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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5월 22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5-22 조회수 : 592

마르코 9,38-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자아와 포용력 
 
 
‘좋은연애연구소’ 소장인 김지윤 강사가 상대를 이해하는 문제에 대해 자신이 체험한 것을 이야기 한 것을 들었습니다. 
 
김지윤 소장이 결혼하여 6년 정도 지나서였다고 합니다.
소장은 여자임에도 좀 털털하고 직설적입니다. 
반면 그의 남편은 매우 꼼꼼한 편이라고 합니다. 
 
설거지와 빨래 모두 남편이 잘 도와줍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이 어떤 옷들이나 수건은 빨래바구니에 다 넣지 않고 밖으로 삐져나와 걸쳐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6년이나 보아오다가 남편에게 왜 이런 것들은 바구니에 온전히 다 집어넣지 않고 밖으로 나와 지저분하게 걸쳐놓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남편의 자상한 대답이 자신의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어 젖은 옷이나 수건은 밑으로 쌓이게 되면 냄새가 나기 때문에 걸쳐서 건조시키는 거야.” 
저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빨래를 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젖은 러닝에 곰팡이가 생긴 적이 있어서
그 방법을 써서 잘 압니다. 
그러나 김지윤 소장이 놀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결혼하기 이전에 친구 부부가 사는 집에 몇 달 동안 얹혀 산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냄비가 화장실에 엎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남의 집 사정이라 그 냄비가 왜 화장실에 엎어져 있는지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는데 결국 그 집 남편이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며 그 냄비가 왜 일주일 동안이나 화장실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그 아내는 “네~ 치울게요~”하고 냄비를 치웠습니다.
그냥 가정살림에 무관심한 여자였던 것입니다. 
 
어쩌다 들고 들어왔다가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 곳에 두었던 것을 치우지 않은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김지윤 소장은 자신에게 묻습니다. 
 
‘만약 내 남편이 내 친구와 결혼했다면 내 친구는 남편이 빨래를 통에 완전히 넣지 않는 것에 대해 영원히 묻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구나. 
내가 그것을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은 나의 문제였지만 내 친구는 관심도 없었을 수 있었겠구나.
내 문제였는데 남편의 문제라고 생각해왔었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른 사람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내가 만들어내고 나만의 문제들임에도 계속 보편화 시키면 상대의 고유한 문제로 만들어 버릴 때가 많습니다. 
 
모세 때 모세의 영을 70원로에게 나누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 때 70원로에 속하지 않은 엘닷과 메닷이란 사람도 영을 받아 예언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호수아가 와서 모세에게 말합니다.  
“엘닷과 메닷이 진영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저의 주인이신 모세님, 그들을 말리셔야 합니다.”
그러자 모세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나를 생각하여 시기하는 것이냐? 차라리 주님의 온 백성이 예언자였으면 좋겠다.
주님께서 그들에게 당신의 영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다.” 
 
즉 예언을 하고 있는 엘닷과 메닷이란 사람에게 문제가 아니고, 그들을 시기하는 여호수아가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는 자신의 문제를 남의 문제라고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오늘 복음도 이와 같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말합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예수님은 기본적으로 포용력이 크십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그리스도교 종교 안에서도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즉 불교는 천주교에 대해 우호적이고 천주교도 모든 종교에 대해 우호적인데 일부 개신교만 모든 종교에 대해 약간은 거부적인 소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가르치는 목사들도 있습니다. 
이는 어쩌면 자신 안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천주교에 투영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기적을 행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반대하지 않는 자는 당신을 지지하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반대한 적이 없고 예수님처럼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함께 지지하는 동료요 형제로 여겨야 하는 것이 오늘 복음에 맞는 자세가 아닐까요?
사실 ‘내’가 커지면 남을 품을 수 있는 ‘포용력’은 작아집니다. 
 
우리는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넓은 포용력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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