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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5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5 조회수 : 414

2월 15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뱀이 여자에게 말했다" 
 
독서: 창세 3,1-8 
 
< 뱀은 ‘나’인가? >

서울에 가면 요즘 중국 사람들 홍수입니다. 
이 덕에 경제적인 효과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국 관광객들 중 어떤 이들은 한국을 생각하며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나라’로 혀를 내두른다고 합니다. 
특별히 여행사들의 횡포 때문에 그렇다고 합니다. 
관광지보다는 쇼핑에만 집중하게 해서 커미션을 많이 챙기려는 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이들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손님의 발길을 끊기게 하는 뱀들입니다. 
자신만 배부르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들이나 나라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망하면 자신까지 망하는 줄을 모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바로 이런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나에게 유익을 주시는 분과의 관계를 끊게 만들어서 나를 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사탄이 인간을 시기하여 인간도 자신처럼 지옥에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사탄이나 마귀, 뱀이나 자아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같은 본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말을 믿게 해서 인간을 망하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이솝 우화 중에 사이좋은 네 마리의 황소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항상 함께 나들이를 했고, 함께 풀을 뜯고 함께 누워 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잡아먹으려는 사자 한 마리가 있었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네 마리를 상대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이제 그들을 흩어놓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한번은 사자가 풀을 뜯고 있는 소들 중 약간 뒤쳐진 소에게 다가가 다른 소들이 흉을 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다른 소들에게도 이런 식으로 접근하여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네 마리의 소들은 사자가 노리던 대로 각각으로 흩어져, 마침내 그에게 모두 잡아먹히고 말았습니다. 
 
사자는 분열시켜 죽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도 희한한 것은 소들은 사자의 말만 듣고 마치 자신의 생각처럼 믿어버립니다. 
사자의 말을 절대적으로 믿어버리니 자신에게 도움을 줄 다른 이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하와를 유혹했던 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와는 그나마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고는 있었지만 뱀은 자신의 언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믿지 않게 만들어버립니다. 
자신이 하와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도 보듯이 인간이 뱀의 유혹에 빠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뱀의 말이 자신의 말인 양 무턱대고 믿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뱀이 정말로 나 자신일까요? 
예수님은 당신 부활로 자아가 내 자신은 아니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자아를 죽여도 나는 여전히 삽니다. 
아니 자아를 죽여야만 살 수 있습니다.  
 
물론 뱀이 내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자아와 나도 한 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바로 가리옷 유다와 같은 경우입니다.  
 
그는 자아의 말만 따르다가 결국 자아에게 먹힌 경우입니다. 
사탄에게 먹혔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사자가 소를 분열시키는 이유는 먹어치우기 위해서입니다. 
뱀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을 하느님과 떼어놓으려고 하는 이유는 자신이 먹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먹혀버리면 이제 자아와 자신이 한 몸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은 따를 수 없는 처지가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자아에게 먹히지 않고 하느님 안에 머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자아를 나 자신으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자아가 말하면 마치 내 자신의 생각인 것처럼 바로 믿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어리석은 소와 같은 것입니다. 
친구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 아닙니까?  
 
예를 들면 ‘오늘 친구들과 술을 마셔야지’라고 생각했을 때, 바로 ‘그럼 하느님은 그것을 원하시나?’라고 물어볼 수 있어야합니다.  
 
하와가 죄를 지은 이유는 뱀의 말이 전부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뱀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이라고 믿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뱀을 나로 착각하더라도 하느님의 생각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둘을 항상 함께 보며 내가 제3자의 입장에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목소리가 뱀의 목소리이고 어떤 목소리가 하느님의 목소리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어떤 목소리가 죽음의 길로 부르는 목소리이고, 어떤 목소리가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목소리인지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반드시 ‘두’ 목소리를 찾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물어보지 않고 내 생각대로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은 뱀에게 거의 먹혔다고 보아도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럼 하느님의 뜻은?’이라고 물어보며 내 안에서 참 주인이신 하느님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버려두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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