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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16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9-02-16 조회수 : 437

2월 16일 [연중 제5주간 토요일] 
 
창세기 3,9-24
마르코 8,1-10 
 
"저 군중이 가엾구나."  

교구 평신도 복음화 봉사자들과 1박 2일로 워크숍을 다녀왔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한 어르신 봉사자께서 1970년대 TV에서 방영되었던 사연이라며 말씀해 주신 한 사연이 마음에 와 닿아 이렇게 옮겨봅니다.  
 
6·25전쟁 때 서울에 살던 한 부인이 피난 가다가 가족과 헤어지고 혼자 부산에 도착해 국제시장에서 가게를 세내어 식당을 시작했습니다.  
 
음식 솜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한번 온 손님들이 계속 찾아와 식당은 날로 번창했습니다. 
전쟁 중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거지가 되어 동냥으로 연명했는데, 그 식당에도 거지들이 찾아와 종업원들과 자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밥 좀 주세요.”
“너희 주려고 밥장사 하는 줄 알아?”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을 볼 때마다 헤어진 아들 생각이 나, 모두에게 밥을 주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적자가 나니 고민이었습니다. 
하루는 아주머니가 식당에 큰 통을 갖다 놓고 종업원들에게 말했습니다.  
 
“손님이 음식을 남기면 버리지 말고 전부 이 통에 깨끗하게 모아라.” 
 
그날도 점심때쯤 되어 거지들이 몰려오자, 주인아주머니는 “저녁 9시쯤에 와라. 그러면 밥을 줄게.” 하였습니다. 
“정말요? 꼭 줘야 해요!”  
 
9시가 되자 손님들이 끊어진 조용한 식당에 거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밥 준다고 했지요?” 
거지들이 스무 명 남짓 식탁에 둘러앉자 주인아주머니가 말했습니다.  
 
“내게도 헤어진 너희만한 아들이 있다. 너희를 보면 그 아들 생각이 나 밥을 주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이 식당은 망할 거다. 
그래서 오늘부터 손님들이 남긴 밥을 깨끗이 모았으니 이것으로 죽을 끓여주마.” 
 
아주머니는 모은 밥과 반찬으로 죽을 한 솥 끓였습니다. 
거지들이 그 죽을 한 그릇씩 받아들고는, 늘 멸시와 천대를 받다가 따뜻한 사랑을 받는 것에 감격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줌마, 고맙습니다!” 거지들은 매일 밤 그 식당에서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소식이 알려지면서 스무 명에서 서른 명, 마흔 명… 하고 거지들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다 죽을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지 왕초는 이러다가는 저 식당이 망할 것 같으니 이런 방법을 제안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몰려가다가는 저 식당이 망하겠다. 
이제부터 조를 짜서 요일별로 나누어 밥을 먹으러 가자.” 
 
거지들도 그 아주머니를 위해 배려할 줄 알게 된 것입니다. 
식당 벽에는 “손님 여러분, 음식을 깨끗하게 남겨 주십시오.” 하는 글귀가 붙었고, 그 식당에서는 손님이 남긴 음식을 거지들에게 준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늘 깨끗한 음식이 나오니까 손님도 믿고 먹을 수 있어서 손님이 더 늘어났습니다.  
 
주인아주머니는 거지들이 다치면 약을 발라주고, 거지들도 식당의 부서진 의자나 문짝을 고쳐주고 청소도 해주었습니다.  
 
어떤 거지는 아주머니를 “엄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운 엄마의 정을 그 아주머니한테서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식당은 점점 사랑의 식당이 되어 갔습니다.  
 
그 해 겨울, 부산 국제시장에 큰 불이 났습니다.
바닷바람이 강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시장 전체가 불타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가장 피해가 작은 한 집이 있었는데 바로 그 식당이었습니다. 
이유는 불이 나자 거지들 200여 명이 순식간에 그 아주머니 식당으로 몰려들었고, 그 중 일부는 불이 옮겨 붙지 않도록 막고, 물을 퍼붓고, 또 일부는 물건들을 밖으로 꺼내고, 일부는 그것을 지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합판 조각과 박스 조각들을 모아 와 아주머니가 추위를 피할 집을 임시로 만들고 “어머니, 걱정 말고 여기서 주무세요.” 하였습니다. 
거지들은 아주머니와 마음에서 하나로 엮여 있었던 것입니다. 
참다운 소통은 우리가 모두 한 가족이 되도록 만들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영적인 것은 사람을 살리지만 육적인 것에 심으면 죽음이 온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영은 생명을 주지만 육은 아무 쓸모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육을 이기기 위해 40일간 단식하고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도 이겨내십니다. 
육체의 욕망은 우리가 싸워야 할 세 가지 원수 중 하나로써 죄를 짓게 하는 뿌리이기 때문에 우리가 끝까지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의무는 영적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영적 양식을 나누어 하느님을 체험하고 만나게 만들면 그만일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는 이미 충분한 양식을 주셨지만 육적으로는 배고파하는 이들을 보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예수님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신도 배부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들을 배불리 먹일 음식을 주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책임 중 하나는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육적으로 배고픈 이들도 배불려야 하는 것입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있었던 한 식당 아주머니와 거지들과의 그 ‘소통’, 즉 아주머니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 배고픈 이들을 먹이고, 또 거지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아주머니를 도왔습니다. 
삼위일체께서 성령으로 소통하듯이, 소통은 각자의 희생을 줌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선교도 하나의 소통인데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한다면 배고픈 이들은 오히려 그런 말에 짜증을 낼 것입니다. 
물질적인 것도 동시에 도와주어야 합니다.  
 
한 사제로써 이태석 신부님은 물질적으로도 가난했던 톤즈 사람들에게 영적인 것뿐만 아니라 물적인 도움도 아낌없이 주었습니다.  
 
적어도 우리 성당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배고픈 사람들은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 안에서마저 나눔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배고픈 이들을 보며 마음아파 했던 예수님을 따른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물적으로 내가 누군가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서 말로만 성당 나오라고 권유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소통의 방법이 아닙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아직도 우리 주위 배고픈 이들을 보며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저 군중이 가엾구나.” 
 
가난한 이들에게 아무 말 없이 빵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교회가 된다면 오늘 복음에서처럼 남는 빵이 넘쳐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로 성당이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됩시다.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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