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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4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4 조회수 : 461

2월 14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 >  

저와 함께 공부하는 한국의 한 부제님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관계도 좋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부제입니다. 
그러나 그것 이외에 어떤 다른 면은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겨울을 지나며 그 부제님의 훨씬 성숙한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공부하는 교구 사제와 신학생들은 대부분 겨울에 한 곳에 모여서 연말연시를 함께 보냅니다.  
 
그 부제님 교구도 오스트리아의 한 도시에서 함께 모였고 저희 교구는 독일에서 모임을 했습니다.  
 
독일에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 교구 신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 부제님이 다쳐서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디가 다쳤느냐고 했더니 자세한 내용은 말하지 않고 광대뼈가 함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걱정을 하며 로마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그 부제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일주일 넘게 로마에 오지 못했습니다.  
 
일주일이 넘어서 수업시간에 모습을 나타냈는데 눈은 시퍼렇게 부어있었고 눈 밑과 볼에 수술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아직 실도 못 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안타까워서 어찌 된 것이냐고 물었는데 그 부제님은 웃으며 광대뼈를 고정시키기 위해 티타늄을 세 개 박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쪽 얼굴엔 감각이 없다고 했고 몇 달 감각이 돌아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 아닌 것처럼 말했습니다.  
 
만약 저의 얼굴이 그렇게 되었다면 크게 상심하였겠지만 그 부제님은 너무나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 교구 신부에게 물어보니 다쳐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남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사실은 눈썰매를 타다가 앞 사람의 머리에 얼굴을 부딪쳐 얼굴이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독일어 한 마디도 못하는데 우선 한 병원에 입원시켜놓고 교구 식구들은 잠이라도 제대로 자려나 하며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다음날 찾아가니 웃으며 “켄터키 프라이드 안 사오셨어요?”하며 농담을 했고 이어서는 “이번에 수술하는 김에 맘에 들게 얼굴도 좀 같이 고치면 안 될까요?” 하며 선배 신부님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얼굴이 그렇게 되었으면서도 그렇게 여유 있게 농담을 할 수 있는 여유는 누구나가 가진 것은 아닙니다. 
그 부제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신앙의 정신이 무엇인지 보여주었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작은 믿음을 뒤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나쁜 영에 시달리는 자신의 딸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한 이방인 여인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여러 가지 이유를 대시며 그 청을 물리치십니다.  
 
이방인으로서 예수님께 기적을 청하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었는데 “나는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주는 것은 옳지 않다.” 하시며 사람들 앞에서 청을 드리는 이방인 여인에게 창피를 줍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굽히지 않습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녀의 믿음을 감탄하시며 그녀의 청을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일부러 청을 들어주시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그녀의 믿음을 드러내 보이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이방인까지 이렇게 믿는데 이스라엘인들은 믿지 못하는 것을 질책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는 멸시에 가까운 고통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만한 어려움을 겪으면서 보이는 믿음이야말로 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연적으로 주어집니다. 
아무 어려움도 없는데 어떻게 신앙의 힘을 증거할 수 있겠습니까?  
 
아씨시 옆의 Montefalco 라는 동네엔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가 800년 전 모습 그대로 썩지 않고 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생활을 했고 젊은 나이에 기도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녀의 심장에선 예수님의 형상이 새겨진 십자가와 채찍 등 수난 도구 등이 근육이 응고되어 형성되었고 지금도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수녀님이 어느 날 기도하는 중 예수님께서 슬픈 얼굴로 십자가를 지고 지나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수녀님은 예수님께 왜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계시냐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요즘 시대에 내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다.”하셨습니다. 
성녀는 그 의미를 깨닫고 “당신의 십자가를 제 심장에 꽂으십시오.”라고 청했고 예수님은 당신의 십자가를 그녀의 심장에 꽂았습니다.  
 
그렇게 그 성녀의 심장에 수난도구들이 새겨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꽂을 굳은 땅이 없다고 하신 이유는 요즘 세상에 아무도 십자가의 고통을 받아들여 믿음을 증거 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었고 성녀는 그 고통을 자신이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게 성녀는 그 고통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그 심장에서 나온 것들과 썩지 않는 성녀를 보며 믿음을 갖고 혹은 더 증가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위에 말한 부제님처럼, 
오늘 복음의 이방인 여인처럼, 
또 십자가의 글라라 성녀와 같은 이들을 통해 세상에 믿음의 모범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저조차도 고통을 청하기가 두렵습니다. 
다만 주님께서 주시는 고통을 잘 받아들일 수 있는 믿음을 청하기는 합니다.  
 
일상에서 주어지는 우리의 십자가만이라도 잘 지고 나갈 수 있으면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신앙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무거운 십자가를 홀로 지고가시는 예수님께 작은 위로가 되어드리도록 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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