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맹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요즘 애인이 변심했다고 하여 애인을 찾아가 보복을 해서 경찰까지 출동하는 사례들이 많이 나옵니다.
애인의 집을 차로 들이박는 것은 그나마 애교에 불과합니다.
정말 엽기적인 사건들도 많이 나옵니다.
영국에서는 여 치과의사가 변심한 옛 남자친구가 치통을 호소하자 치아 32개를 몽땅 뽑아 보복했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사랑은 서로를 믿어야하는데 그 믿음이 배신으로 돌아왔을 때는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나다보면 헤어질 수도 있을 것임을 몰랐던 것일까요?
얼마 전에 어떤 신자분에게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척이 잠깐만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가지고 있는 현찰, 그러나 지금까지 모은 모든 돈을 차용증도 없이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억 단위를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그분은 사람을 잘 믿고 베푸는 사람인데 자신에게 왜 그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났는지 답답해 하셨습니다.
사실 우리 주위에는 이런 분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믿는 것이고 그래서 굳게 믿었는데 배신이나 사기를 당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순이 하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이 완전하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는 것이 사랑이라고 해서, 그 사람이 하느님처럼 완전하다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도 있듯이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할 수도 있다는 것을 믿어야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완전하게 믿는다는 것은 곧 자신이 완전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내가 완전합니까? 내가 죄를 짓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입니까?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우리가 다른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자신도 잘못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자신도 완전하지 못한데 어떻게 다른 사람은 완전할 것이라고 믿으려 하는 것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아예, 맹세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맹세를 한다는 의미는 그 맹세한 것을 반드시 성취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맹세하는 것 자체가 자신이 완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말을 꺾으십니다.
베드로는 비로소 자신이 맹세를 지킬 수 없는 부족한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런 겸손한 마음을 가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말은 바로 내 자신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자꾸 자신을 높이고 내세우고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그런 마음 때문에 맹세도 하는 것입니다.
아예 말에서 자신이 드러나지 않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우리 불완전함을 인정한다면 우리 힘이나 말로써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라고 하시는데 우리가 자꾸 우리 힘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는 미사도 빠지지 않고, 성경도 매일 읽고,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이는 바리사이의 기도입니다.
우리는 다만 이렇게 기도해야합니다.
“저는 당신 도움 없이는 어떤 것도 이루어 낼 수 없는 존재입니다.
다만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이 세리의 기도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큰일을 이루어내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겸손하고 순결한 모습을 보여주기만을 기대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눈에는 성모님께서 많은 일을 한 이들보다 더 좋아 보이시는 것입니다.
진정 우리는 우리 힘으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려는 교만을 버리고, 오직 우리 부족함을 깨닫고 그분의 자비에 우리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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