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의 공통점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 분야에서의 집중력이 남다르다는 것입니다. 집중하는 그 순간에는 다른 소리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 대해 어떤 전기 작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것 무시하기의 전문가.”
쓸데없는 것을 무시하는 그 전문성(?)이 자기 예술에 헌신하는 능력을 키울 수가 있었고, 눈앞의 과제나 프로젝트에 자신을 묶어두는 능력을 결합하여 전설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학창 시절, 공부하면서 음악 듣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또 여기에 텔레비전을 봐도 상관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실제로 집중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런 집중에 솔직히 죄송한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바꿔놓습니다. 그러다 보니 SNS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전화도 못 받습니다. 문제는 자기를 무시해서 SNS 메시지를 보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너무 죄송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이것저것 못하는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서 더 집중할 필요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는 어떤가요? 주님께만 집중하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의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두고 집중하면서, 정작 주님을 외면할 때가 너무 많은 우리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기념하는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이날, 우리는 예수님 탄생 예고를 들으신 성모님을 보게 됩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인데, 잉태해서 아들을 낳게 된다는 천사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이 메시지는 성모님께 의견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무조건 메시지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이 안 되는 이유만을 이야기합니다. 절대로 그럴 수 없다면서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성모님께서는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만 집중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는 무조건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가 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에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오늘의 명언: 잘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이 아름다워집니다(로렌 올리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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