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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8-16 조회수 : 223

연중 제19주간 금요일


 


 


책에 관한 관심은 많은데, 영화에는 영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극장에 가본 지가 벌써 10년이 넘었습니다. 동창 신부가 어떤 영화를 말하면서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합니다. 이 말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보려고 했지만, 이제까지 제 모습을 보면 극장에 가서 잠들고 말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결론은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워낙 관심이 없는 분야인 SF 소설이고, 도대체 그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동창에게 이 점을 이야기하니 배경지식이 없어서라고 말합니다. 배경지식을 알아야 창작자의 의도도 이해되고 감동도 깊어진다는 것입니다. 즉, 알면 보이고, 보이면 더 큰 감동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책 내용에 관심이 없어서 배경지식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또 관심이 없어서 대충 읽으니 더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동창의 이 말을 떠올리며 주님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주님을 제대로 알려면, 성경 안의 배경지식을 알아야 합니다. 이 배경지식이 있어야 주님의 의도가 이해되면서 지금 삶 안에서도 충분히 감동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전혀 알지 못하고 또 그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막연하게만 자기 필요를 청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의도를 모르니 불평불만만 늘어날 뿐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마태 19,3)


 


사실 이혼에 관한 율법은 십계명 안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단지 신명기(24,1-4)에 이유만 닿기만 하면 여자를 내몰 수 있었고 그때 이혼장을 써주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유배 생활을 거치면서 결혼을 일종의 매매 계약으로 여깁니다. 여자는 남자의 소유물이 되었고, 여자는 재산 소유권과 상속권이 없었습니다. 이혼할 수 있는 권리도 없었습니다.


 


이것이 과연 하느님의 뜻일까요? 아닙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만드신 남녀 결합의 근본이념에도 어긋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혼인법을 없애고 하느님의 원래 뜻으로 되돌리기 위해 혼인의 불가해소성, 즉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의도를 모르니, 과거의 잘못된 관습에 매여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한가요? 우리도 잘못된 관습만을 따르면서 정작 주님의 의도인 사랑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요?


 


주님을 아는 데 집중하는 우리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알면 보이고, 보이면 더 큰 감동을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우리는 서로를 좀 더 솔직하고 숨김없이, 재치있게 대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서로에게 접촉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커트 보니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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