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도 생명대행진 행사에서 이성효 주교(왼쪽 세 번째)와 꽃동네 신상현 수사 등이 행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치권의 외면으로 낙태죄는 결국 지난해 12월 31일 실효됐다. 그동안 가톨릭교회는 많은 노력을 했지만 낙태죄 실효를 막지 못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이고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지 짚어봤다.
낙태죄 실효 막기 위한 가톨릭교회의 노력
가톨릭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생명으로 인식하며 모든 낙태를 반대한다. 가톨릭의 이런 입장은 현재도 변함이 없다. 다만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현실적 필요성에 따라 낙태죄 완전 폐지 입법 반대에 주력해왔다. 2020년 8월 주교단은 “인간생명은 수정되는 순간부터 존중받아야 하는데 낙태죄의 폐지가 태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며 ‘낙태죄 완전 폐지 입법 추진을 강력 반대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10월에는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에서 낙태 허용 법안 제정 반대 요구를 담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또 같은 달 주교회의 새 의장에 선출된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의료진이 양심에 따라 낙태 시술을 거부할 수 있는 ‘진료거부권’ 도입을 촉구했다.
12월에는 국회에 낙태죄 폐지를 막아줄 것을 촉구하는 국회청원을 생명운동단체와 함께 실시했다. 국회 청원은 기준 인원 10만 명을 넘어 관련 상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12월 말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항의 서한을 국회의장 앞으로 보냈다. 염 추기경은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국회의 현재와 같은 명백한 직무유기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며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국가의 중요한 책무에 있어서 입법부의 올바른 역할을 이행해 주실 것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활동의 한계
가톨릭교회는 헌법재판소의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낙태죄 실효를 막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했지만 정치권이 철저히 외면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낙태의 문은 활짝 열렸다. 본지 취재 결과 서울 50개 산부인과 중에서 35곳이 낙태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의료 현장은 태아의 생명권도 엄마의 건강권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 사회 곳곳의 일탈도 심각한 상황이다. 1월 16일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A씨는 자신의 집 화장실에서 아이를 출산한 뒤 창밖으로 버렸다. 탯줄도 떼어 내지 않은 영아는 영하의 날씨 속에 숨졌고 A씨는 영아살해 혐의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과거 아이를 낳은 후 복지기관 앞에라도 버렸던 최소한의 양심마저 실종됐다. 하지만 A씨 입장에서는 억울할 것이다. 지금처럼 낙태죄가 실효된 상황에서 사전에 낙태를 했으면 법적으로 처벌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출산 후 아이를 버리기보다 사전에 낙태를 함으로써 범법자가 되는 걸 피하는 경우가 더 늘어날 것이다.
이런 결과는 일차적으로 정치권, 특히 여권의 책임이다. 이렇게 정치권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할 수 있는 건 압박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교회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더라도 자신들의 표에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여론전에서도 실패했다. 8월 주교단 성명이 나온 후 한 달여가 지난 후 천주교 여성 신자 1000여 명이 낙태죄 전면 폐지에 찬성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가톨릭교회가 여전히 생명에 대한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고 있다며 교회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라는 것이냐고 따졌다. 결코, 교회의 ‘낙태죄 폐지 반대’ 주장은 낙태한 여성을 처벌하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여론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고 교회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움츠러들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미래 위한 제언
여당은 1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2월 임시국회에서 정부안을 기본으로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구체적인 움직임이 없다. 오히려 4월 서울과 부산시장 재선거, 내년 대선 등 정치 일정을 보면 낙태죄 실효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정치권에서는 이렇게 시간을 끌면서 낙태법 실효 상태가 굳어지기를 내심 바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과 관련된 문제를 이렇게 쉽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태아에 대해서도 국가가 보호할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정부나 국회가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를 보완하지 않고 방치하는 건 직무유기다. 국회와 정부에게는 표를 의식해 눈치만 보고 시간만 질질 끄는 게 아니라 어렵더라도 국민들을 설득하고 의견을 모아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생명존중을 핵심 가치로 삼고 있는 교회는 다양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 이를 지적해야 한다.
최근 주교회의 가정과 생명위원회 위원장 이성효 주교가 1973년 2월 8일 모자보건법 제정에 맞춰 봉헌했던 기존 ‘생명을 위한 미사’ 날짜를 18년 만에 4월 11일 이후로 바꾸겠다는 뜻을 밝혔다. 4월 11일은 2019년 헌법재판소가 형법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날이다. 이번 결정은 교회가 헌법재판소의 형법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의 부당함을 지속해서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계속 노력을 하겠다는 것을 대내외에 선언하는 것이다. 동시에 지난해 12월 31일 자로 실효된 낙태죄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국회 및 정부에 대해 서둘러 후속조치를 마련할 것을 요구하는 의미도 담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낙태죄 실효 상태에서 교회가 신자들이 일탈하지 않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이와 관련,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사무국장 박정우 신부는 “신자들은 교회법이나 자연법, 양심에 따라 국가법이 낙태를 허용하더라도 낙태하지 않는다는 생명존중의식, 태아의 인간성에 대해 인식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그런 교회가 그런 교육을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더 나아가 아이를 출산하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쪽으로 관심을 모으고 실제로 제도나 법이 개선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 가톨릭평화신문
이상도 기자 raelly1@c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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