때 ‘슬픔’이 옵니다. 
감옥에 갇혀서 기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마치 이집트의 노예 살이 할 때처럼 자유를 빼앗기고 지배를 받아 우울한 삶을 살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내 위에는 하느님의 뜻 외에 어느 것도 두지 말아야합니다. 
스스로 노예가 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에는 ‘어떤 농구 시합’이라는 소제목으로 이런 어린이들의 가슴 따듯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케빈’이라는 아이는 같은 또래의 아이들보다는 모든 면에서 뒤처지는 부족한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어린이 농구팀을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는 그 농구팀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물론 케빈이 속한 농구팀은 경기에 나가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케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케빈은 계속 슛을 연습했습니다. 
한 번은 공이 골대를 스쳤습니다. 
케빈은 너무나도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습니다.  
 
케빈이 속한 농구팀의 마지막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상대는 어린이 농구팀 중에 한 번도 저 본 적이 없는 가장 강한 팀이었습니다. 
예상대로 3쿼터까지 점수는 30점차 이상 벌어졌습니다.  
 
마지막 4쿼터도 거의 끝나갈 무렵 케빈이 속한 농구팀의 한 아이가 타임을 불러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영문을 모르는 감독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지금까지 경기해 오면서 케빈은 단 한 번도 슛을 성공시킨 적이 없어요. 
이번이 마지막 경기입니다. 
이길 수 있는 가능성도 없으니 케빈에게 한 번만이라도 슛을 성공시킬 수 있는 기회를 주죠.”

모두가 이 말에 동의하였습니다. 
동료들은 케빈에게 평소에 슛 연습하던 가장 좋아하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공을 잡으면 케빈에게 무조건 패스를 하였습니다. 

케빈은 계속 공을 던졌지만 골대를 맞추지도 못하고 오히려 상대팀에 빼앗겨 점수 차는 점점 벌여졌습니다. 

그런데 상대팀 한 아이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눈치를 채고는 자신이 몰고 가던 길을 되돌아와 케빈에게 공을 패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케빈은 골을 성공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번에는 골대 밑에 있던 상대팀 선수가 공을 잡아 다시 케빈에게 패스하였습니다. 
역시 성공시키지 못하였습니다.  
 
이렇게 양 팀 선수들은 서로 뒤섞이어 케빈을 둥그렇게 둘러싸고는 공을 계속 케빈에게만 던져주었습니다. 
경기 마칠 시간이 다 되어 갔지만 역시 케빈은 골을 성공시키지 못했습니다. 

감독님은 전광판 시간을 보았는데 시간은 40초를 남겨놓고 멈추어 있었습니다. 
심판들도 이 상황을 눈치 챈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장시간 노력한 끝에 케빈은 생애 첫 골을 성공시켰고 모든 이들은 케빈과 함께 기뻐 뛰었습니다.  
 
그 날 집으로 돌아가던 모든 사람 중 우울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승부욕도 있었겠지만 케빈에게 기회를 주고 싶은 좋은 마음에 모두가 동의하였습니다.  
 
그렇게 승부의 우상에게 억눌리지 않는 자유로운 아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이런 아이들에게 승부의 우상을 심어주는 것은 어른들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조금만 떨어져도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상은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왜냐하면 양심의 목소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나라의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느낄 수 있겠습니까? 

우선은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상을 섬기는 이들을 ‘부자’라고 말씀하시고, 그 부자들은 절대로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자가 곧 우상숭배자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걱정되고 두렵고 우울하다면 우리는 무언가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해방시키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 슬픈 마음으로 돌아간 부자청년처럼 되지 말고 자유롭게 그분 뜻을 따를 수 있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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