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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29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9-29 조회수 : 164

복음: 마르 9,38-43.47-48 

 

이주민과 난민을 존중하고 인격적으로 대합시다! 

 

 

오늘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오늘 그분들을 향한 우리의 마음가짐이나 시선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날입니다.

어린 시절 예수님께서도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을 가신 적이 있습니다.

일종의 난민이셨던 것입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도 예수님께서는 어디 한 군데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철저한 이방인이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이주민이나 난민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기쁘게 포용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주에 단체로 예멘 난민이 입국한 때가 있었습니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습니다.

그분들로 인해 곧 나라가 파탄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다문화 다민족, 다국적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시대에 제대로 된 국제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최후의 심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주었다.”(마태오 복음 25장 35~36절) 

 

솔직히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 나그네요 이방인입니다.

우리 것이라고 여기지만 솔직히 우리 것도 아닙니다.

그뿐인가요?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빼앗기고 힘겨울 때, 전쟁으로 모든 것이 풍비박산 났을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난민이 되어 정처없이 전 세계를 떠돌아다녔습니다. 

 

난민들은 위험한 사람들, 혐오스러운 대상들, 두려운 존재들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엄마 잃고 상처입은 어린 새 같은 존재들입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죽음의 공포, 사랑하는 가족과의 생이별 등, 갖은 트라우마를 안고 우리를 찾아온 나그네들입니다.

사방이 높은 벽으로 가로막힌 듯한 느낌 속에 불안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난민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따뜻한 환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파나마 세계 청년대회에 참석하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난민’, ‘이주자’에 대해 언급하시며,

착한 목자로서 당신 자신의 품격을 만천하에 드러내셨습니다.

다른 여러 국가 지도자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불구하고 교황님께서는, 부단히 난민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 보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도 헤로데 대학살 사건을 피해 이집트로 떠났던 난민이셨습니다.

난민들을 사회에 대한 위협으로 낙인찍는 것처럼 분별없고 무책임한 일은 다시 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버림받은 사람들, 땅과 뿌리, 가족과 일로부터 강제로 쫓겨났거나 빼앗긴 사람들을,

기쁘게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웁시다.

하느님은 우리가 난민들을 구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우리가 난민들을 외면하는 것은 너무나 큰 위선입니다.” 

 

참으로 품위있고 품격있는 교황님의 말씀과 처신에 큰 박수와 아낌 없는 지지를 보냅니다.

큰 슬픔과 고통 속에 빠져있는 난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겠습니까? 

 

지난 2013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교황 즉위 직후, 바티칸과 로마를 벗어난 첫 방문지 람페두사 난민 수용소에서 하신 말씀은 또 얼마나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가요? 

 

“난민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각자 얼굴과 이름, 삶의 이야기가 있는 난민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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