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 심리학자 힐렌 아인혼은 ‘경험의 함정’이라는 책에서 행복을 ‘행복의 사분면’으로 이야기합니다. 우선 행복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 실현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불행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과 자기가 원치 않던 것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이 잘되면 행복하지만, 사업이 잘 안되면 불행합니다. 건강 검진을 해서 너무 건강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행복하지만, 암진단을 받으면 불행합니다.
세 개의 단면이 보입니다. 행복은 원하는 것을 갖게 되었을 때, 불행은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 원하지 않는 것을 갖게 되었을 때입니다. 행복 하나에 불행이 두 배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빠진 한 면이 있습니다. 바로 원치 않는 것을 갖지 않게 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픈 가족이 없다거나, 교통사고가 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결국 행복과 불행은 반반입니다. 원하는 것을 갖게 되는 것이 힘들지만, 원하지 않는 것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행복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것을 갖지 않게 됨에 “다행이다”라고 말하면서, 행복한 ‘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행복의 이유는 갖는 것에만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갖지 못하는 것에도 행복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많은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지 않는 것만 해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가십니다.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했지만,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누가 더 행복할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예수님 말씀만 듣고 있는 마리아가 행복할까요? 아니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예수님을 분주하게 시중드는 마르타가 행복할까요? 둘 다 행복의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기 행복을 간직하며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마르타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상태였지만, 그녀는 앞서 말씀드렸던 불행의 측면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즉,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할 때’만을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자기가 초대했지만 마리아처럼 발치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없다는 생각에 억울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예수님께 청합니다.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마르타처럼 우리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래서 행복의 이유보다 불행의 이유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몫인 행복의 이유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이 자기에게 다가와도 행복을 빼앗기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은 나이만큼 늙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생각만큼 늙는 것이다(조지 번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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