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사탄의 속박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하시어 당신께로 돌아가게 하시려 당신의 외아들을 보내주셨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을 보고 마귀가 들렸다느니,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22절)고 한다. 아마 이것은 많은 군중이 그분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악마는 언제나 분열시키는 존재이지 일치시키는 존재가 아니다.
제1독서에서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뜻을 어기고 하느님께서 따먹지 말라는 열매를 따먹고 눈이 밝아졌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알게 된 것은 자기들이 맨몸이었다는 것이며, 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하실 때, 주님께로부터 몸을 피하여 숨는다. 아담은 “동산에서 당신의 소리를 듣고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두려워 숨었습니다.”(10절) 하느님께서 아담을 추궁하신다. 그러니까 아담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창세 2,23)라고 했던 하와에게 그 탓을 돌리고 있으며, 하와는 뱀에게 탓을 돌리고 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인간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며, 그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관계를 망가뜨리고, 두 번째는 이웃과의 관계를 단절케 하며, 마지막으로 자연과도 관계가 악화되게 만든다. 이렇게 사탄은, 베엘제불은 일치시키는 자가 아니라, 분열시키는 자이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이렇게 먼저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며(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나의 죄를 알지 않을까? 생각), 자연과도 관계가 악화(가시덤불과 엉겅퀴) 된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단절된 이 모든 관계회복을 위해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셨는데, 그 아들이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사탄을 물리친다는 말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이며, 그것이 바로 당시 지도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사탄과 악령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은 성령 때문이었다. 성령은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는 영광으로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첫 번째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성령의 첫 열매는 용서라고 하지 않았던가! 성령께서는 당신 자신을 거슬러 갈라서지도 않으실 뿐 아니라, 모아들이신 사람들이 갈라지지 않게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께서는 서로 맞서 갈라선 죄를 용서하시고, 깨끗해진 사람들 안에 사신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 마음 한 뜻이 되었다.”(사도 4,32)라는 말씀처럼 되게 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성령을 거슬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라고 하신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28-29절)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령은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의 관계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우리가 성령 안에 산다는 것은 바로 하느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을 모독한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느님 앞에 나아가지 못하고 나 자신을 그분 앞에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다. 작은 예를 들어보면, 우리는 죄를 짓는 인간들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여 이런 죄는 하느님께서도 용서해주시지 않을 거야! 하면서 하느님 앞에 나오지 않고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믿고 그분 앞에 언제나 나올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가족이 된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육신을 잉태했다는 사실보다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에서 더욱 복되신 분이시다. 마리아는 말씀을 낳으셔서가 아니라, 말씀을 지키고 실천하셨기에 더욱 복되시다.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모시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라는 친족관계도 그 구원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33절) 이 말씀은 당신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기신 것도 아니고, 당신을 낳으신 분을 부인하는 것도 아니다. 부끄럽게 여기셨다면 그 태를 거쳐 나오지도 않으셨을 것이다. 그 여인도 해야 할 바를 다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다.”(마태 12,50; 루카 8,21) 라고 하신다. 진정 하느님 안에서, 즉 성령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올바로 살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는 참으로 하느님의 가족이 된다. 내가 세례를 받은 가톨릭 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실천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가족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라고 한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예수님의 형제들, 즉 혈육들은 주님을 믿지 않았다.(요한 7,5 참조) 그 혈연관계가 무슨 득이 되었나? 마리아께서 그리스도를 육신으로 잉태하였을 때보다 더 행복하게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모시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라는 혈족관계도 마리아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느님의 가족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우리는 이제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나날이 새로워지는 내적인간으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영원한 집으로 가야할 것이다. 오늘 복음과 독서를 묵상하며 언제나 성령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며 구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하고 그렇게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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