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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8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4-03-28 조회수 : 458

어렸을 때, 여름방학이 되면 제 바로 형님과 함께 시골에 가곤 했습니다. 인천에서 버스를 타고 또 배를 탄 뒤에 한참을 걸어가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계신 시골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먼 거리였고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시골에 도착하고 나서는 너무 신났습니다. 개울가에 가서 놀기도 하고, 고양이, 개, 소 등의 동물 보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올챙이 잡고 개구리 잡던 것 역시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지요. 이렇게 즐거운 일만 있지는 않았지요. 온몸에 달라붙는 모기떼로 인해 괴로웠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상황이 뭐가 재미있을까 싶습니다. 당시 시골에는 제 또래도 없었고 그래서 유일하게 놀 수 있는 대상은 같이 간 형뿐이었습니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컴퓨터로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면, 아마 “저는 그런 곳에서 못 살아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하긴 게임에 빠진 아이의 스마트폰을 빼앗아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고 화가 나서 불을 질렀다는 아이도 있더군요.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뭐가 재미있냐?’고 하겠지만, 제 기억 속에서 시골 체험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뭐라 하셨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이분들의 음성도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래도 옛날의 몇 장면은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 선명한 기억을 지금 흐뭇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모든 것이 자기 기억의 일부가 될 수 있습니다. 소중한 순간이고 미래를 잘 사는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더 많은 것을 가져야 생각하는 우리입니다. 화려한 것, 멋진 것보다 오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장면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장면에는 늘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기에 따뜻하고 행복했습니다. 지금 내 자리도 먼 훗날 기억에 오래 간직될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으로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을 지냅니다. 이날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바라보게 됩니다.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바로 코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제자들을 향해 또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나눠주시는 주님을 봅니다. 그 사랑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는 장면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하느님께서 무릎을 꿇고 인간의 발을 씻겨 주시는 모습에서 그분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집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매년 반복되는 전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크기에 오늘의 전례를 통해 사랑을 다시금 바라보고 또다시 그 사랑을 기억하게 됩니다. 이 사랑의 힘으로 더 힘차게 살 수 있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이해하는 모든 것은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이해한다(레프 톨스토이).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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