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얼마 전에 어디를 가다가 건널목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옆에 있는 분이 발을 떼고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신호가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저도 그분을 따라 건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호가 보입니다. 파란불이 아닌 빨간불이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분을 쫓아 건너려고 했던 분이 저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일상에서 자주 접하게 됩니다. 대화 중이던 친구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면 제 손도 무의식적으로 휴대전화를 잡습니다. 내 옆의 사람이 하품하면 저 역시 입을 벌려 하품하게 됩니다. 이를 가리켜 모방 행동이라고 합니다. 즉, 우리 모두 공동체 안에 어떻게든 연결되어 있습니다.
단순히 행동만 연결되어 있을까요? 아닙니다. 감정까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의 힘든 감정을 이야기하면 이 말을 듣는 사람도 감정의 동화를 느끼면서 힘들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기쁘고 즐거운 감정도 전달되어서 상대 역시 기쁘고 즐거운 마음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공동체에 어떤 행동과 감정을 전달해야 할까요? 공동체 자체가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하다면, 그 영향을 받는 나 역시도 기쁘고 행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전하는 그 모든 것이 결국 나에게도 고스란히 돌아오게 됩니다.
오늘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성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자리는 죽음의 자리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삶이 끝날 때까지도 주님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십자가의 죽음 뒤, 무덤에 묻히신 다음에도 이른 아침에 무덤을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어서, 누가 주님을 꺼내 갔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그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했던 분이 왜 알아볼 수가 없었던 것일까요? 슬픔의 감정, 모든 것이 끝났다는 감정,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리아야!”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알아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기쁨을 전하라고 명령하셨고, 제자들에게 가서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라며 전합니다.
그토록 예수님을 사랑했던 마리아 막달레나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서는 주님을 알아보기 힘듭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아보기를 원한다면, 좋은 마음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처럼, 세상에 기쁨을 전달해야 합니다. 우리도 기쁨을 속에서 지금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의 명언: 새벽 종소리는 가난하고 소외받고 아픈 이가 듣고, 벌레며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도 듣는데 어떻게 따뜻한 손으로 칠 수 있어(권정생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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