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루카 6,27-38
천상적 사랑, 참사랑을 요구하시는 주님!
너무나 억울하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사람들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피정 센터를 찾은 분들 가운데 참으로 많은 분들이 그런 사연 한 보따리를 안고 오십니다.
그를 떠나 보낸 이후 내 삶이 내 삶이 아닌 그분들 바라보며 너무 환하게 웃고 다녀도 안 되겠구나,
너무 행복한 표정 지어도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그가 없는 이 세상, 더 이상 의미가 없는 분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를 불시에 떠나보내고 난 후 사는게 사는게 아닌 분들, 차라리 내가 그를 대신해서 먼저 갔으면 하는 마음에, 밥숫가락 뜨는 것조차 송구스런 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게 한 그 웬수는 또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요?
참으로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복음의 가르침,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으로는 도저히 용납이 안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대목을 접할 때 마다 화딱지가 하늘 끝까지 솟구치니 참으로 큰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는 말씀은 너무나 기가 막힌 말씀이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막막할 정도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나치고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원수는 보통 어떤 사람을 두고 원수라고 합니까?
국어 사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나 자기 집에 해를 입혀 원한이 맺히게 된 사람.’
결국 원수는 나를 헤어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으로 밀어트린 사람, 잘 나가던 내 인생을 끝장나게 만든 사람, 내 가정을 산산조각나게 만든 사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몹쓸 짓을 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라니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요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적당한 선에서의 양보,너그러운 관용, 신사다움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보다 더 적극적인 천상적 사랑, 참 사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바보처럼 살라는 말씀,이 세상에 살아가지만, 이 세상을 초월하라는 말씀,더 이상 이 세상 것들에 대해 기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요청에 제대로 응답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넘어서야 가능합니다.
자아를 완전히 초월해야만 가능합니다.
협소한 인간적 관점, 인간의 시선을 벗어나 하느님 눈으로 바라보고 하느님의 마음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적당히 한걸음이 아니라 크게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
인간을 넘어 하느님처럼 되라고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인성을 극복하고 신성을 획득하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비록 요원해 보이겠지만 언젠가 세월이 좀 더 흐르고, 우리의 시야가 좀 더 광대해지고,
우리 안에서 신성이 점점 성장해가는 어느 순간, 불가능해보이던 예수님의 권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가 인간이지만 우리 인간 안에 하느님의 성령께서 힘차게 활동하실 때, 우리 인간은 비루함에서 위대함으로 이기적 성향에서 이타적 성향으로, 인간적 사랑에서 신적 사랑으로 나아가 마침내 기꺼이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날,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그날, 우리 삶 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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