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5,1-12: 참 행복
오늘 복음은 산상 설교를 전하고 있다. 주님께서 산으로 올라가신 것은 바로 하느님께로 가기 위해 언제나 높은 곳을 향하라는 말씀이다. 사람들을 더 높은 곳, 하느님께로, 더 높은 삶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이다. 오늘도 진리의 신비를 배우고자 하면 누구든지 교회라는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 “참 행복”에 대한 이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의 헌장”으로 당신 자신을 온전히 비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회복된 “하느님의 모습”을 완성해 준다. 창세 1,26-27의 거룩한 계획은 창세 2,7의 거룩한 숨으로 확인되었고,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에 의해 최종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참 행복의 말씀은 인간적 논리로는 역설적이고, 이해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참 행복론은 단지 재수 없는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약자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이익과 성공 위주의 딱딱한 사회는 이들을 완전히 무시한다. 마음이 가난한 이들, 온유한 사람들, 슬퍼하는 사람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서 모든 벽을 허물고,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나라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비난받는 사람들, 아무도 이들이 공적으로 말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이들만이 하느님 나라의 가운데 자리를 잡는다.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 그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같이 완전하게”(마태 5,48) 하려고 그들과 고통당하신 주님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참 행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그렇다.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계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 여기서 우리 대부분이 두 가지 의미로 다루어진다. 은총을 받아들여서 이미 “행복한 사람”인 사람들, 그리고 그들에게 팔을 벌리고 그들 안에서 영광의 왕의 얼굴을 발견하면서(마태 25,31-46), 가장 위대한 사랑을 발견한 사람들이다. 이것이 인간들을 바라보는 복음의 주요한 선포이다. 참 행복의 삶을 우리의 삶 속에 끊임없이 실현하며 살아가는 복된, 행복한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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