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살지만, 한때 이것에 민감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 이성에 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남들 하는 것을 나도 따라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유행’입니다.
요즘에도 사람들은 유형을 따릅니다. 그런데 요즘의 유행은 예전과 아주 다르다고 합니다. 경제 잡지 ‘브랜드 아인스’는 소비 상품에 관한 기사를 다루면서 ‘거창하게 떠벌리는 것은 유행이 지났다.’라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받으며 가치 있다고 간주되는 것은 ‘강제성이 없는 것’, ‘신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소중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브랜드의 로고도 거창하지 않습니다. 눈에 띄지 않거나 아예 없는 것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건이 전에는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것이었다면, 이제 눈에 띌 듯 말 듯한 소박하고 간결한 것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는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전에는 자기 PR이 중요하다면서 자기를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 당연했지만, 이제는 나서지 않고 소박하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성실한 사람이 인기라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겸손을 보여 주시고, 우리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하신 것은 엄청나게 시대를 앞서간 행동이었습니다. 세상의 유행을 굳이 따르지 않아도 상관없지만, 이 겸손이라는 ‘유행’은 따라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모습이고,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구원이라는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윗자리에 앉아 인사받기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의 형식주의와 섬김보다 명예를 우선시하는 그들의 태도를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율법학자를 향해서는 다른 이들에게 견디기 힘든 짐을 지울 줄만 알고 정작 자기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면서 꾸짖습니다.
바리사이나 율법학자의 자리 자체에 대한 꾸짖음이 아닙니다. 실제로 그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산 것을 겉으로 보이기에 온 힘을 쏟았다는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자기 구원을 위한 ‘열심’이 아닌, 보이기 위한 열심이었던 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의 삶을 살지 못했기에 그들은 결국 주님께 꾸짖음을 들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이들은 이런 말을 이제까지 들어본 적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교사 중 어떤 사람이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구원 범위는 이들 역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회개를 위해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겸손의 삶을 살고 있을까요? 보이기 위한 열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주님 마음에 드는 보이지 않는 열심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하루이다(소포클레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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