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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3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3 조회수 : 510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 나를 더럽히는 것 >

얼마 전에 한 신자분이 투명한 플라스틱 병에 성수를 떠서 저에게 보여주시며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신부님, 이상해요, 
얼마 전엔 성수물이 맑았는데 조금씩 색이 흐려지더니 지금은, 보세요, 
아주 뿌옇게 되어버렸어요.” 
 
실제로 쇳가루 같은 것들이 떠다니는 것처럼 색이 변해 버렸습니다. 
저는 ‘항아리 청소를 자주 해 주지 않아서 그런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수녀님이 알아서 하겠거니 믿고 그냥 넘겨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수녀님과 몇몇 봉사자들이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물론 성수 항아리 청소를 자주 해 주지 않아서 그럴 수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으나, 수녀님 말로는 항아리 청소는 평소와 다름없이 했고 이전에는 그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 많은 의견은, 제가 그 성수를 축복할 때 소금을 적게 넣어서 성수가 부패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새로 성수를 축복할 때는 수녀님이 평소보다 훨씬 많은 소금을 올려놓으셔서 매우 놀랐습니다. 
 
어떤 분은 “신부님이 기도를 너무 많이 하셔서, 성수가 변한 거 아닐까요?” 라고 해 모두가 웃었다고 합니다. 
 
성수의 색이 이상해지자 신자분들은 그것을 퍼가기 꺼려하셨지만 어느 날 드디어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놀랍게도 항아리 바닥엔 성수를 푸는 두레박 바가지가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아마도 어떤 분이 성수를 푸다가 바가지를 빠뜨렸고 그것이 가라앉아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뿌연 색이 나오게 된 것이고, 성수 양이 줄어들면서 그 색이 짙어진 것입니다. 
 
성수는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있고 그 위치가 약간 어두운 곳이라 바닥은커녕 그 안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저도 성수를 뜨시는 분들이 바닥을 당연히 보셨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바가지는 항아리 색과 비슷하였기에 잘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뿌옇게 되는 것이 무엇 때문인지 위에서 불을 비추어 바닥을 살펴보았다면 바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었겠지만 그 속은 보지 않고 짐작만 하다가 끝났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 하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 대해 안 좋게 이야기 하는 것을 들었다면 그것은 나를 더럽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내가 안 좋게 반응을 하게 되면 그것이 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욕해도 나는 더러워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을 판단하게 된다면 그것이 나를 더럽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밖으로부터 오는 것들에 무감각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욕을 먹고도 웃고만 있다면 바보 아니면 성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당신을 배신하고 조롱하고 침 뱉고 모욕을 주는 이들을 용서하시며 당신을 깨끗하게 지키실 수 있으셨을까요? 
 
만약 당신을 미워하는 이들의 공격을 받으시고 아무 느낌이 없으셨다면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그들이 막장을 향해 가는 운명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랑은 무감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을 매우 민감하게 만듭니다. 
성모님도 잔치에서 술이 떨어진 것을 가장 먼저 발견하여 예수님께 청을 올리셨습니다. 
민감하면 그만큼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분들에게 향한 세상의 모든 죄들은 그분들의 마음에 상상을 초월하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들이 부패할 때까지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말씀의 빛으로 마음 안을 살피시고 무언가 있으면 바로바로 꺼내어 그 속에서 부패하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그때그때 소화시키며 자신 안에 쌓아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썩어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 등이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른 면입니다. 
바로바로 용서하시고 바로바로 풀어버리시고 바로바로 소화시키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사람인이상 남의 말에 상처를 받고 남이 던지는 돌에 아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그대로 방치하면 곪게 되고 신체의 다른 부위에까지 전염될 수 있습니다.  
 
모든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바로바로 치료되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의 병도 마찬가지입니다. 
쌓아놓고 있으면 결국 그것이 썩어 온 내 자신을 더럽히고 썩게 만듭니다.
내가 사람을 판단하고 미운 감정이 생기게 된다면, ‘말씀’의 빛으로 고개를 숙이어 그 사람에게서 받아 내 안에 넣어두고 있는 상처를 빨리 꺼내버립시다.  
 
치료되지 않은 모든 상처들은 내 자신을 더욱 더 오염시켜 더 커다란 죄를 짓게 만듭니다.

“화나는 일이 있더라도 죄를 짓지 마십시오. 
해 질 때까지 화를 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마에게 발붙일 기회를 주지 마십시오.”
(에페 4, 26-27)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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